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사람과 동일한 감각 지닌 존재”...때 맞춰 반려견 산책 규정 ‘동물권 보호’

2021.01.15 16:16 입력 2021.01.15 23:42 수정
나승위

나승위의 ‘라곰 배우기’

반려견을 ‘사람과 동일한 감각과 감정을 지닌 존재’로 정의한 스웨덴의 반려동물보호법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돌봄 규정을 구체화해 두었다. 6시간마다 한번씩 산책을 시켜야 하는 규정에 따라 ‘산책전문 도우미’ 고용도 일상화됐다.

반려견을 ‘사람과 동일한 감각과 감정을 지닌 존재’로 정의한 스웨덴의 반려동물보호법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돌봄 규정을 구체화해 두었다. 6시간마다 한번씩 산책을 시켜야 하는 규정에 따라 ‘산책전문 도우미’ 고용도 일상화됐다.

어둠 짙고 으스스한 겨울 밤 9시에, 나는 혼자 동네를 산책할 수 있다. 내가 특별히 겁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시각에 나처럼 돌아다니는 동네사람들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들과 나 사이에는 두 가지 차이점이 있다. 하나는, 난 운동하러 나왔고, 그들은 개를 운동시키기 위해 나왔다는 점. 또 하나는 나는 내 맘대로 방향과 속도를 결정하여 걷고, 그들은 개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걷는다는 것이다.

라일락 환하게 피는 향기로운 봄날에는 밤 10시에도 혼자 동네를 산책할 수 있다. 그렇게 아름다운 어느 봄날 늦은 밤, 개를 산책시키는 한 술 취한 아주머니와 우연히 마주쳤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운동하는 나를 불러 세우더니 다짜고짜 아시아인들은 개를 먹는 야만인이라며 나보고도 혹시 개를 먹느냐고 따져 물었다. 술주정이었다! 어떻게 ‘가족’을 먹느냐고, 식인종이랑 뭐가 다르냐고! 난데없는 도발적인 질문에 좀 당황했는데, 술 취한 사람이 으레 그러하듯 아주머니는 혀가 살짝 꼬부라진 상태로 잠시 혼자 중얼중얼하더니, 개가 킁킁거리며 주변을 돌자 개를 따라 저쪽으로 흔들흔들 걸어갔다. 취중에도 밤중에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오다니, 참 대단한 ‘가족’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또 저 개는 자신의 주인을 얼마나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사랑할 것인가? 잠깐 사이에 내 감정이 당황스러움에서 부러움으로 변했다.

스웨덴에서 사는 개들이 행복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별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그 봄밤에 개를 “가족”이라고 말하며 그 가족이 걷는 방향을 따라 걸어갔던 아주머니 덕분일지 모른다. 물론 그 아주머니 외에 개를 가족이라 여기며 아낌없는 사랑을 주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스웨덴에서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또 다른 나라에서도.

1988년 스웨덴동물복지법 제정
6시간마다 한 번씩 산책 등 규정
ID 등록제로 유기견 별로 없어
보험가입율은 80% ‘세계 최고’

개 행동양식·성격 평가 프로그램
타고난 성향대로 자라게 배려해
배려심, 다른 생명체로 확장되길
모든 생명체는 서로 ‘반려’이니까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변한다. 변덕스러운 인간으로부터 충성스러운 동물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어디 인간이 변덕스럽기만 한가. 잔혹하기도 하다. 언론에 ‘학대’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걸 보면 ‘잔혹성’도 인간의 성정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슬프고, 자괴감이 든다.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학대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학대’라는 단어 앞에는 주로 ‘동물’이나 ‘아동’이 붙지 않는가.

물론 그렇다고 세상에 나쁜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변덕스럽고 잔혹한 인간들에게 학대당하는 동물들을 보호하고자, 법을 제정한 마음 따뜻한 사람들도 있었다. 1822년 영국 아일랜드 출신 정치가 리처드 마틴이 발의한 ‘가축(소)에 대한 잔인하고 부당한 취급을 방지하는 법’이 제정되었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로 성문화된 동물보호법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일명 ‘마틴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당시 영국의 장터에서는 동물들을 서로 싸우게 하는 투견, 투계 등의 잔혹한 유혈스포츠가 유행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당시 영국 국왕 조지4세가 ‘인도주의자 딕’이란 별칭으로 불렀을 만큼 마음 따뜻한 마틴 경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이렇게 영국에서 시작된 동물보호법은 유럽을 중심으로 순차적으로 진화 발전하였다. 모쪼록 동물들의 삶이 법이 발전한 만큼 실제로도 나아졌기를….

