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생각에 잠 못 드는 밤

2013.07.03 21:45
황윤 | 영화감독

새벽 2시 “드르륵 드르륵” 소리가 울려퍼진다. 참개구리다. 3년 전 충남으로 이사를 왔다. 수도권을 벗어나 겨우 숨통이 트였지만 결국 도시의 아파트에 자리를 잡았고, 이곳에서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인간들의 집단 거주지에 위태롭게 살아남은 개구리들의 존재가 너무 고맙고도 안쓰럽다.

2주 전 장마가 시작되던 날이었다. 해질 무렵 동네를 걷다가 아파트 단지 사이 누군가의 텃밭에서 “꽥-꽥-꽥” 하는 소리를 들었다. 밭주인이 거위를 키우나 싶었다. 하지만 도시에서 거위를 키울 리 만무하다. 직감적으로 맹꽁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단정할 순 없었다. 나는 여태 맹꽁이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한 ‘불우한’ 도시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밤 ‘두꺼비 친구들’이라는 시민단체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서, 내가 낮에 들은 소리가 맹꽁이 소리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맹꽁이가 도심 한복판 우리 동네에 살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녹색세상]맹꽁이 생각에 잠 못 드는 밤

맹꽁이는 최근 환경부 멸종위기종 목록에서 빠질 뻔했다. 개체수가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맹꽁이가 과연 보호대상에서 제외해도 될 만큼 많은가? 체계적인 조사없이 섣불리 보호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위험한 결정이다. 여론 때문인지 바로 제외되지는 않았는데, ‘해제 후보종’이 됐다. 1~2년 두고 봤다가 보호대상으로 둘 건지, 뺄 건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멸종위기종으로 올라와 있어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데 아예 멸종위기종에서 제외되면 얼마나 함부로 취급될까? 걱정이 앞선다. 맹꽁이 보호를 위해 개발을 막는 경우를 거의 본 적이 없다.‘수원청개구리’를 나는 작년에야 뒤늦게 알게 됐다. 이 개구리를 사진으로 처음 본 순간, 난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앞발로 벼를 꽉 잡고 서서 울음주머니를 잔뜩 부풀린 초록빛 이 귀여운 개구리를 보고 미소짓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일반 청개구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종이다. 청개구리의 울음소리는 짧은 간격에 저음인 데 비해 수원청개구리는 긴 간격에 높은 소리를 내고, 청개구리는 땅바닥에 앞발과 뒷발을 다소곳이 놓고 울지만 수원청개구리는 벼나 논둑의 식물을 타고 올라가 앞발로 풀을 잡고 운다.

1980년 일본인 학자가 수원에서 처음 발견해서 수원청개구리라는 이름을 얻게 됐지만, 막상 수원에서는 급격한 도시화로 절멸 직전이고, 파주·평택·강화 등 경기도·인천 일부와 충청·강원서부 지역에서 26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음이 확인됐을 뿐이다. 극소수가 존재하고 있고, 이마저도 개발과 농약·제초제로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상황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사이, 순식간에 멸종위기 1급이 돼버린 수원청개구리. 건물이 들어서고 도로가 생긴 곳이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랑스러운 수원청개구리들의 마지막 서식지였음을 누가 알아줄까?

문제는 특정 종뿐 아니라 개구리 전체, 양서류 전체가 해마다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큐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촬영하면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두꺼비, 개구리들이 로드킬로 먼지처럼 사라지는 걸 보았다. 온도 변화에 민감한 양서류는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존재다. 양서류가 괜히 ‘환경지표종’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다. 이들이 사라져간다는 건 생태계가 붕괴됨을 의미하고, 그것은 인간의 생존에도 빨간불이 켜짐을 의미한다. 이 작은 생명들과의 공존마저도 허용하지 않는 인간문명은, 초비상 위험사회다.

내가 맹꽁이 소리를 들었던 텃밭 바로 옆에서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우리 동네 맹꽁이를 지키기 위해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개구리 맹꽁이 소리찾기 밤나들이 모임’, 혹은 ‘개구리 맹꽁이를 지키는 동네사람들 전국 네트워크’를 만들어볼까? 일단 그 텃밭 주인과 친해져야겠다. 그런 다음 맹꽁이 서식을 눈으로 확인하는 거다. 이번 여름, 다섯살 아들과 함께 중대하고도 재밌는 미션을 수행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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