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말은 많은데···왜 그동안 효과가 없었을까요?

2022.09.24 09:00

기후 위기를 인식한 ‘청소년기후행동’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글로벌기후파업’을 열고 있다. 글로벌 기후파업은 전 세계적 청소년 연대체인 Fridays for future가 주도하는 동시다발 시위다./문재원 기자

기후 위기를 인식한 ‘청소년기후행동’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글로벌기후파업’을 열고 있다. 글로벌 기후파업은 전 세계적 청소년 연대체인 Fridays for future가 주도하는 동시다발 시위다./문재원 기자

녹색성장, 탄소중립, RE100…기후위기 대응 캠페인은 넘쳐나는데, 왜 지구는 매년 뜨거워질까?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역사적인 협정이 체결됐다. 온실가스를 제한해 21세기 동안 지구의 평균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1.5도 이내로 억제하자는 내용의 ‘파리협정’이었다. 195개국이 채택한 파리협정은 현재 전 세계의 기후위기 대응 기조를 마련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전 세계가 합의하면서 녹색성장, 탄소중립, RE100 등 여러 캠페인도 힘을 얻었다.

그러나 2022년 9월, 7년 남짓한 세월이 흘렀지만 기후위기는 해결되긴커녕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산업화 이후 지구의 기온은 이미 1.1도 올랐다. 전문가들은 21세기 안에 산업화 이전보다 기온이 2.5~2.7도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 역대 최고 온도 1~7위를 기록한 해는 모두 최근 7년(2015~2021년) 사이에 들어있다. 온도 상승으로 인한 폭염과 가뭄, 산불, 폭우 등 자연재난은 점점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2017년 7월22일 북극곰 한 마리가 캐나다 북극해 제도의 프랭클린 해협에 떠 있는 얼음조각 위에 애처롭게 서 있다.  AP통신

2017년 7월22일 북극곰 한 마리가 캐나다 북극해 제도의 프랭클린 해협에 떠 있는 얼음조각 위에 애처롭게 서 있다. AP통신

이로 인해 기후정의를 요구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기후위기 대응 기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 주장의 핵심은 ‘녹색성장’도 결국 ‘성장’이라는 것이다. 성장은 대량생산과 이윤추구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데 탄소와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밖에 없는 ‘성장’이 ‘녹색’의 앞에 온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얘기다. 성장중심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탄소중립과 RE100 등 기업·산업 중심 기후변화 대응이 낳는 한계도 있다. 기업의 존재 이유는 ‘이윤추구’다. 재생에너지·친환경은 상품명 앞에 붙이기 좋은 마케팅 구호가 됐다. 그런 제품을 뽑아내기 위한 친환경 산업전환 과정에서 사람이라는 ‘비용’이 발생한다면, 기업은 언제든지 그 비용을 버릴 준비가 돼 있다. 예를 들어 석탄화력발전소를 닫아버리면 그곳에서 일하던 직원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해고자가 된 채 해가 갈 수록 점점 뜨거워지는 집에 있게 될 것이다. 탄소는 기업이 잔뜩 뿜어내지만, 그 피해는 오롯이 노동자가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노동자들은 친환경 산업전환이 반드시 ‘불평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민주노총과 프랑스노총, 독일 로자룩셈부르크재단은 ‘기후행동주간’을 맞아 지난 20일부터 22일까지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지구적 연대와 체제 전환 국제 노조 포럼’을 열고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아시아에서 열린 노동계 최초의 기후 포럼인 이번 행사에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에서 온 29명의 해외 노동계 인사들이 참여했다.

