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정부의 뒷걸음질, 출구 찾을까

2024.04.20 09:00 입력 2024.04.20 09:01 수정

정부 한 발 물러났지만 의료계 ‘싸늘’…언제 불의의 사고 터질지 불안

지난 4월 11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한 의료계 종사자가 지친 모습으로 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지난 4월 11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한 의료계 종사자가 지친 모습으로 쉬고 있다. 한수빈 기자

[주간경향] 의·정 갈등이 중대 기로를 지나고 있다. 정부는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일부 조정하게 해달라는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수용하기로 했다. 총선 이후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4월 19일 “(의대 증원 규모에 대한) 의료계의 단일화된 대안 제시가 어려운 상황에서 의료공백 피해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에 따라 증원 규모는 당초 정부가 제시한 연 2000명에서 많게는 절반 수준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지 두 달만에 정부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그러나 갈등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일보 후퇴에도 의료계는 여전히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의사 단체는 줄곧 의대 증원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요구해 왔다. 연 2000명이라는 증원 규모가 합리적 근거를 가지고 산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계획을 백지화하고 처음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다. 총선 이후, 사회적 협의를 해보자는 정부와 야당의 제안에도 대한의사협회(의협) 등은 정부와의 “일대일 대화”를 요구하며 일축했다.

의료 현장이 언제쯤 정상화될 지도 현재로선 가늠할 수 없다. 최대 피해자는 의료 공백에 노출된 환자, 시민들이다. 현장에서는 각 주체가 초기보다 혼란에 적응하는 기미도 보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전공의가 떠난 후 비상근무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의대 교수들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병원은 병원대로 외래 진료와 수술이 줄어들면서 재정이 악화하고 있다. 간호사, 일반 직원들에게 무급휴가·희망퇴직 등 고통이 전가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양측은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까. 의정 갈등 쟁점과 현 상황을 짚어봤다.

양쪽 모두 소환한 아산병원 사망 사건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간극은 한자리에 앉을 수도 없을 만큼 커 보인다. 그렇다고 공통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의외로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비슷한 면이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4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2022년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근무 중 사망한 사건을 언급했다.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 현상을 강조하면서 의사 수 증원이 필요하다고 강변하는 과정이었다. 그보다 20일 앞선 3월 18일에는 방재승 당시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장이 정부의 정책 재검토를 요청하면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을 이야기했다. 동일 사례를 언급하면서 전혀 상반된 논리를 전개한 것이다.

2022년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간호사가 극심한 두통을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졌다. 서울아산병원에는 수술할 의사가 없어 서울대병원으로 환자를 옮겼지만 끝내 사망했다. 병상 2700여개로 한국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이 가능한 의사는 단 2명뿐이었다. 1명은 해외 학회 참석 중이었고, 또 다른 사람은 휴가 등으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이른바 ‘빅5 병원(서울아산·서울대·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성모병원)’조차 수술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정부도 이 지점에 방점을 찍었다. 필수의료 인력이 부족하니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같은 사건을 놓고 의사 단체는 다르게 진단한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은 당시 쓰러진 간호사의 뇌혈관에 관을 주입해 출혈을 멈추는, 수술이 아닌 시술 치료를 시도했다. 그럼에도 환자의 상태가 차도를 보이지 않아 수술이 필요했지만,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 2명은 서울아산병원에 없었다. 왜 최상의 의료진이 현장에 있었음에도 수술은 할 수 없었을까. 수술 자체가 고난도였기에 배운 사람도, 배우려는 사람도 적었기 때문이다. 시술이 실패로 돌아간 상황에서 가능한 처치는 두개골을 열어 터진 혈관을 클립으로 묶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한때는 수년을 들여 이 수술법을 배우려는 의사도 많았지만, 더욱 간단한 시술법이 등장하면서 이를 익히는 의사가 많아졌다.

수술법을 익히는 시간과 노력(투자) 대비 보상이 적은 것이 원인이다. 뇌동맥류 결찰술이라 불리는 이 수술의 의료수가만 봐도 그렇다. 2022년 기준 이 수술의 건강보험 수가는 한국이 250만원, 일본이 1100만원이었다. 호주 540만원, 미국 480만원과 비교해도 적다. 병원 입장에서는 돈은 안 되고 시간은 오래 걸리는 수술보다 간단한 시술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두 방식 중 어느 쪽으로도 치료할 수 있다면 환자의 선택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향성이 의료진 인력 배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정확히 따져보기 어렵다. 다만 이런 질병을 다루는 신경외과 전문의들이 의료기관별로 얼마나 진출했는지는 살필 수 있다.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신경외과 전문의는 2388명에서 2659명으로 11%(271명) 증가했다. 의료기관 유형별 증감률을 보면 의원에서 일하는 전문의가 29.7%(138명)로 가장 많이 증가했고, 요양병원 전문의가 29.6%(42명)로 두 번째로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종합병원도 23.5%(145명)로 높은 증가율을 보였지만, 상급종합병원(3.6%·15명)과 병원(-3.9%·27명 감소)은 증가율이 미미하거나 오히려 감소하는 양상을 보였다. 2·3차 의료기관에 남는 의사들보다 개원하거나 요양병원으로 향하는 인력이 많았다는 얘기다.

