"탈시설, 늦었지만 정부가 확신 갖고 추진해야"

2019.11.30 18:12

장애인 언론 기자, 장애인권 활동가, 사회복지 연구자, 장애인 거주시설 운영 재단 이사장….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50)가 걸어온 길은 독특하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장애문제를 다루는 언론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로 옮겨 활동가가 됐다. 인권팀장이던 2003년, 기도원 형태의 정신요양시설 문제를 계기로 시설 거주인 인권에 눈을 떴다. 너무나 평범해보이는 사람들이 그 안에 갇혀 살고 있었다.

이 사실은 대문에 달린 커다란 자물쇠, 철조망보다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때부터 신념을 갖고 발로 뛰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탈시설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정작 탈시설 문제에 힘을 보태는 전문가는 소수였다. 답답했다. 결국 사회복지학 박사학위를 땄다. 탈시설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에 참여했다. 2013년 7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구 석암재단(인권침해·비리가 있었던 석암베데스다요양원 운영)의 후신 프리웰 이사장을 지내면서 현장을 깊게 들여다봤다. 지난 11월 26일 경기 용인에 있는 박 교수 자택에서 탈시설에 대한 생각을 들었다.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11월 26일 경기 용인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노도현 기자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11월 26일 경기 용인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 노도현 기자

-한마디로 탈시설이 뭔가.

“집단적인 수용형태를 가진 공간에서 나와 지역사회 사람들의 관계 안에 들어오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시설은 인간의 목소리가 사라진 공간이다. 탈시설은 곧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아를 찾아가는 것이다.”

-탈시설의 필요성은 모두가 공감한다. 다만 국가 주도로 빠르게 추진해야 한다는 시각과 시설 밖 서비스의 기반부터 다져야 한다는 시각으로 나뉘는 것 같다.

“88 서울올림픽 때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안 된다며 리프트를 설치했다. 결국 장애인들이 온몸에 사슬·사다리를 걸고 농성하니까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엘리베이터 없이 지하철역을 만드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 됐다. 무슨 얘기냐면, 우리 사회는 누가 나서서 바꿔야 그 현실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문제를 합리적으로 인지하고 제도적 기반을 만든 뒤 인프라를 바꾼다는 게 우리 사회에선 먹히지 않는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움직이는 사회다. 일단 한국은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 누구보다 빨리 적응한다. 시작은 늦었지만 정부가 확신을 갖고 추진하면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라 본다.”

-걸림돌을 꼽는다면.

“(활동지원 등) 서비스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기존 시설에 들어가는 법률 근거, 보조금·인력지원 체계들이 유연하지 않다. 시설 밖으로 나가려 해도 시설의 서비스가 지역사회로 전환될 수 있는 제도적 유연성이 없다. 시설에 100명이 있으면 100명에 대한 보조금을 시설에 주는 형태다. 한 개인에게 예산을 떼줄 수 있는 기술적 체계가 안 돼 있다. 여기에는 ‘복지 마피아’ 문제가 있다. 체계를 바꾸려 해도 사학재단·종교법인 등 기득권이 시설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원이나 국회의원들은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제야 탈시설이 주류 의제가 되니까 주거서비스의 방법으로 연구가 되지만, 사회복지학 교수들도 탈시설에 힘을 실어주는 데 굉장히 소극적이다. 사회복지사가 법인과 시설에서 일해야 하고, 복지사를 키워내는 게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프리웰에 있을 때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주택’ 모델을 만들어 운영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은 ‘사례지원’을 동반했을 때 가능하다. 예컨대 결혼생활이나 직장생활 할 때도 약을 제대로 먹는지 관리해줘야 한다. 지원주택 근처에는 이들을 담당하는 코디네이터들의 사무실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가까이서 사회적 지원을 받으면서 사는 거다. 이걸 해보니까 ‘어? 되네’ 하는 반응이 나왔다. 매번 ‘서양에선 돼도 우리나라에선 안 된다’고 했었다. 천천히 하자는 건 이상적으로 맞는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니다. 먼저 당사자가 나가지 않는 이상 서비스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시설 밖 서비스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일차적으로 활동 지원을 늘려야 하는 게 맞다. 와상장애 같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24시간 서비스가 가야 한다. 단, 발달장애인의 경우는 하루종일 활동지원사가 붙어 있는 게 이상적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어떻게 사람들과의 관계를 많이 맺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 것인가, 어떻게 지역 내에서 자기 강점을 계속 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활동 지원 서비스가 함께 가야 한다. 또 다양한 주거모형이 만들어져야 한다.”

-법인과 시설 종사자들 거취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를 대신해 합법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재단 이사장을 하면서 서비스 제공자 대부분이 좋은 사람들이고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다는 걸 체감했다. 다만 장애인 당사자에게는 제도적인 학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만큼 지금의 체계가 가장 좋은 체계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의 시설이 변환할 수 있는 유인책을 열어줘야 한다. 미국의 경우 당사자가 주거서비스 기관이 소유하는 주택에 살고자 하는 경우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주거서비스의 구체적 기준을 만들어놨다. 직접 벽지를 고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 5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서비스 제공기관의 지원을 중단한다. 서비스의 기준을 탈시설화된 형태로 제시한 것이다. 지역사회에서 코디네이팅 중심으로 서비스를 바꿀 수 있다.”

-시설의 소규모화 이야기도 나온다.

“소규모화는 또 다른 시설화다. 탈시설을 하는 사람들이 중간단계를 만들지 말라고, 필요없다고 먼저 이야기한다. 시설 규모를 줄이는 식으로 가면 중증장애인은 소규모 시설에 남기려고 할 거다. 동등한 권리를 갖는 국민을 장애 정도로 차별할 수 없다.”

-시설의 변환과 함께 이뤄져야 할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

“탈시설 정책으로 가려면 우선 새로운 사람들, 특히 아이들이 시설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 자립주택 종사자들이 시설 수준의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시설 종사자들이 바깥으로 나와 자립 지원 서비스로 옮겨간다.”

-서 있는 곳은 달라도 20여 년 간 한 분야에 몸담았다. 그 시간이 준 깨달음이 있다면.

“사람이 우선이지 절대 제도가 우선이 아니다. 인권운동으로 시작해서 연구, 법인 운영으로 간 제 경험이 그렇게 말해준다. 결국 귀착되는 건 사람과의 관계다. ‘탈시설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따지는 가부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우리가 함께 길을 찾아나갈 것인가의 과정이고, 사회적 관계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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