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

2012.07.18 21:11 입력 2012.07.18 23:58 수정
조호연 사회·기획에디터

초등학생들이 1주일간 스마트폰을 끊어봤다.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경향신문 기획시리즈팀이 주재한 이 실험 결과 두 가지가 확인됐다. 하나는 대다수 학생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됐다는 사실이다. 불편·답답·불안해하는 금단 증상이 나타난 것이다. 참지 못하고 엄마의 스마트폰을 사용한 아이도 있었다. 정신이 멍해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 아이는 “스마트폰이 없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없으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존재가 부모나 친구가 아니라 스마트폰이라니 섬뜩하다.

[오늘]“스마트폰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시간을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쓰게 된다는 점이다. 폰을 쓰지 않으니 친구와 얼굴을 보며 대화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했다. 일상에는 폰 외에도 구경거리가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거나, 전에 없이 3시간여 동안 가족과 함께 TV를 보며 이야기한 사례도 발견됐다. 오랜만에 아빠와 공기놀이를 하거나, 처음으로 어린 동생과 눈을 마주치며 놀아준 아이, 스마트폰도 휴대폰도 없는 친구들과 어울려 논 아이도 있었다. 일부 아이들은 독서량이 늘어났다고 대답했다.

실험에 참여한 초등학교 2·6학년생은 절반 이상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어김없이 폰에 중독돼 있다. 이들은 항상 스마트폰을 끼고 산다. 잠잘 때를 빼면 하루의 거의 모든 시간을 폰에 투자한다. 학교나 학원 교습 중에도 스마트폰을 무음으로 조정한 뒤 문자 대화를 하는 아이들도 많다. 가족과 함께 외식을 가서도 대화는 하지 않고 게임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웹툰을 보는 아이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아이들은 카카오톡에서 그룹채팅방을 개설한 뒤 그들만의 대화를 즐긴다.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는데도 직접 말하기보다 폰으로 대화하는 관행은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 생겨난 풍경이다.

스마트폰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유익하고 재미있지만 중요한 것을 잃게 만든다. 게임과 문자 대화, 실시간으로 전 세계 뉴스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문명의 이기임에는 틀림없다. 업무용이나 비상용으로도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일본 원전사고 등에서는 인명 구조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다.

편리성은 증명된 지 오래다. 어디서든 휴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컴퓨터를 능가하고, 기능의 다양성 면에서 기존 휴대폰을 훌쩍 넘어선다. 이만한 생활도구, 장난감이 없다. 몸이 안 좋아 칭얼대던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줬더니 하루 종일 얼굴 한 번 찌푸리지 않고 놀더라는 증언도 있다. 한국의 스마트폰 보급은 2500만대로, 국민 절반이 갖고 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마약과 같다. 의존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 위험해진다. 마약은 신체를 망가뜨리지만 스마트폰은 정신에 악영향을 미친다. 인간관계의 손상이나 왜곡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가족 사이에 끼어들어 벽 역할을 하면서 대화와 교감과 유대를 무너뜨리고 친구와 직장 동료, 각종 커뮤니티에서 관계 단절을 유도한다. 지식과 정보 전달에는 유익하지만 충만한 삶으로 이끄는 애정과 배려, 헌신, 협동 같은 가치들을 교환하는 데는 유용하지 않다. 극단적이지만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주는 것은 마약을 직접 먹이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스마트폰에 대한 우려는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2011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스마트폰 사용자 중 61.5%가 스마트폰이 없을 때 불안감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은 38%였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가까운 곳에 놓거나 손에 쥐고 자는 사람은 46%, 화장실에 갈 때 스마트폰을 가져가는 사람은 63%를 넘었다. 청소년 10명 중 6명 이상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과 초조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80% 이상은 학교 성적이 떨어졌다고 대답했다. 스마트폰에 빠지면 생각과 종합적 사고와 사회성을 관장하는 오른쪽 전두엽의 활동 장애로 연결될 수 있다는 의학적 소견도 있다. 스마트폰을 쓰지 말라고 하자 부모에게 반항해 등교를 거부하거나, 수업시간에 교사의 손을 드라이버로 찌른 사건도 발생했다.

학생들에게 스마트폰은 갖고 있어도 문제, 갖고 있지 않아도 문제가 된다. 갖고 있으면 스마트폰 세상에 매몰돼 일상에서의 관계 단절을 피할 수 없고, 갖고 있지 않으면 대화방 등 또래의 커뮤니티에 접근하지 못해 왕따를 당한다. 소통 수단인 스마트폰이 불통의 수단으로 바뀐 셈이다.

스마트폰 문제는 마땅한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게 문제다. 그렇다고 스마트폰 판매와 사용을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스마트폰 문제는 입시 위주 교육과 닮았다. 문제가 많다고 여기면서도 아이들을 학원으로 몰고다니는 학부모들이 폐해를 잘 알면서도 “없으면 왕따가 된다”는 말에 넘어가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사준다. 안 사주면 되는데, 아이들이 기죽을까봐 사주고는 후회한다. 교육 문제나 스마트폰 문제나 다 어른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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