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길 달리는 승합차···범죄에 노출된 ‘노래방 도우미’

2021.09.13 10:29 입력 2021.09.13 16:19 수정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경향신문 자료사진

위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경향신문 자료사진

얼굴을 슥 보더니 “일 할 거예요, 말 거예요?”라고 물었다. “의사가 있다”고 하자 이번에는 나이를 확인했다. 이름이 뭔지, 왜 일을 하려고 하는지는 궁금해하지 않았다. ‘노래방 도우미’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뒤 직업소개소 실장을 만난 자리였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만난 노래방 업주의 소개로 실장과 연락이 닿았다.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훼손 살인범 강윤성(56) 사건을 계기로 노래방 도우미들의 ‘안전’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기자는 업계 사정을 잘 아는 실장을 만나 내막을 들어보고, 도우미들의 일하는 패턴을 살펴보기 위해 직접 ‘픽업’ 차량에 타보기로 했다. 지난 8일 밤 강윤성이 누볐다는 서울 송파구 일대 노래방들을 다녔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 노래방 업주와는 연락을 수시로 주고받았다.

짙게 선팅이 된 8인승 봉고차 안의 적막을 깨는 건 도우미들을 찾는 전화벨 소리였다. 휴대전화 2개를 든 실장은 1개로는 노래방 업주로부터 콜을 받고, 다른 1개로는 도우미들과 통화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여성들을 관리하는 대가로 손님들이 지불한 도우미 호출금액의 23%를 수수료로 챙긴다는 실장은 직접 차를 몰고 다니면서 도우미들을 ‘픽업’했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빌 때마다 도우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령층은 40~50대가 대다수였다. 노래방에서 갓 나온 도우미들은 목이 쉬어 있었다. 이들은 차 안에서 각종 정보를 주고 받았다. 자주 찾는 단골 손님들은 모두 잘 아는 듯했다. 한 노래방에서 콜이 들어왔다는 이야기에 도우미 여성은 “또 그 문신한 사람들이겠지? 거긴 너무 힘들어서 오늘은 안 갈래”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여성이 “그래도 지저분하게 놀지는 않지 않아?”라고 대꾸했다. 어떤 도우미 여성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연락이 안 된 지 2~3주는 넘은 것 같은데…. 내일은 한 번 전화를 해봐야겠어”라는 말도 오갔다.

실장은 기자에게 “한 달에 얼마를 벌고 싶냐”면서 “여기는 다 돈이다. 돈만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2차’를 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노래방 도우미들이 표적이 된 강윤성 사건을 언급하며 “범죄 노출이 걱정된다”고 말을 꺼냈다. 실장은 잠시 당황하는 듯하더니 이내 “그런 살인사건은 10만 분의 1이다. 매일 그런 일이 벌어지면 도우미들이 어떻게 일을 하겠느냐”고 했다. 그러더니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위험할 것 같으면 나와야지”라고 했다. 도우미 여성를 보호할 안전망은 없어 보였다.

늦은 시각까지 도우미들을 호출하는 전화벨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실장은 중간중간 업주들에게 대기하는 도우미들의 상황을 알렸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여성들은 핸드백 하나를 어깨에 둘러맨 채 홀로 노래방으로 향했다. 이어 차량도 유유히 다음 동선을 향해 이동했다.

서울 송파구 일대 한 노래방 업주에게 온 도우미 여성 홍보글. 유선희 기자

서울 송파구 일대 한 노래방 업주에게 온 도우미 여성 홍보글. 유선희 기자

음악산업진흥법에 따르면 노래방 도우미를 고용·알선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노래방 도우미를 찾는 수요는 여전하고 생업 차원에서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이들도 많다. 직업 자체가 불법적이어서 범죄 피해를 당하거나 위협을 느껴도 신고하기 어렵다. 음지에서 생활하다보니 실종이 돼도 제때 알려지지 않는다. 강윤성 사건에서도 첫 번째 피해 여성은 살해된 지 사흘이 지나 강씨가 자수할 때까지 실종 신고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노래방 도우미들의 현실을 파악하려고 시도한 잠입 취재에서 확인한 사실은 ‘개인 자율’ 혹은 ‘개인 판단’이란 이름에 기댄 ‘안전망 부재’였다.

강씨는 지난달 26일 오후 9시30분에서 오후 10시 사이 본인의 자택에서 40대 후반 여성 1명을 계획적으로 살해하고, 이튿날인 27일 오후 5시30분쯤 전자발찌를 절단한 후 도주했다. 다음날인 28일 오후에는 50대 초반의 여성을 불러냈는데, 여성이 “빌려준 돈을 상환하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29일 오전 3시30분 잠실한강공원 주차장에 세워둔 차 안에서 살해했다. 피해 여성들은 모두 노래방 도우미들이었다. 강씨가 범죄에 취약한 대상을 골라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송파구 일대에서 노래방 도우미로 일했던 A씨는 기자와 만나 “손님들이 어떻게 돌변할지 알 수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 권유하는 술을 마신 뒤 취해 있는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며 “유흥업소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에서 오히려 피의자 신분이 될까 두려워 신고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주변에는 취한 손님이 휘두른 맥주병에 다치거나 2차 자리에 나갔다가 감금 당한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A씨는 그러면서 “내 일이 아니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A씨는 “저희끼리는 ‘출근해서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일상인데, 이번 강윤성 사건을 보면서 다들 ‘내가 경험하는 환경과 다를 게 없다’고 느끼고 있다”며 “유흥업소에서 일한다고 범죄가 용인돼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서 일하든지 ‘나를 지켜줄 안전망’이 필요하지 않나. 이 요구에 사회가 응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자발찌를 훼손하기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강윤성이 지난 7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됐다. 한수빈 기자

전자발찌를 훼손하기 전후로 여성 2명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강윤성이 지난 7일 서울 송파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됐다. 한수빈 기자

노래방 도우미들이 각종 범죄에 노출된 사실은 판결문에서 확인된다. 대법원 판결문 검색 시스템을 통해 최근 2년간 노래방 도우미들 사건 관련 확정 판결문 26건을 들여다봤다. 14건(53.8%)이 노래방 운영과 직접 관련이 있었는데, 도우미들의 피해와 관련한 사건은 5건(35.7%)에 불과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노래방 도우미들은 준강간, 강간, 강제추행, 폭행, 절도 피해 등에 노출돼 있다. 절도 피해를 제외한 4건 중 대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된 사건은 1건에 불과했다.

범죄에 노출돼도 신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어 실제 피해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민단체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이 지난해 노래방 도우미를 포함한 유흥종사자 131명을 대상으로 1478건의 상담을 진행한 결과 법률 관련 내용이 448건으로 가장 많았다. 법률 상담에서는 성폭행·상해를 다룬 내용이 84건, 사채·일수로 인한 개인회생이나 파산 면책 상담이 83건이었다.

장윤미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13일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처한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노래방 도우미 관련 범죄는 암수범죄화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며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사정을 악용해 가해자가 여자들에게 책임을 돌리는 부분이 법원에서 유리하게 참작돼서는 안 된다. 범죄를 신고하면 실무에서 (유흥업 종사의) 불법을 문제삼지 않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유나 이룸 활동가는 “성산업 종사 여성들이 범죄 대상이 되기 쉬운 것은 법제도의 사각지대에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성을 판매하는 여성을 함부로 대하고 차별해도 용인되는 사회인식이 더 문제”라며 “사회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의 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측도 “어떤 일을 하든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안전망에서 일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인 만큼 성산업 노동자의 법적 노동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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