‘ESG’ ‘친환경’ 목놓아 외치지만···기업은 결국 돈 따라간다

포럼에서는 정부와 기업이 진지하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각국의 사례가 소개됐다. 파비엔 후시 프랑스노총 생태전환위원은 “2016년부터 유럽의 상위 25개 은행은 석유와 가스 생산을 주도하는 상위 50개 기업에 400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하고 있다”면서도 “어이없게도 이들 금융 기관 중 24개가 넷제로뱅킹얼라이언스(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글로벌 은행 연합)에 동참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서부발전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전경 /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제공

한국서부발전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전경 /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 전체대표자회의 제공

프랑스 최대의 온실가스 배출 기업은 석유기업 ‘토탈’이다. 2019년 토탈은 프랑스 전체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맞먹는 4억5000만t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다. 그런데 프랑스은행은 2015년 이후만 해도 이 기업에 150억유로(20조7858억원)를 투자하고 있다.

친환경 산업전환을 명분 삼아 제품 생산을 가속화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웨덴 볼보자동차 노동자이자 저술가인 라르스 헨릭슨은 “오늘날 정치인과 업계 모두에게 해결책은 전기 자동차이지만, 친환경 자동차 개념은 결코 환경을 살리는 방법이 아니라 기후 불안의 시기에 자동차를 파는 방법”이라며 “전기차도 전력의 3분의 2는 화석연료를 태우는 데서 나오기 때문에 전기 자동차는 대부분의 경우 단지 더 효율적인 화석연료 자동차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문제로 노르웨이 정부는 “어떤 제품이 다른 제품보다 덜 해롭다는 이유만으로” 친환경 인증을 해주지 않기로 결정하기도 했다.

친환경의 이름으로 당신을 해고합니다?

기업들이 산업 전환에 따르는 비용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대량 정리해고가 대표적이다. 자동차 브랜드 ‘보쉬’의 이탈리아 바리 공장은 흡열 엔진을 쓰는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며 7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발표했다. 노동자들이 파업과 시위 등으로 정리해고 사태를 막았지만, 노동자에 대한 고려 없는 전환이 어떤 사태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국가 수입의 65%가 석유가스에서 나오는 나이지리아의 아폴라비 올라왈레 나이지리아석유가스노조 사무총장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나이지리아 정부는 온실가스를 20~47%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낸 바 있다. 석유 산업 구조조정이 예상되지만, 나이지리아 고용의 15%를 석유산업이 책임지고 있다. 올라왈레 사무총장은 “실업과 해고 타격을 축소하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충분한 사회적 대화와 모든 계층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후 위기를 인식한 ‘청소년기후행동’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글로벌기후파업’을 열고 있다. 글로벌 기후파업은 전 세계적 청소년 연대체인 Fridays for future가 주도하는 동시다발 시위다./문재원 기자

기후 위기를 인식한 ‘청소년기후행동’ 학생들과 관계자들이 23일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글로벌기후파업’을 열고 있다. 글로벌 기후파업은 전 세계적 청소년 연대체인 Fridays for future가 주도하는 동시다발 시위다./문재원 기자

해고 전에도 노동자들은 기후위기 최대의 피해자다. 저임금 고강도 노동자일수록 더 심각하다. 야외에서 일하는 농업 노동자에게 기후변화는 노동의 근간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다. 무하마드 히다얏 그린필드 국제식품노련 아태지역 사무총장은 “결국 안전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에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일사병이나 열사병은 생산성을 줄이지만, 정작 노동자는 일의 목표나 할당량을 맞추기 위해 속도나 강도를 높여야 한다”며 “농어촌은 지구에 먹거리를 공급한다. 공적 재정으로 뒷받침된 물리적 사회적 보호망이 없다면 기상 이변은 식량 위기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했다.