사는 나라에 따라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 사는 모습도 다르다. 숲속이나 산속 깊이 사는 동물들의 삶이야 비슷할 수 있겠지만, 인간사회 깊숙이 들어와 사는 개 삶의 모양새는 나라에 따라 정말 다른 것 같다.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 사람들의 성향, 법과 규율 등에 영향을 받게 마련이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개의 삶’이 사회를 읽어내는 한 코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길래 스웨덴에서 사는 개들은 행복하다고 할까?

개들이 행복하기까지, 스웨덴의 동물보호역사 역시 그리 짧지 않다. 스웨덴 최초의 동물보호조직인 ‘동물의 권리(Djurens Ratt)’가 설립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40년 전인 1882년이다. 현재 3만2000명인 이 단체 회원들은 모두 조직의 이름에 걸맞게 동물의 권리를 위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스웨덴에서 동물학대는 특별히 강한 사회적 지탄을 받는 범죄행위이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1988년, ‘스웨덴동물복지법’을 제정하여 동물에게도 복지혜택을 주었다. 동물복지법 서두에 “동물들에게 양질의 복지를 보장하고 동물들의 안녕을 도모하며 동물들을 존중하기 위함”이라고 법의 목적이 명시되어 있다. 동물들이 보호를 받아야 할 존재에서 “존중을 받아야 할 존재”로 승격된 것이다.

나는 개를 키우지 않고, 앞으로도 별로 키울 것 같지 않지만 만약 마음이 바뀌어 스웨덴에서 반려견을 키우고자 한다면, 나는 이곳 사람들처럼 반려견을 ‘사람과 동일한 감각과 감정을 지닌 존재(Animal Sentience)로 인식하고 존중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참 추상적인 말인데, 이 추상적인 말이 현실에서 법과 규정에 따라 이렇게 실현된다.

어디 한번 스웨덴에서 반려견을 키워 보자. 반려견을 들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스웨덴애견협회(Svenska Kennelklubben)의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사육사로부터 분양을 받는 것이다. 사육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품종의 개를 번식시켜 보존 분양해 돈을 벌고, 돈벌이 이상의 큰 보람을 느낀다. 분양 몇 년 뒤에도 개주인에게 연락해서 개의 안부를 묻는 사육사도 있다고 한다. 현재 회원이 30만명 이상인 비영리단체 스웨덴애견협회는 1889년 귀족과 사냥꾼들에 의해 사냥개를 사육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는데, 오늘날 협회의 가장 중요한 미션은 개의 순수혈통을 보존하는 것이다. 사육사나 개주인들은 협회를 통해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협회는 현재 300종이 넘는 품종에 대해 ‘품종보존을 위한 맞춤번식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두 번째는 블로켓이라는 매매 사이트를 통해 분양받을 수 있다. 사정상 개를 더 이상 키울 수 없게 된 개주인이 눈물을 머금고 개에게 새 주인을 찾아주는 사이트이다. 돈이 오고 가기는 하나, 생명을 주고받는 행위라 양쪽 모두 대단히 신중하다. 나의 한 친구는 블로켓을 통해 개를 들였는데, 전 주인이 얼마나 울던지 마음이 정말 짠했다고 했다.

스웨덴의 개들은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면서 동물병원이나 팻숍 유리창에 진열되지 않는다. 유리창 전시는 개를 사람과 동일한 감각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고 존중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반려견이 내 가족이 되었다면 어떤 환경을 제공해주어야 할까? 스웨덴의 반려동물보호법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조목조목 세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불필요한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하며, 충분한 물과 음식, 따뜻한 보살핌과 충분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제공되어야 하고, 건강하고 본능적인 행동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해주어야 한다. 6시간마다 한 번씩 산책을 시켜야 하고, 실내에 있을 때는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이 있어야 한다. 개는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므로 혼자 오래 두어서는 안 된다. 실내에서는 묶어둘 수 없고, 실내 공기의 암모니아 수치는 10PPM 미만, 이산화탄소는 3000PPM 미만이어야 한다. 새끼일 경우, 생후 8주까지는 어미와 떼어 놓을 수 없고, 경품이나 제비뽑기 상품으로 취급될 수 없다. 그리고 생후 4개월 이전에 반드시 스웨덴 농림부에 반려견 ID 등록을 해야 한다.

