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사각지대' 한국교회...교인 60%는 "제대로 된 대처 시스템 없어"

2021.11.18 15:14 입력 2021.11.18 15:30 수정

한국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18일 오후 서울 중구 공산새실에서 ‘개신교 성인지 감수성 여론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 및 포럼’을 열고, 여론조사 발표를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한국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18일 오후 서울 중구 공산새실에서 ‘개신교 성인지 감수성 여론조사 결과발표 기자회견 및 포럼’을 열고, 여론조사 발표를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드러낼 수 없기 때문에 곪아 가는 거예요.”

가정환경이 어려웠던 A씨는 대여섯 살 때부터 교회와 부설 지역아동센터에서 음식·교육비 등을 지원받았다. 그는 중학교 1학년이 되던 해 담임 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했다. A씨는 “이후로도 성적 추행이 수도 없이 이어졌다”면서 “(비슷한 피해를 당한) 다른 아이들이 어른들을 찾아가서 얘기했지만 ‘거짓말하지 말라’는 답만 돌아왔다. 아무에게도 말할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성인이 된 후에야 상담 치료를 시작했고, 시민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2019년 해당 목사를 고발했다. 목사는 1심에서 징역7년을 선고받고 항소한 상태다.

개신교인·목회자 1012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교인 응답자의 20% 이상이 성폭력 피해를 직접 겪거나 피해 사례를 들은 적 있다고 응답했다. 이 설문조사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해 온라인으로 실시했다. 현재 교회에 나가고 있는 만 19~65세의 개신교인 800명(여성 446명, 남성 354명)과 목회자 212명(여성 5명, 남성 207명)을 대상으로 했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교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직접 경험했거나 경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22.5%가 ‘(손이나 어깨 등) 가벼운 신체 접촉’이라고 답했다. ‘외모에 대한 성적 비유 및 품평’은 11.0%였다. ‘(엉덩이나 가슴 등) 심한 신체 접촉’은 2.1%, ‘원하지 않는 성관계 요구’는 2.0%로 집계됐다(중복응답 허용). 박신원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상담팀장은 “성관계 요구 등 극심한 성폭력 비율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이런 피해가 목사 등으로부터 발생했을 때 훨씬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방식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성범죄 대처 시스템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현재 한국교회가 성범죄에 대처하는 시스템을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 물었더니 개신교인의 55.9%, 목회자의 93.7%가 ‘잘 갖춰져 있지 못하다’고 평가했다.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에 대해 개신교인은 ‘사건을 덮는 데에만 급급함’(63.1%)과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공적인 기구가 없음’(61.6%)을 많이 꼽았다.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 2012년부터 수차례에 걸쳐 성추행 피해를 경험한 B씨는 “교회에 사실을 알렸지만 감추려고만 하고 덮으려고만 하더라. 너무너무 시스템이 없다”면서 “피해자에게 교회를 떠나라고 하며 신천지로 몰아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개신교인 대다수는 교회 내 성폭력 예방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인식했다. 교회나 기독교 기관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은 적 있는지 물었더니 개신교인의 82.2%가 ‘없다’고 응답했다. 권미주 장로회신학대학 목회상담학 교수는 “교회 안에서 ‘성’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다 보니 교회 내 (성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없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종교적 신뢰 관계 내에서 일어나는 폭력이기 때문에 친족 성폭력과 비슷하게 피해자가 피해를 인지하는 데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말했다.

목회자와 일반 교인 간 인식차도 컸다. 목사가 교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개신교인 대부분(86.5%)은 ‘영구적으로 제명해야 한다’고 답한 반면 목회자는 44.6%만 ‘영구적으로 제명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49%는 ‘목사직을 정직시키고 일정기간 지나 복권시킬 수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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