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푸바오에 열광하는 동안 죽어간 복동이와 루디···‘이상행동’ 동물 실태

2024.04.03 16:34 입력 2024.04.04 06:26 수정

1969년생 암컷 코끼리 코순이가 지난달 30일 대구 중구 달성공원 코끼리사에서 몸을 앞뒤로 흔드는 정형행동을 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1969년생 암컷 코끼리 코순이가 지난달 30일 대구 중구 달성공원 코끼리사에서 몸을 앞뒤로 흔드는 정형행동을 하고 있다. 전현진 기자

코끼리 한 마리가 제자리에 서서 앞뒤로 움직이자 긴 코가 흔들렸다. “여기 봐라! 코끼리가 춤춘다!” 지난달 30일 대구 중구 달성공원 코끼리사 앞에서 손녀를 데리고 온 할머니가 외쳤다. 코끼리의 행동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 코끼리는 1969년생 암컷 코순이다. 지난 2월 서울대공원의 사쿠라(1965년생)가 세상을 떠나면서 국내 최고령 코끼리가 됐다.

코순이의 행동은 춤이 아니었다. 극도의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정형행동’이다. 습성에 맞지 않는 생활 환경이 원인 중 하나다. 코순이가 사는 달성공원의 코끼리사는 국내에서 가장 좁은 것으로 알려졌다.

코끼리는 가족 단위의 무리 생활을 하지만 코순이는 혼자다. 지난해 8월 4일 함께 살던 수컷 코끼리 복동이(1974년생)가 세상을 떠나면서 코순이의 스트레스가 심해졌다고 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지난해 코순이를 태국의 코끼리자연공원(ENP)으로 보내는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현지에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했지만 달성공원이 거절했다고 한다.

상아가 난 코끼리가 복동이다. 오른쪽에 비교적 작은 몸집이 암컷 코순이다. 코끼리 두 마리가 머무는 사육장이 좁아 보인다.  2023년 8월 복동이가 사망하기 전 촬영된 사진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상아가 난 코끼리가 복동이다. 오른쪽에 비교적 작은 몸집이 암컷 코순이다. 코끼리 두 마리가 머무는 사육장이 좁아 보인다. 2023년 8월 복동이가 사망하기 전 촬영된 사진이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좁은 사육장에서 살아가는 건 코순이 만이 아니다. 코요테, 독수리, 호랑이, 사자 등도 자유롭게 이동하는 야생에서의 환경과 전혀 맞지 않는 비좁은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침팬지 암컷 알렉스도 이날 강화유리로 막힌 좁은 사육장 창살에 매달려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알렉스는 지난해 8월 14일 수컷 루디와 함께 사육장을 탈출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루디는 계속 도망쳤고 결국 마취총에 맞은 뒤 숨졌다.

알렉스는 관람객에게 ‘침 뱉는 침팬지’로 알려져있다. 관람객이 자신에게 침 뱉는 것을 따라서 했다고 전해졌다. 루비가 떠나 홀로 남게 되면서 사육장 공간은 여유가 생겼지만 자유롭게 나무를 뛰어다니는 다큐멘터리 속 침팬지의 모습을 생각하면 여전히 비좁아 보였다.

대구 달성공원의 침팬지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구 달성공원의 침팬지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많은 시민이 ‘푸바오’에 열광하는 사이에도 전시동물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전시동물은 사람에게 보여지기 위해 야생의 습성을 살리지 못하고 평생 좁은 공간에서만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 동물원을 ‘동물 감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달성공원은 공영 동물원 중에서도 가장 시설이 열악한 곳으로 꼽힌다. 신라 시대 사적지 달성토성 안에 사육시설을 설치해 1970년 문을 열었다. 포유류 70여종 80여마리와 조류 50여종 250여 마리가 산다.

2001년부터 이전 계획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다가 지난 3월 착공한 대구대공원으로 2027년 6월 이전할 예정이다. 전시동물들은 3년 넘게 이곳에서 더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달성공원 관계자는 “최근 에버랜드나 서울대공원의 사육사에게 코끼리의 발 관리법 등을 배우기도 했다”며 “시설이 협소하고 낡았지만 사적지 안에 있어 개선에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여건 안에서 동물복지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중원구 대원터널 사거리 인근 도로를 생태체험장에서 탈출한 타조 타돌이가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26일 오전 경기 성남시 중원구 대원터널 사거리 인근 도로를 생태체험장에서 탈출한 타조 타돌이가 달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시동물의 열악한 상황은 최근 사육장을 탈출해 도심을 뛰어다니는 동물들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지난달 26일 경기 성남시의 생태체험장에서 타조 타돌이가 탈출했고, 지난해 3월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얼룩말 세로가, 2018년 9월 대전의 동물원에서는 퓨마 뽀롱이가 탈출했다. 타돌이와 세로는 포획돼 다시 전시동물로 돌아갔다고 알려졌다. 퓨마는 포획 중 사살됐다.

지난해 12월 개정된 동물원수족관법이 시행되면서 동물원 운영이 신고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지만 한계도 있다. 동물종 특성에 맞는 사육 규모가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고, 동물을 만지고 먹이를 주는 생태체험장이 변칙적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최인수 카라 활동가는 “푸바오를 비롯한 전시동물들은 사람의 필요 때문에 살아가는 환경이 송두리째 바뀌게 된다”며 “동물의 생태적 습성을 고려하지 않는 동물원은 단순한 전시 이상의 교육적 측면은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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