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독재의 시대’가 오려는가

2013.07.29 22:15
박민영 | 문화평론가

사마천은 <사기> ‘화식열전(貨殖列傳)’에서 이렇게 썼다. “무릇 사람들은 자기보다 열 배 부자에 대해서는 헐뜯지만, 백 배가 되면 두려워하고, 천 배가 되면 그의 일을 해주고, 만 배가 되면 그의 노예가 된다.” 이 글은 빈부격차가 심화될수록 사람들의 태도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키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금은 빈부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진 시대이다. 그에 따라 부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도 노예처럼 변했다.

영국 작가 새뮤얼 버틀러가 1872년 발표한 소설 <에레혼(erehwon)>에도 거부(巨富)에 대한 외경감이 표현돼 있다. 미지의 세계 ‘에레혼’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 한 해 2만파운드 이상을 벌어들이면 예술의 경지에 이른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생각했다. ‘사회가 그렇게 많은 돈을 줬을 때에는 그가 사회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겠는가? 그들의 사업 조직은 너무 장대해서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신의 은총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며, 속(俗)에 속하는 일이 아니라 성(聖)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세금도 걷어서는 안 된다.’

[별별시선]‘자본독재의 시대’가 오려는가

현대인들은 ‘에레혼’ 사람들처럼 부자들을 추앙하고 숭배한다. 종교는 부자들이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이라 주장하고, 그들의 성공은 학교, 언론, 인터넷, 방송, 출판시장을 통해 신화화돼 유포된다. 대자본가들은 그냥 돈만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세상을 구할 영웅, 구세주, 구도자, 현인으로 취급된다. 그들의 성공은 ‘도덕과 철학의 승리’이다. 그들은 ‘철인(哲人)’이고, 그들의 사업은 ‘철인 경영’이다. 예로 스티브 잡스의 성공은 ‘인문학의 승리’이고, 투기꾼인 워런 버핏은 ‘오마하의 현인’이다.

글로벌 자본가나 금융투기꾼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내는 것은 착취당하는 노예들이 자신의 주인을 경배하는 꼴이다. 사회에는 더 성실한 노예가 되기 위해 자기계발서를 탐독하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글로벌 자본가는 성공모델을 넘어 정신적, 지적으로도 존경하고 따라해야 할 전범이 됐다. 대자본가에 대한 부러움과 흠모는 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지적, 도덕적 권위까지 갖게 된 것은 확실히 우리 시대의 특징이다.

자본주의 시대가 개막된 이래 ‘부에 대한 정당화’ 시도는 늘 있어왔다. 근대 이후 ‘노동의 윤리’는 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됐고, 몇 천년간 ‘부정한 도둑질’로 낙인찍혀온 부는 정당화의 논리를 얻게 됐다.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주장한 것처럼, 개신교는 부를 금욕과 노동, 직업 소명의식의 결과로 인정해주었다. 그럼에도 1980년대 신자유주의 시대가 본격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부자는 그저 돈 버는 수완이 좋은 사람 정도로 여겨졌다. 부가 ‘도덕과 철학의 산물’로 인정되지는 않았다. 지금은 동서고금의 철학자나 현인들이 모두 자본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포장된 ‘기업인문학’ 서적들이 쏟아진다. 중세의 스콜라 철학이 종교의 시녀였듯, 인문학은 자본의 시녀가 됐다.

오늘날의 자본가들은 사회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사상가이기도 하다. ‘창조적 자본주의’를 주창하는 빌 게이츠와 ‘열린사회 프로젝트’를 주장하는 조지 소로스가 대표적이다. 이전에도 자본가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학계를 통제하고 동원함으로써 사회적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생산과 유포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외견상 그 주체는 학자였다. 지금처럼 자본가가 직접 이데올로그로 활동하는 경우는 없었다. 이유가 뭘까? 설마 먹이사슬의 최상층에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글로벌 자본가들이 사상가로서의 명예까지 노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자는 이러한 현상을 19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표면화된 신자유주의 경제 위기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런 목적이라면 주류 학계와 미디어 조직을 동원해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여기에는 보다 적극적인 이유가 있어 보인다. 그것은 직업적인 정치인들을 후원하고, 조종하고, 동원하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이나 ‘대리정치’ 대신 자신들이 직접 정치 전면에 나서는 ‘친정(親政)체제’ 구축을 위한 사전포석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라 하더라도 정치 전면에 나서려면 기호와 상징을 조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대중의 의식을 지배하고 그들의 자발적 지지와 복종을 얻을 수 있다. 내 예상이 틀릴지도 모르겠다.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앞으로도 자본가들이 사상가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는 일이 많아진다면, 우리는 자본가가 경제권력과 정치권력을 모두 독점하는 자본독재 시대의 도래를 의심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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