지난 4월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지난 4월 1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한 의사가 윤석열 대통령의 의료개혁 관련 대국민담화를 시청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의사 단체는 의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생명이 달린 분야에 필요한 의사가 부족하다고 본다. 곧 인력의 배분이 문제라는 얘기다. 한국의 의료는 민간에 맡겨져 있기에, 이를 조정하기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의료진)들이 스스로 움직일 유인이 필요하다. 필수의료 영역을 떠나는 의사들을 잡아둘 보상체계를 강화하는 것이 증원보다 중요한 선결과제라는 것이다. 수가를 높이면 건강보험 부담은 늘어날 공산이 크다.

의사들의 주장에도 설득력은 있다. 정부는 일단 의사 수를 늘리면 인력난으로 붕괴해 가는 필수의료 분야나 지역으로도 의사들이 흘러갈 것이라 본다. 일종의 낙수효과다. 그러나 보상체계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의료진의 필수의료 영역 이탈은 계속될 수 있다. 보상체계를 바로 세워도 수도권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도 4대 개혁 패키지라는 이름으로 대책은 마련해뒀다. 보상체계 강화를 위해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지역 의대에서 지역 출신 학생을 의무적으로 선발하는 비율을 높이는 한편, 일정기간 지역 근무를 전제로 장학금·수련비용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내놨다. 의사 단체는 2000명 증원이라는 정책 목표는 뚜렷한 데 반해 보상체계 강화·지역 의료 대책은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나백주 을지대 의대 교수는 “교육 여건을 갖춰 (연간) 의사 2000명을 더 양성한다고 해도 지역과 필수의료로 간다는 보장은 없다. 수가를 올리면 된다지만, 수가를 올려봐야 대도시로 몰리는 현상을 완화할 수 없다. 지역의 환자들도 수도권으로 몰리는데 수가만으로는 답이 없다. 건강보험만으로 한다는 건 유효하지 않고 결국 재정을 써 공공병원 등을 확충해야 한다”고 했다.

사태 장기화, 최대 피해자는 환자

의사 단체가 내세우는 논리의 정합성과는 별개로, 이들의 속내는 시장 참여자가 늘어난다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는 의구심이 이어지고 있다. 역대 정부에서 의대 증원이 논의될 때마다 의사들은 ‘업무중단’이라는 강력한 협상력을 바탕으로 논의를 중단시켰다. 인력의 배분 문제 등을 다루는 추가적인 논의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필수의료 공백에 대한 이들의 우려가 과연 진정성이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그 사이 전국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30년 전인 김영삼 정부(당시 정원 3260명) 때보다 줄었다. 정부가 내놓은 증원 규모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의사의 절대 수가 부족하다는 공감대는 넓게 형성됐다. 앞선 3건의 선행연구는 모두 2035년에 국내 의사 수가 1만명가량 부족해진다고 내다봤다.

정부는 각 대학들이 증원 규모를 자율적으로 정하도록 하면서 한 발 물러섰다. 한덕수 총리는 4월 19일 “대학별 교육 여건을 고려해 금년에 의대 정원이 확대된 32개 대학 중 희망하는 경우 증원된 인원의 50% 이상 100% 범위 안에서 2025학년도에 한해 신입생을 자율적으로 모집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고 했다. 모집 인원은 이달 말까지 결정하기로 했다. 32개 대학 모두가 증원된 인원의 최소치인 50%씩만 선발할 경우 내년도 의대 정원은 1000명만 늘어난 4058명이 된다.

동시에 정부는 의사 단체가 대화에 나설 것을 강조했다. 한 총리는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료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단일안을 제시하면 열린 자세로 대화에 나설 준비가 되어 있다”며 “오늘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날 정부 발표에도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의사 단체의 대화 거부는 의사들의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킬 여지가 있다. ‘거야’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총선 공약으로 지역의사제와 공공의대 신설을 내걸었다. 모두 문재인 정부 때 추진하다 의사들의 반대로 무위에 그친 정책으로 지역 내 의료 인력을 확충하는 내용이다.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언제 불의의 인명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다만 현장은 전공의 공백에 적응한 모습도 보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둘째 주 기준으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 접수된 피해신고는 일평균 6.3건이었다. 집단행동 초기인 2월 중순, 미리 잡힌 수술과 진료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일평균 45.4건의 피해신고가 접수된 것에 비하면 신고 건수가 줄었다. 3월 셋째 주의 13건보다 적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두 달 전에 입원, 항암치료, 수술이 연기됐던 환자들이 더 연기할 수 없는 상황이 돼 치료를 받고 있다. 코로나19 때도 환자들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을 경험했기에 인내하면서 버티고 있다. 병원은 병원대로 인력이 줄었지만 신규 환자도 줄면서 아직은 여력이 있는 양상이다. 그러나 사각지대에서 환자의 상태가 악화하거나 생명을 위협받는 사고는 분명히 있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한계가 임박했다. 전공의 공백에 서울대 의대 교수의 41%는 주 80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성균관대 의대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주 52시간을 초과해 근무한 교수가 86.4%에 달했다. 외래와 입원 환자 모두 줄어든 병원은 경영 적자를 무급휴가, 희망퇴직 등으로 다른 직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나백주 교수는 “어쨌든 돌아가고는 있지만 지속 가능하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부와 의사 단체 모두 대화할 의지는 커 보이지 않는다. 환자들만 마음을 졸이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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