이외에도 반려인이 지켜야 할 규정이 많지만, 나는 아직 반려견을 키울 마음이 없기 때문에 더 읽지 않았다. 만약 반려인이 이런 규정들을 어길 경우, 따뜻한 마음을 지닌 냉정한 이웃은 경찰에 신고한다. 앞서 취중에도 한밤중에 개를 산책시킨 아주머니는 그저 규정을 준수한 것이었나. 물론 반려견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겠지만, 동기가 어떻든 개는 동물복지법이 정한 권리를 보호받았다. 개를 혼자 오래 두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은 주인이 직장에 가 있는 동안 돌봐주는 ‘강아지 유치원’을 양산했고, 강아지 돌보미 일자리도 만들었다. 6시간마다 개를 산책시키는 산책전문 도우미도 있는데,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 일거리이다. 스웨덴은 민간보험임에도 불구하고 반려견 보험가입률이 80%로 세계 최고이다. 동물보호법 선진국으로 알려진 영국이나 노르웨이 등의 보험가입률이 대략 20%라고 하니 비교할 수 없이 높은 수준이다. 스웨덴 반려견들은 병에 걸려도 치료비 걱정이 없고, 반려견의 엄격한 ID 등록제 덕분에 유기견도 별로 없다.

스웨덴 사람들은 어린아이도 독립적인 개별 인격으로 존중하고, 부모는 자녀를 부모의 바람대로 키우는 게 아니라 자녀가 타고난 성향대로 자라도록 배려한다. 그래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한국인인 나는 때때로 그렇게 쿨하기 어렵다. 그런데 스웨덴의 동물 관련 법들과 제공 프로그램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반려견의 사육방식도 이와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를 털로 평가하지 말라’는 북유럽 속담이 있다. 개에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내면이 있다는 말인데, 이 속담을 증명이라도 하듯 스웨덴애견협회는 ‘개의 행동양식과 성격 평가(BPH)’라는 스웨덴만의 독특한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7단계의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여 그에 대한 개의 반응을 살펴보고 개의 천성을 파악하는 프로그램인데, 개와 개주인이 동시에 참여한다. 마치 자녀처럼 개도 타고난 성향대로 자라도록 배려하려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동물을 사람과 동일한 감각을 지닌 존재로 여긴다는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데, 그래서 스웨덴에서 사는 개가 행복한 것 아닐까 싶다.

그런데 개만 타고난 성향대로 자라고 살도록 배려받아야 하는가. 어떤 동물들은 성향대로 사는 건 고사하고 자신의 서식지에서 강제로 끌려와 동물원 철창에 갇혀 지낸다. 일반 자연생태계에서라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동물들이 사람을 위해 한자리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것이다. 불공평하다! 동물원에 갈 때마다 짠했고, ‘자연을 거스른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스코네 동물원’은 달랐다. 원래 서식지가 스칸디나비아인 동물들만 모아 놓았고, 그들의 생태적 삶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서식지 주변에 널찍이 울타리를 쳐놓은 모습이었다. 비록 동물원에서지만, 스코네 동물원의 동물들은 자신의 성향에 맞는 자연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물론 인간을 위해 위락시설을 갖추고 밀림의 왕자 사자를 볼 수 있는 동물원이 스웨덴에도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서로의 삶에 의존적이다. 모두 함께 얽히고설켜서 복잡하고 놀라운 생태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모든 생명체는 서로에게 ‘반려’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삶은 서로 의존적이지만, 지구 생태계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모두 자신의 성향에 맞는 자연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

산책길에 개의 목줄을 끌지 않고, 개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걸어가주고, 개의 성격을 파악하여 성향에 맞춰주려는 배려심이 다른 생명체로도 확장되면 좋겠다. 비록 만물의 영장이라고는 하나 인간도 거대한 생태계 속에 그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곧 모든 생명체는 인류에게 ‘반려’이니까.



나승위

나승위

갑자기 스웨덴에서 일자리를 찾은 남편을 따라 아들 셋을 데리고 남부 도시 말뫼에 왔다. 처음엔 아무 연고 없는 곳에서 뭘 하며 사나 했는데, 지금은 제법 바쁜 사람으로 통한다. 스웨덴을 한국에 소개하는 책 <스웨덴, 삐삐와 닐스의 나라를 걷다>와 <스웨덴 일기>를 썼고, 스웨덴 사람들에게 한국의 맛을 소개하고자 비빔밥을 파는 도시락 가게를 최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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