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이상한 남자” 이야기 들어보실래요?···나다운 몸으로 사는 법

2024.02.13 06:00 입력 2024.02.13 06:13 수정

⑤규정을 거부하며, 존재하는 몸

성희씨가 지난달 3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트랜지션 초기에는 호르몬 요법, 외과수술, 완벽한 패싱이 트랜스젠더의 요건인 줄 알았다”며 “다양한 젠더 퀴어들을 만나면서 트랜스젠더마다 정체화하는 과정도,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욕구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성희씨가 지난달 3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인터뷰가 끝나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트랜지션 초기에는 호르몬 요법, 외과수술, 완벽한 패싱이 트랜스젠더의 요건인 줄 알았다”며 “다양한 젠더 퀴어들을 만나면서 트랜스젠더마다 정체화하는 과정도, 의료적 트랜지션에 대한 욕구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여성스럽다.” “남자답다.” 살면서 종종 듣는 말이다. 성별 뒤에는 사회가 해당 성별에 기대하는 외양, 역할 등이 따라붙곤 한다. 그런데 성별은 개인의 의지가 작용하는 영역이 아니다. 태어날 때의 성기 모양과 염색체 등으로 의사가 판단해 부여한다.

누군가는 지정된 성별과 자신이 다르다고 느낀다. 자신이 남·여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몸과의 불편한 긴장관계를 수시로 감각한다. 오랫동안 국가가 외면한 몸들이다. 인구주택총조사를 비롯해 정부의 각종 실태조사에 성별 통계는 있지만 ‘성 정체성’에 관한 항목은 없다.

오히려 국가는 이들을 은밀하게 관리하고 통제해왔다. 성 정체성대로 사는 것이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을 혐오와 차별에 노출시켰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19세 이상 트랜스젠더 59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85.2%가 지난 1년 동안 차별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차별은 일상부터 고용·의료·교육 등 삶의 전반에 퍼져 있다.

앞서 늙은 몸, 살찐 몸, 아픈 몸, 장애가 있는 몸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 ‘내 몸과 잘 살고 있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은 트랜스젠더의 몸에 관한 이야기다. MTF 트랜스젠더(출생 시 남성으로 지정됐지만 여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 여성), FTM 트랜스젠더(출생 시 여성으로 지정됐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 남성), 논바이너리(한쪽 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규정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몸들은 젠더 스펙트럼을 부유한다. 국가와 사회가 정한 단일한 몸의 기준에 담기지 않는다. 이들은 규정되기를 거부함으로써 획일적인 성별의 상에 고정되지 않고 좀 더 나답게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에게 넓혀준다.

성희씨는 “자신을 여자, 남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한 인간이라고 상상해 보면, 젠더에 대한 게 장난같고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편으로 쾌감이 드는데 그런 쾌감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인 것 같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성희씨는 “자신을 여자, 남자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한 인간이라고 상상해 보면, 젠더에 대한 게 장난같고 바보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한편으로 쾌감이 드는데 그런 쾌감을 느끼면서 사는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인 것 같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고칠 대상이 아닌, 색칠해가는 ‘몸’

“제 자신과 신체를 각각의 신발이라고 했을 때 한쪽 신발을 다른 쪽과 어울리게 그리고 색을 칠해서 신고 돌아다니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람들이 ‘짝짝이 아니야?’ ‘안 맞는 거 아니야?’ 하면 ‘뭐 어때요? 멋있죠?’ 이렇게 답하는 거죠.”

성희씨에게 트랜지션(출생 시 지정된 성별을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춰 변화시켜나가는 과정)은 ‘수선’이 아니라 ‘색칠’이다. 몸은 이리저리 고쳐야 할 대상이 아니라, 편안함을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도화지에 가깝다. 그는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됐지만 남성으로 정체화한 트랜스 남성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여성으로 인식되는 신체가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다른 여자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지만 참고 산다고 생각했다. 트랜스 여성의 존재는 하리수씨가 연예인 데뷔를 하면서 많이 알려졌지만 트랜스 남성은 상상도 못하던 때였다.

