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불법

2013.10.08 21:06 입력 2013.10.09 23:24 수정
정희진 | 여성학 강사

서두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이 글이 현재 논란 중인 특정 사건의 피해자에게 또 다른 인권 침해가 될까봐 매우 조심스럽다. 불명예로 간주되는 사건의 특성은, 사건 자체보다 회자되는데 ‘가해 세력’의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륜이라고 불리는 사랑을 경험하며, 혼외 관계는 일부일처가 제도화된 사회에서 흔한 인생사다. 정확히 말하면, 불륜이 아니라 불법이다. 혹은 비합법? 사랑에 ‘현행법 위반’이라는 개념이 성립할 수 있을까. 마음이 제도의 틀보다 작아서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인간의 마음, 생각, 감정이 어떻게 구조, 그것도 법제의 틀 속에 구겨 넣어지겠는가.

[정희진의 낯선사이]불륜과 불법

사랑은 불법과 합법 차원에서 논의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범성애(汎性愛). 사랑의 대상은 삼라만상이다. 사랑하는 상대가 동성이든, 나이차가 많든, 원수의 집안이든, 집안 사람이든, 계급과 국적이 다르든 심지어 동물과의 사랑(미녀와 야수! 슈렉!)도 불륜은 아니다.

사랑에는 불법도 변태도 비정상도 없다. 그 기준을 정하는 권력이 있을 뿐이다(그러나 개인적으로 나는 한국 사회의 혼외 사랑, 특히 남성의 경우 사랑이라기보다 성 구매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불륜 개념은 재고되어야 한다. 불륜(不倫)은 글자 그대로 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다. 상대방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금품을 갈취하고 함부로 대하고 노동을 강요하거나 헤어질 때 예의 없는 행동이 불륜이다. 이것은 공적 영역을 포함,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된다. 남의 공로를 가로채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고…. 비윤리적 상황은 우리의 일상이다.

연인 관계에서 갑자기 잠수 타고 불분명한 태도로 희망 고문을 하거나 상대가 더 사랑한다고 해서 권력감에 도취되거나…. 이런 행동이 불륜이다. 인간관계는 윤리와 정치의 잣대이자 경합장이다. 사랑이 식거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불륜이 아니다. 다만 최선의 노력으로 당사자들 간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한다. 이 과정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그동안 사랑하고 사랑받은 대가를 치르는 것, 이것도 사랑의 일부다. 사랑의 시작과 끝 모두 쉽지 않다.

굳이 사랑을 구별하라면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혼·중산층·이성애·선남선녀의 결혼을 전제로 한 사랑. 즉 제도가 보호하는 사랑과 그렇지 않은 절대 다수의 나머지 사랑. 동성애, 이성애에서 연상의 여자, 죄수, 못생긴 사람, 중장년, 장애인, 노인, 노숙인의 사랑은 주책과 추태로 보이기 쉽다.

이것은 평생의 상처가 될 수도 있는 인권 침해인데 사회적 낙인이 워낙 세서인지, 성적 소수자인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제외하면 저항하는 경우도 드물다. 사실 가장 비윤리적인 행위는 대부분 제도 안에서 발생하고 또 쉽게 합리화된다. 가정폭력, 성폭력, 성매매가 그것이다. 제도권 밖의, 문화적 각본에 없는 사랑을 해 본 이들은 인생과 인간의 진수를 알게 된다. 일부 예술가와 지망생들이 일부러 쓰라린 사랑을 시도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 정도로 이는 정치적 문제고 사람들은 가혹하다. 주로 인생이 지루한 사람들이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다.

사생아(私生兒). 말 그대로 개인적으로 태어난 아이. 영어는 러브 차일드. 제도 안에서 태어난 아이는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는 함의가 있는 흥미로운 표현이다. 결혼 제도의 사랑이 영원하면 좋겠지만,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도로 그것도 폭력적으로 강제하는 것이다. 개인의 노력과 무관하게 ‘행복한 부부’는 불가능에 가깝다. 일단, 성별 분업에 기초한 남녀 불평등이 불화의 조건이다.

가족 내 여성 노동, 양육과 노동력의 재생산은 자본주의가 굴러가는 기본 동력. 저출산으로 국가가 여성에게 호의적인 이유다. 인구, 국력, 노동력의 삼각관계는 국가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불륜으로 불리는 사랑을 옹호하고자 함이 아니라 결혼이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의 산물, 인위적 제도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사생활에 불과한 혼외 자녀의 존재는 뉴스거리가 될 수 없다. 더구나 한 인간의 시민권을 몰수할 만한 협박 권력이 될 수 없다.

통치자는 자기 정책이나 의지가 다른 사람을 얼마든지 임면(任免)할 수 있다. 국민이 투표로 부여한 권력이다. 가진 권력으로 법대로 하면 된다. 왜 불필요하게 여러 사람의 인생에 상흔을 새기는가. 물론 서민들은 이해하지 못할 여권 수뇌부의 정당하지 못한 ‘깊은 고뇌’가 있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이 혼외 자녀를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이번 사건은 성립할 수 없다. 사회 수준이 사건을 만든다. 증명 공방을 펼칠 가치도 없다. 문제의 본질, 진짜 이유를 뒤로 감추고 편견이 심한 가족 제도를 이용한 불문법(不文法)적 처벌은 비윤리적이다. 이러한 통치 행태가 바로, 불륜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