유럽에서는 우크라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로 최저임금 노동자들이 고충을 겪고 있는데, 이 또한 에너지기업들이 기후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은 탓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로맹 데스코트 프랑스노총 활동가는 “에너지 산업 주체들이 막대한 이윤을 대안에너지에 재투자하지 않았다”며 “결국 기업들은 구조적 해법보다는 신용 및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낙오 없이 제대로, ‘정의로운 전환’

포럼 참석자들은 기후변화 대응 정책 수립에 노동자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들어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환 과정에서 정부가 실업과 구조조정, 해고 같은 문제를 제대로 챙겨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후위기 대응 거버넌스에 당사자가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미디 인도네시아노총 사무총장은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려면 정의로운 전환의 기본원칙이 포함돼야 한다”며 “완화정책의 영향을 받는 노동자를 위해 정보를 공개하고 조기에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실업, 구조조정, 해고 등 영향으로 소득이 감소한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지구적 연대와 체제 전환 국제 노조 포럼’ 폐막식에 참석한 참여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지난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지구적 연대와 체제 전환 국제 노조 포럼’ 폐막식에 참석한 참여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해람 기자

정부·공공의 역할도 중요하다. 김상민 금속노조 정책실장은 공공의 개입 없이 개별 기업과 노동자가 기후변화 대응을 책임질 경우 양극화가 더 커진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개별 기업의 책임으로 전가하면 전환에 적응할 만한 기술과 자본을 가진 대기업과 그렇지 못한 중소기업의 기술격차가 확대되고, 생산성 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확대된다”며 “개별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면 취업자·실업자 간 경쟁이 심화되고 노동자 간 격차가 확대된다”고 했다.

산업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들이 좋은 기후변화 대응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700명 대량해고를 추진했던 이탈리아 바리 공장은 해고 대신 기존의 생산라인을 전기자전거 등 생산라인으로 바꿨다. 온난화를 가속하는 생산 대신 ‘사회적으로 유용한 생산’을 하자고 논의한 결과다. 라르스 헨릭슨은 “자동차 산업은 한 가지만 생산할 수 있는 탄광이 아니다. 거의 모든 종류의 장비를 생산할 수 있고 유연하다”며 “대량 생산과 변환에 관한 이 지식은 자동차 노동자들의 세포에 스며들어 있다”고 했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지구적 연대와 체제 전환 국제 노조 포럼’에서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결의문 초안을 읽고 있다. 조해람 기자

지난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후정의를 위한 노동의 지구적 연대와 체제 전환 국제 노조 포럼’에서 양동규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결의문 초안을 읽고 있다. 조해람 기자

물론 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은 각자 다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탄소산업과 탈산소산업 등 차이가 있다.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폭넓게 연대하는 것이 진정한 ‘전환 역량’이라고 했다. 탈성장과 생태사회주의 등 기후위기에 대한 여러 의견을 통합하며 모든 이들이 함께 참여하는 정치적 구성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흘 간의 포럼에 참여한 노조와 사회운동조직들은 포럼 마지막날인 지난 22일 기후정의와 체제전환을 추진하자는 결의안 작성에 동의했다. 이날 공개된 결의안 초안은 “기후위기를 초래한 원인은 지속가능하지도 않고 불평등하기만 한 성장과 이윤 중심의 체제에 있다”, “녹색성장, 녹색자본주의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기후정의, 불평등한 체제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공성과 기본권이야말로 올바른 기후위기 대응과 정의로운 전환 실현을 위한 두 날개” 등의 내용이 담겼다. 포럼에 참여한 이들은 약 한 달 간의 논의를 거쳐 결의안을 확정하고 채택할 예정이다. 이들은 23일 포스코 등 탄소배출 사업장을 방문하고, 24일 ‘기후정의행진’에도 참여한다.

‘9·24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와 ‘다른세상을 만드는 봄바람’ 회원들과 시민들이 21일 서울 강남구 SPC스퀘어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삼성 본사를 거쳐 포스코센터까지 행진하는 ‘9·21 혼쭐내러가자 기후악당 강남행진’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9·24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와 ‘다른세상을 만드는 봄바람’ 회원들과 시민들이 21일 서울 강남구 SPC스퀘어 앞에서 집회를 열고 삼성 본사를 거쳐 포스코센터까지 행진하는 ‘9·21 혼쭐내러가자 기후악당 강남행진’ 행사에 참가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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