성희씨는 “(트랜지션으로) 성별 불일치로 인한 불쾌감이 확연히 줄어들었다”며 “몸에 대해 딱히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성희씨는 “(트랜지션으로) 성별 불일치로 인한 불쾌감이 확연히 줄어들었다”며 “몸에 대해 딱히 고민하지 않을 정도로 편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답답한 마음에 이것저것 찾아보다 트랜스 남성들의 트랜지션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면서 비로소 몸에 대한 자신의 감각을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틀을 갖게 됐다. “충격적이었어요.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으니까.” 그는 2015년 여름 트랜스 남성으로 정체화했다. 그해 가을 지인들에게 커밍아웃을 했다. 학교 친구 소개로 다른 트랜스 남성을 알게 됐다. 서로의 존재가 큰 위안이 됐다.

그는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과 몸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싶었다. 호르몬 요법을 시작했고, 가슴 절제 수술을 받았다. 태국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전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하면서 현재로선 자궁을 적출할 의향이 없고, 지금은 아니지만 앞으로 아이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의사는 “그럴 수 있다”면서 그의 말을 이해했다.

그는 호르몬 요법, 가슴 절제술만으로도 자신의 몸이 훨씬 편안해졌다고 했다. 남자로 패싱(사회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성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되기 시작하고 정체성을 존중받게 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게 더는 두렵지 않았다. 스스로를 “조금 이상한 남자”라 생각하고 산다. “음경을 달고 싶은 게 아니고 남자로 살고 싶은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러나 저러나 나는 나인데 뭐 어쩌겠어, 체념한 것도 있고요. 그래서 별생각 없어요(웃음).”

갖은 차별과 배제를 겪어온 트랜스젠더에게 패싱은 무사히 일상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트랜스젠더가 ‘여(남)성성’을 과장한다는 주장에는 이 같은 맥락이 빠져 있다. 성희씨 역시 자신이 남성임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성동훈 기자

갖은 차별과 배제를 겪어온 트랜스젠더에게 패싱은 무사히 일상을 이어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 됐다. 트랜스젠더가 ‘여(남)성성’을 과장한다는 주장에는 이 같은 맥락이 빠져 있다. 성희씨 역시 자신이 남성임을 증명해야 할 것 같은 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성동훈 기자

‘남성성’에 대한 도전

성희씨는 자신이 “센 척하거나 남자다워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남자답지 않다’거나 ‘특이하다’ ‘여자로 사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여자로 패싱될 때는 말랐다고 칭찬받던 몸이 남자로 패싱되니 “왜 이렇게 말랐냐”는 핀잔을 듣는 몸이 됐다.

트랜스 남성은 전통적인 ‘남성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를 의식해 일부 트랜스 남성 중엔 사회가 이상적으로 그려온 근육질 몸매에 거친 성격을 재현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트랜스젠더에게 패싱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성희씨도 남자로 패싱되기 시작하던 초기엔 평균 남성보다 작은 자신의 키가 신경 쓰였다. 하지만 다른 남자들을 관찰해보니 자신보다 키가 작은 사람도 많았다. 그는 “‘나는 나대로,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좀 더 편하게 생각하게 됐다”면서 “당사자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 말하고,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대하는 과정에서 젠더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한 남성상·여성상이 생긴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성희씨는 생식능력 제거에 대한 생각이 트랜스젠더들마다 다르다고 했다. 그는 “개개인만의 삶이 있으니 이해되는 부분”이라면서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이 이어지면 (수술 의무감에서) 점점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의 주변에도 성별을 정정하려 외과수술을 했다가 후유증, 부작용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동훈 기자

성희씨는 생식능력 제거에 대한 생각이 트랜스젠더들마다 다르다고 했다. 그는 “개개인만의 삶이 있으니 이해되는 부분”이라면서 “수술 여부와 관계없이 정정을 허가하는 판결이 이어지면 (수술 의무감에서) 점점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의 주변에도 성별을 정정하려 외과수술을 했다가 후유증, 부작용을 겪는 이들이 적지 않다. 성동훈 기자

그는 지난해 잠시 호르몬 요법을 중단했다. 트랜스젠더에게는 선택지로 여겨지지 않았던 재생산, 즉 임신을 현실의 영역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7년 전 호르몬 투여를 시작할 무렵 의사는 호르몬이 장기간 투여되면 생식능력이 회복되지 않을 수 있다며 난자 냉동을 제안했었다. 당시엔 크게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생겨났다.

