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자전거 타기’ 같으니까, 페달을 밟는 한 넘어지지 않을 거야

2021.01.22 16:15 입력 2021.01.22 22:57 수정
이숙명

이숙명의 ‘유유자적’

올 초 가개장할 예정이었던 누사프니다의 한 리조트 식당. 1월 방문 예정이던 외국인 단체예약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됐고, 공사 마무리도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다.

올 초 가개장할 예정이었던 누사프니다의 한 리조트 식당. 1월 방문 예정이던 외국인 단체예약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취소됐고, 공사 마무리도 하염없이 길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코로나19 확산세는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1월12일부터는 하루 확진자 수가 1만명을 넘어섰다. 그래도 내가 사는 누사프니다에서는 심각성을 느끼기 힘들다. 이곳은 인구 밀도가 낮고, 사람의 왕래는 드물고, 슈퍼마켓 말고는 모든 상업시설이 환기 잘되는 테라스형 건물이라 대규모 확진 사례가 없었다. 팬데믹 초기 문을 닫았던 가게들도 로컬과 이민자 중심으로 수요를 맞추고 메뉴를 재정비해서 돌아왔다. 물론 여기서도 열 체크, 마스크 착용, 손씻기, 수용 인원 제한 같은 코로나19 프로토콜은 지킨다. 하지만 도시에 비해 위기감이 덜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러다 ‘하루 확진자 1만명’ 식의 수치를 보면 번쩍 정신이 든다. 아, 아직 멀었구나. 그때마다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작년 10월에 나는 플로레스에서 여객선 사업을 한다는 프랑스 사람을 만났다. 별생각 없이 “하는 일이 뭐냐” 물었는데 그가 울분에 차 긴 얘기를 쏟아냈다. 인도네시아에 반해서 이민을 온 그는 전 재산을 털어서 멋드러진 목선을 한 척 샀다. 그는 선주이자 선장, 여행 에이전트였다. 경기가 좋을 때는 2층짜리 여객선이 늘 만석이었다. 그러다 곧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목선은 유지비가 엄청납니다. 하루만 관리를 안 해줘도 탈이 생기기 때문에 직원 두 명을 고용해서 2교대로 배를 지키게 했어요. 수시로 엔진을 돌리고요. 그러지 않은 배들은 팬데믹이 선포되고 한 달도 못 가 바다에 가라 앉았어요. 나는 다음달이면 좋아지겠지, 하반기면 무슨 수가 생기겠지 하면서 인건비와 관리비를 쏟아부었어요. 이제 한계예요. 배를 팔려고 내놨더니 다행히 관심 갖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마지막 희망이에요. 하지만 그 후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자리를 뜰 때 그는 울고 있었다. 그 후 다시 그를 만나지 못했다. 어디선가 잘 살고 있기를 바랄 뿐이다.

내 주변에도 경제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체념 상태다. 작년 하반기에는 약간의 희망이 보였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소셜 비자 신청을 다시 받기 시작했다. 소셜 비자는 인도네시아인의 추천서만 있으면 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간단한 것으로, 6개월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예전 같은 전면 개방은 아니지만 장기 여행자들에게 여지를 준 것이다. 그에 따라 내가 투자한 리조트도 2021년 초에 가개장을 할 예정이었다. 해양 환경 프로그램 참가자 일곱 명이 한달 반 동안 묵기로 한 것이다. 리조트 공사 마무리도 그에 맞춰졌다. 그런데 지난해 말 영국에서 변이 코로나바이러스가 발견되자 새로운 방역 지침이 나왔다. 1월1일부터 15일까지 외국인 입국 제한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그에 따르면 외교관 비자, 거주 비자, 워킹 비자 등 소셜 비자보다 강력한 허가가 없으면 인도네시아에 들어올 수 없고, 입국자는 5일간 격리시설에 들어가야 한다. 당연히 단체예약은 취소되었다. 애초 프로그램 시작이 1월 중순이었으니 상황을 지켜보자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조치는 1월 말로 연장되었다. 언제 더 강력한 대책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변이 코로나에 여행객 ‘올 스톱’
올 초 개장 예정 리조트 공사도 차질
모두 우울하고 무기력해하던 때
때맞춰 주변서 동력을 제공해줬다

