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착각

2012.07.05 20:58
정희진 여성학 강사

한국전쟁 후 소설가 김동리는 ‘젊은 美國의 기빨’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다. “(중략)/이번에 韓國을 도와준 偉大한 恩人들/ 맥아더 릿쥬웨이 트르맨 아이젠하워 等/ 수많은 이름을 내 맘은 기리 잊지 못할 것입니다./ 드러나 당신처럼 내 맘에 고동을 주고/ 내목에 흐느낌을 일으킨 이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중략) /어느 義人이 또한 나의 首都를 당신같이/ 아끼며 사랑하며 지켜주었겠습니까/ 일찌기 韓國의 어느 港口에 들어왔던 外人의 船舶에서도/ 당신의 아드님을 비롯한 많은 部下들이/ 이 고장에 뿌려주신 鮮血에 比하여 더 高貴한/ 빠이블과 十字架를 우리는 그 속에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원문 그대로 표기)

지면상 더 생략하려 했으나 손댈 곳이 없다. 순수문학의 대가답게 ‘순수의 결정(結晶)’을 보여준다. 마음이 아프다. 비꼬는 것이 아니다. 구한말 양이(서양 오랑캐)론부터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반미운동까지, 다른 사회현상과 마찬가지로 한국 사회의 대미관은 계속 변화해 왔지만 미국을 구세주로 보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았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약자의 착각

구한말 가장 중요한 외교문서로 평가받는 황준헌의 <조선책략>은 남하하는 러시아의 위협 때문에 ‘친(親)중국’ ‘결(結)일본’ ‘연(聯)미국’을 조선의 바람직한 대외정책으로 제시했다. 당시 연미론에 반대한 유생들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흥미롭다. “미국은 5만~6만리나 떨어져 있어 우리가 급할 때 당장 와주지 못한다”와 “미국과 힘을 합쳐 러시아를 막는다 해도 또 다른 외적(미국)을 불러들이는 결과”라는 것이다.

전자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미사일이 대륙을 오가는 시대이므로, 또 아예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 ‘해결’됐다고 치자. 후자는 한·미 수교 1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한 논란거리다. 김동리의 격정적 미국 사랑과 달리, 당시 유생들은 국제정치의 기본인 실용주의, 현실주의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외교 전문가는 물론 일반 여론까지 MB의 대미 편중 외교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구한말 유생의 식견보다 한참 후퇴한 것이다. ‘G2’로 부상한 중국의 위상을 고려치 않고 무조건 미국하고만 잘 지내면 된다는 생각과 이를 맹신하는 인사들로 외교팀이 꾸려졌다. 글로벌 시대에, 한국의 일부 세력은 아직도 미국을 유일한 외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밀실처리 논란이 된 한·일 정보협정이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국가기밀’이다. 한·미·일 동맹은 명목상으로는 북한을 겨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중국을 견제하고 일본의 군사대국화 계획에 한국이 ‘총알받이’로 동원된 형국이다. “한국은 중국을 억제하려는 미·일을 돕지 말라”는 중국 정부의 비난은 우리에 대한 ‘걱정’에 가까울 지경이다.

한반도와 중국 사이에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면 미국과 일본이 피해를 보겠는가? 청일전쟁이 청나라나 일본이 아닌 이 땅에서 벌어졌듯 우리는 그들의 싸움터가 될 공산이 크다.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은 심각한 문제다.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시민으로서’ 나는 이를 재고할 수 있는 대선 후보가 당선되기를 절실히 바란다.

무엇이 이토록 미국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능케 하는 것일까? 나는 이 현상을 사대주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도 이들은 용미(用美)를 표방한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친해짐으로써, 또 그것을 국제사회에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위상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심지어 미국이 한국을 보호하는 것은 강대국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예로부터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관계 원리인 “작은 것은 큰 것을 섬기고, 큰 것은 작은 것을 예뻐한다”는 사대자소(事大字小) 심리인가? 아니면, 지금은 힘이 없으니까 일단은 미국을 활용하자는 자발적 종속 논리인가? 그렇다면, 이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전 세계는 물론 우주까지 상대하느라 바쁘다. 미국에 우리는 그들이 활용당해 줄 만큼 중요한 존재가 아니다. 상식적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겠는가, 그 반대가 많겠는가.

만에 하나, 약자가 강자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약자는 지피지기 상태에서 엄청나게 다양한 전략과 지혜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일 관계에서 약소국인 데다 북한이라는 ‘아킬레스건’까지 있는 우리의 유일한 생존 방식은 유연한 사고를 기반으로 협상의 고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국제협상에서 보았듯이 한국 외교 지도자들의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무능력과 주눅 든 태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상대는커녕 자신조차 모른다. 우리가 강대국을 이용한다는 자신감은 부풀려진 자아, 망상적 자기애, 도취에 가까운 자기중심적 사고에서 가능하다. 간단히 말해, 주제 파악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관은 강자를 이용하려는 약자의 자세가 아니라 강자에 대한 동일시 욕망, 허세와 착각에서 나온다. 분명한 점은, 강자는 이러한 약자의 자기분열을 간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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