그간의 트랜지션이 무용지물이 되지 않을까 싶어 3년 가까이 고민한 끝에 결심했다. “트랜지션 전에도 내가 여자로 보여도 남자라고 생각하고 트랜지션을 시작했는데 지금 못할 게 뭐가 있나! 머리에 힘 빡 주고 시작했죠.” 몇달간 호르몬 요법을 중단하고 난자를 채취해 냉동했다.

난임전문센터 의사는 난자 냉동을 하러 오는 트랜스젠더가 꽤 많다고 그에게 귀띔했다. 트랜스젠더의 임신과 출산은 당사자들 사이에선 논의가 활발하지만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를 낳으면 자녀와의 법적 관계가 ‘부’ ‘모’ 중 어느 쪽이 되는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행동으로 옮긴 건 가족을 구성할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등 헌법상의 권리를 트랜스젠더들이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는 “낳을지, 안 낳을지 모르는데 난자 냉동 사실을 알리는 게 부담스럽기는 했다”면서도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하나의 선택지로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법적성별 정정 신청부터 재판부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변희수 하사를 비롯한 트랜스젠더들의 죽음이 이어진 때에 성희씨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다양한 트랜스젠더와 교류하며 당사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법적성별 정정 신청부터 재판부 판단이 내려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변희수 하사를 비롯한 트랜스젠더들의 죽음이 이어진 때에 성희씨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다양한 트랜스젠더와 교류하며 당사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했다. 성동훈 기자

누가 몸을 규정하나

그는 지난해 12월1일 법적 성별 정정을 신청했다. 신원을 확인할 때마다 본인이 맞냐는 추궁을 받고 설명해야 하는 고리를 끊고 싶어서다.

성희씨는 법원에 제출한 A4용지 다섯 장 분량의 성장환경 기술서에 스스로 남자라 생각했고 주변인들에게도 곧잘 남자로 비쳤지만 지정성별과 일치하지 않아 불편했던 유년기와 청년기, 트랜지션을 하며 남성으로 지내는 지금까지의 삶을 적었다.

성확정 수술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수술 여부가 사회적으로 트랜스젠더 당사자의 성별을 확신할 수 있는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본인도 늘 성기에 대해 고민하고 수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만, 그것은 개인의 필요에 의해 결정될 사안이지, 국가가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 요구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전환 수술을 받아 외부 성기를 포함한 신체 외관이 반대의 성으로 바뀌었는지, 생식능력을 상실했는지 등은 법원이 성별 정정 신청 사건을 심리할 때 ‘참고’하는 사항이다.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지 않고 정정이 허가된 사례가 조금씩 늘고는 있지만, 여전히 획일화된 기준에 맞지 않는 다양한 몸들은 정정 불허 통보를 받는다.

성희씨의 성장환경 기술서는 이렇게 끝맺는다. “수술비 걱정에 학업과 취업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 트랜스젠더, 수술을 했으나 사회적으로 따가운 시선을 받는 트랜스젠더, 나아가 성별 고정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편을 겪는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용기가,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는 “젠더의 자유로움을 아는” 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를 길어 올릴 계획이다. 동료들과 함께 준비하는 트랜스젠더 화보 작업이 그 일환이다. 기획자와 모델은 트랜스젠더, 사진사·스타일리스트 등 스태프는 퀴어로 이뤄져 있다. 화보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인 오는 3월31일 온라인에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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