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친구는 반만 친구일까

2013.08.19 21:41
김민서 | 소설가

스웨덴에는 이런 속담이 있다. ‘결혼한 친구는 반만 친구다.’ 싱글과 유부녀라는 다른 노선을 타게 된 친구들은 예전보다 자주 서로에게 무언가를 충고하게 되는 것 같다. 유부녀는 어서 빨리 결혼하라고 싱글 친구를 닦달하고, 싱글은 그런 유부녀가 고깝다. 가정이란 울타리에 갇혀 싱글 시절의 빛을 잃어버리고 아줌마가 돼가는 그녀가 한심하게만 보인다. 이런 스토리는 영화나 드라마, 소설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유부녀가 되면 친구들과 멀어진다는 말을 결혼 적령기의 여자들은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어떤 실수를 통해 인생의 친구들을 잃게 되는 것일까.

[별별시선]결혼한 친구는 반만 친구일까

결혼하고 얼마 안돼 가까운 친구의 생일파티가 있었다.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과 그간 못다 푼 얘기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먹으러 가자는 얘기가 나왔다. 싱글 시절의 자연스러운 행보였다. 네 명의 친구가 모였는데 나를 포함한 둘이 유부녀였다. 친구의 남편은 느지막이 일어나 빵에 잼을 발라먹고 있다고 했고 우리 남편에게선 방금 짜파게티를 끓여 먹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나와 친구는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나는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는데 남편은 집에서 혼자 인스턴트 음식을 먹고 있다니. 디저트를 먹으러 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결국 두 유부녀는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싱글 친구들은 당연히 어이없어 했다. 나조차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남편이 혼자 있으니까 빨리 가봐야겠어, 그런 대사를 치며 친구들과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건 남자밖에 모르는 밉상이나 저지르는 짓인 줄 알았는데, 내가 그런 짓을 하고 있었다. 물론 남편은 나 없이도 밥을 먹을 수 있다. 내가 없어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논리적인 설명들과 상관없이 ‘그냥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이상한 마음’이 생겨버린 것이다. 그 비슷한 일은 수도 없이 많다. 여름철마다 갔던 친구들과의 여행도 이제는 머뭇거리게 되고, 시계를 보지 않고 밤늦도록 노는 일도 더 이상은 무리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서운해하는 친구들이 생겨난다.

대화의 주제도 예전 같지 않다. 모두가 싱글이었을 때 우리가 가장 열광한 주제는 단언컨대 남자였다. 어떤 남자가 좋은 남자인가, 우리는 어떤 남자를 만나야 행복한가,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하나, 한다면 언제 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분명했던 공통의 주제가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경계로 유부녀들은 완전히 그 주제에서 졸업한다. 대신 살림이나 결혼생활의 갈등, 가정의 재테크, 육아가 그 빈 공간을 대신한다. 서로의 관심사가 다르니 대화에서는 공감의 시간보다 들어주는 시간이 늘어난다. 그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여자들에게 공감이란 때론 모든 것일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얼마 전 친구와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결혼 후 자아가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게 고민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친구들이 제2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모습에서 위기감도 느꼈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고립된 직업이다. 명함이 늘어가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나만 정체된 것 같다는 생각에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친구는 반대로 날 보고 위기감을 느꼈다고 했다. 내 칼럼을 읽을 때면 나는 이미 결혼해서 어른이 된 것 같고(실은 전혀 아닌데), 자신은 뒤처지는 것 같아 초조함을 느낀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몇 번이나 이렇게 말했다. “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야.” 어쩌면 여기에 답이 있지 않을까. 친구관계는 단순히 결혼의 유무가 아닌, 결핍을 숨기고 삶을 포장하면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요즘은 학창 시절을 종종 생각한다. 싱글 시절에는 학창 시절이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시절을 보내다 사회인이 된 모든 과정이 하나의 시절로 연결돼 있었다. 그러나 결혼을 기점으로 그 시절은 이제 언덕 너머로 사라져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 시절’에서 ‘이 시절’로 완전히 넘어와버린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굉장히 슬퍼진다. 그리고 그럴 때면 늘 친구들이 보고 싶다.

여자라면 다들 겪어본 적 있을 것이다. 동성친구 사이에도 권태기라는 것이 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을 멀리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 서로가 서로를 찾는다. 결혼 직후도 마찬가지다. 당분간은 서로가 멀어졌다고 느낄 수 있다. 공감할 수 있는 대화의 주제가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만 같다. 그러나 그런 시기는, 여자친구들의 세계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일시적인 현상이리라 믿는다. 어느 날 우리는 불현듯 멀어진 친구들이 생각날 테고 전화번호를 누를 것이다. 상대방이 기다렸다는 듯 우릴 반기는 순간, 우리는 여고생으로 돌아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역시, 인생에 남는 것은 친구밖에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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