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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은 왜 지하철 탑승 시위 재개했나···장애인 권리 예산 ‘0.8%’의 의미

2023.01.03 17:41 입력 2023.01.03 20:02 수정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지하철 타기 행동에 나섰으나 승차를 저지당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회원들이 2일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확보를 위한 지하철 타기 행동에 나섰으나 승차를 저지당하고 있다. 한수빈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재개했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키거나 이들의 지하철 탑승을 제지하며 강경 대응하고 있다. 전장연이 연초부터 시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지, 해법은 없는지 짚어봤다.

전장연은 무엇을 요구하나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 예산’ 증액을 요구하며 지난해부터 시위를 벌였다. 장애인 권리 예산은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을 뜻한다. 장애인의 권리는 이동할 권리,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일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등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이다.

장애인 권리 예산이 어떻기에

(전장연 요구 예산)100%→(국회 상임위)51%→(기획재정부)0.8%

전장연은 올해 장애인 권리 예산을 전년보다 1조3044억원 늘리라고 요구했다. 여야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합의한 증액 예산은 전장연 요구안의 절반 수준인 6653억900만원. 전장연은 정부에 이것만이라도 통과시켜달라고 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0일 국회 예산안 처리 시점까지 지하철 시위를 중단해달라고 제안한 데 응해 시위를 한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전장연이 요구한 증액 예산 중 106억8400만원(고용노동부 장애인 고용관리 지원 사업)만 반영했다. 전장연 요구안의 0.8%에 불과하다. 예산을 쥐고 있는 기획재정부가 상임위의 합의안마저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장연은 “근로지원인 지원 예산 이외에는 증액된 게 없다”고 말한다. 특별교통수단(장애인콜택시) 운영비 및 신규 도입 지원 사업, 활동지원 서비스, 탈시설 사업 등에 배정된 예산 증액분은 한 푼도 없다.

올해 예산안 뜯어보니

전장연이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여당 지도부를 만나 건넨 장애인 권리 예산 요구안을 뜯어봤다.

지역별로 저상버스 보급률 편차가 크다 보니 장애인들은 특별교통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 기준은 보행불편 장애인 150명당 1대이다. 그러나 법정대수를 넘긴 지역은 경기(112.8%), 경남(105.9%) 두 곳뿐이며, 서울은 85.1%에 그쳤다. 부산(56.4%)과 인천(57.3%)은 겨우 절반을 넘겼다. 장애인이 이동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정부가 지난해 9월 세운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신규 사업(특별교통수단 도입 보조 운영비 지원) 예산안은 237억5000만원, 상임위 수정안은 868억8000만원이었다. 전장연은 정부안보다 1437억 5000만원을 더 배정하라고 요구했지만 정부안이 그대로 관철됐다.

장애인 대다수는 일상생활을 위해 활동지원 서비스를 받아야 하지만 활동지원사 처우가 열악한 탓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다. 이에 전장연은 활동지원사 수가를 현행 15570원에서 17000원으로 인상할 것을 요구했다. 월평균 지원 시간을 127시간에서 150시간으로 확대하고 활동지원 대상자를 11만5000명에서 12만5000명으로 증원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정부 예산안은 1조9918억7900만원, 상임위 수정안은 2조5409억1800만원이었다. 전장연은 정부안 대비 6539억7200만원 증액을 요구했지만 예산은 주간보호시설 기능 보강(6억2900만원), 직업재활시설 기능 보강(4억1900만원) 등 일부만 증액됐다.

그밖에 ‘자립 지원’ ‘탈시설’ 예산, 장애인 교육 예산 등 증액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권리, 일할 권리, 교육받을 권리 등 장애인이 사람답게 살아갈 권리를 보장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라고 전장연은 말한다.

시위는 왜 격화되나

지금 전장연이 요구하는 것은 ‘예산 증액’이라기보다 ‘예산 증액을 위한 실질적인 대화’이다. 지하철 승하차 시위는 ‘실질적인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을 제압한 뒤 지지율 상승의 맛을 본 여권에선 강경 대응 기조가 자리잡았는데, 서울시 대응도 그 연장선으로 보인다.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법원의 강제조정안을 거부한 것이 단적인 예다. 서울교통공사는 전장연과의 민사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이 제시한 강제조정안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이날 제출했다. ‘타협은 없다’는 것이다.

대화 테이블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출구 없는 시위와 강경 대응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감정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해법은 없나

전문가들은 권한과 책임을 가진 정부·지자체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말한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오세훈 시장은 ‘마포 소각장’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도, 전장연 문제에서도 정책 결정 주체는 오로지 ‘서울시’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이제는 일방적 행정을 하는 시대가 아니라 각 주체가 공동으로 해법을 모색해야 하고 우리 사회도 그런 소통 방식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양측의 감정이 고조되기만 할 뿐이다. 정도는 ‘대화’ 외에는 없다”며 “정부와 지자체는 ‘떼법은 나쁘다’며 행위자를 누르려고만 하는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당사자로서는 더 강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목숨을 거는 투쟁은 정부와 지자체가 ‘불통’이라는 근거이기도 하다”고 했다.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저희는 이 상태를 풀고 싶어도 권한이 없고 결정권도 없다”며 “대화에라도 진지하게 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시민 불편을 앞세워 전장연과 나머지를 ‘갈라치기’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들의 권리와 시민 불편 최소화를 할 방안을 빨리 내놓는 게 답”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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