땅만 계약하고 미뤄둔 집 공사를
미팅 때 ‘일주일 뒤’를 말해놓고
이틀 후 땅 파는 굴착기 회사 덕에
날벼락 같이 시작하게 됐다

리조트에는 4년 된 다이빙센터와 새로 지은 숙소, 식당이 있다. 숙소와 식당은 아직 손볼 게 많아서 예약 취소가 반갑다. 하지만 1년 만에 번듯한 수입이 생길 뻔했던 다이빙센터 측은 실망이 크다. 단체예약 취소가 확정된 날, 나는 남자친구이자 다이빙센터 사장과 함께 외식을 하러 갔다. 우리는 피자 두 개를 주문했다. 그런데 주문 실수로 내 것만 나왔다. 이미 울적해하던 그는 급속히 식욕을 잃었다. 내가 농담을 했다.

“이게 지금 우리 상황이야. 나는 일찍 은퇴하기 위해 20년 동안 저축을 했고, 그 덕에 지금은 매일 늦잠을 자고 가끔만 일하는데도 쓸 돈이 있어. 작은 투자도 할 수 있고. 하지만 앞날은 알 수 없지. 말하자면 나는 인생에서 내 몫의 피자를 먼저 받은 거야. 네 피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나올 거야. 우리는 내 피자를 먼저 나눠먹고, 나중에 네 것이 나오면 그것도 나눠먹을 거야.”

필자의 집 공사 현장. 파는 곳마다 돌이 나와서 진척은 매우 더디지만 집 무너질 걱정은 없다며 안심하고 있다.

필자의 집 공사 현장. 파는 곳마다 돌이 나와서 진척은 매우 더디지만 집 무너질 걱정은 없다며 안심하고 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지만 마침내 피자를 집어들었다. 경제적 압박은 이렇게 주변의 협조로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생활의 리듬이 늘어지는 데서 오는 우울감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가 무기력증을 토로하자 한 친구가 말했다.

“그 심정 이해해. 다이빙 강사들은 다 이해할 걸. 성수기에는 정신 없이 바쁘고 지치고 ‘지긋지긋한 오픈워터(스쿠버다이빙 자격증 첫 단계) 그만 좀 가르치고 싶다!’ 절규하지. 그러다 비수기가 오면 처음엔 편해. 마구 늘어지지. 한동안 늘어져 있다 보면 일상을 추스르기가 힘들어. 우울하고 자괴감 들어. 그러다 다시 성수기가 시작되면 처음엔 너무 힘들다가, 점점 적응이 돼서 즐겁다가, ‘으악 오픈워터!’ 상태가 되고… 무한반복이잖아. 하하. 지금은 기나긴 비수기야. 우리 모두 우울하고 무기력해. 내가 이런 얘길 했더니 시아버지가 그러더라. ‘인생은 자전거 타기 같은 거야.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넘어지고 만다’고.”

자전거 비유는 다이빙 강사뿐 아니라 경기에 따라 생활과 감정의 기복을 피할 수 없는 사업가에게도 와닿는 얘기일 것이다. 나 같은 프리랜서도 마찬가지다. 내 어머니는 내가 힘들게 일하는 걸 원치 않으면서도 이따금 “사람이 너무 게으르게 살면 눈빛이 흐리멍텅해진다”며 계속 몸을 움직이라고 하셨다. 비록 자갈투성이 언덕이라도 우리는 페달을 밟아야 한다. 때맞춰 주변에서도 우리에게 동력을 제공해주었다. 본의 아니게 집 공사가 시작돼버린 것이다.

나는 땅을 계약해놓고도 설계를 하염없이 미뤘다. ‘대나무 지붕이 비싸? 그럼 콘크리트 평지붕으로 하자!’ 이게 아니라 ‘대나무 지붕이 비싸? 다른 업자를 찾아서 견적을 몇 개 더 받아보자’ 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바닥 면적만 결정한 상태에서 굴착기 회사 사람들과 미팅을 했다. 그들은 분명 “일주일 뒤에 다시 오겠다”고 했다. 나는 땅주인에게 일주일 후 공사가 시작되니까 그사이 대지에 남아 있는 소를 옮기고 옥수수도 수확하시라 일러두었다. 일주일이면 설계를 마무리하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런데 미팅 이틀 후 새벽에 땅주인이 사진 한 장을 보냈다. “굴착기가 와서 땅을 파기 시작했는데 어떡해야 돼?”라는 메시지와 함께. 역시 이곳 사람들의 시간 감각은 신비롭다.

나의 남자친구이자 공동 건축주, 그리고 내 옆집에 사는 건축회사 사장은 모닝커피를 한입에 마셔버리고 꼬리에 불이 붙은 개처럼 정신 없이 공사장으로 달려갔다. 옆옆집에 사는, 다이빙센터의 또 다른 사장이자 나와 같은 마을에 집을 짓게 되어 일괄 계약으로 건축 단가를 낮추기로 한 친구도 부리나케 달려갔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굴착기가 파파야 나무 한 그루를 처치하고 다 자란 망고 나무를 노리던 차였다. 짐작하겠지만 굴착기 기사들은 조경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눈에 거치는 것은 모두 밀고 파고 덮어서 평평하게 만드는 게 그들의 목표다. 하지만 내 땅은 그러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흙도 부족한 경사지라서 어디는 돋우고 어디는 남겨둔다는 계획이 필요했다. 게다가 나는 과실수들을 살리고 싶었다. 황급히 달려간 친구들이 스위트 망고와 아보카도 나무라도 구해준 게 다행이었다. 땅주인은 땅주인대로 부랴부랴 축사를 해체하고 소를 대피시키느라 오전 내 진땀을 흘렸다. 날벼락 같은 착공식이었다. 이 소식을 듣자 최근에 집을 완공한 친구가 깔깔 웃으며 말했다.

“공사를 해보니까 말이야, 뭔가를 시킬 때 인부들의 답은 두 가지야. ‘베속(Besok, 내일)’ 아니면 ‘수다(Suda, ‘이미 ~했다’는 의미의 완료시제)’. 하염없이 미루거나, 대처할 시간도 안 주고 저질러버리는 거지.”

우리의 경우에는 인부들이 먼저 일을 저지른 게 도움이 됐다. 그날 공사장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오후 내내 머리를 맞대고 건물 두 채의 스케치업(건물 설계에 유용한 3D 그래픽 프로그램) 파일을 완성했고, 자재도 대부분 결정했다. 하루가 저물 때는 모두 반쯤 혼이 나가 있었지만 모처럼 성취감을 만끽하는 듯도 했다. 그들이 눈을 빛내며 대화하는 걸 오랜만에 봤다. 역시 배든 자전거든 사람이든 꾸준히 써줘야 한다.

요즘 나는 하루 두 번씩 공사장을 둘러본다. 마침 우기라서 수시로 폭우가 쏟아진다. 낮에도 오고 밤에도 오고 하여간 아무때나 오는데 그중에서도 큰비는 주로 내가 길에 있을 때 퍼붓는다. 며칠 전에는 작업 마감시간에 맞춰 쏟아진 비 때문에 나와 남자친구, 우리에게 임대료를 받은 김에 집수리를 하고 있는 땅주인 가족, 굴착기 기사가 주차장 지붕 아래 오롯이 갇혔다. 대화도 운전도 불가능한, 무겁고 시끄러운 비였다. 사방이 안개에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신선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물고기 가족 같았다. 각자의 하루 일을 마치고 아무 걱정 없이 숨만 쉬면서 모여 있는 게 그랬다. 걱정이 없는 것은 우리가 마침내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 페달을 밟는 한 우리는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숙명

[다른 삶]인생은 ‘자전거 타기’ 같으니까, 페달을 밟는 한 넘어지지 않을 거야


영화잡지 ‘프리미어’, 패션지 ‘엘르’ ‘싱글즈’ 등에서 일했다. 27년차 프로 독거인으로서 <혼자서 완전하게>라는 책을 썼으며, 2017년 한국을 떠나며 짐정리를 하느라 고군분투한 얘기를 <사물의 중력>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발리 인근 누사프니다에 살면서 가끔 글을 쓰고 요가와 스쿠버다이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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