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민단체의 후원금

2013.08.29 21:33
정희진 | 여성학 강사

남성 권익을 내세운 시민단체 대표가 “1억원 후원”을 외치다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단체 운영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가시화된 이유다. 시민단체 대표가 대중에게 직접 운영비 문제를 하소연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아주 생소한 사건은 아니다. 나는 사회운동 관련 글을 쓰기 위해 소위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 활동가 50여명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들의 주장은 ‘반김(정일)반핵’ ‘성 구매 권리 확보’ ‘한·미동맹 강화’ ‘동성애 금지’ 등 다양했지만,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답게 예의바르고 헌신적이었다.

[정희진의 낯선사이]어느 시민단체의 후원금

게다가 상근비 없이 직장생활을 병행하면서, ‘오로지 옳다는 신념에서’ 자기 돈을 내가며 활동하는 경우도 많아서 인간적인 감명을 받기도 했다.

그들 중 몇몇이 이번 사건과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저쪽(진보)에 비해 이쪽 사람들(보수적 시민)은 지지는 해도 돈은 잘 안 내요. 그 사람들은 열성적이죠. 돈을 잘 내요. 그게 부러워요.” 내가 왜 그런 것 같냐고 물으니 “원래 ‘좌빨’들은 지독하잖아요. 우리는 독기가 없어. 독기가”라는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보수와 진보,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백인과 유색인, 서울과 지방, 비장애인과 장애인, 빈부, 남녀의 관계는 이분화되어 보이지만 대칭적이지 않다. 빈부 문제가 가장 쉬운 예일 것이다. 이들 간의 관계, 즉 차별은 흔히 이야기하듯 ‘시대적 추세’에 따라 역전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물론 변화는 있지만 열거한 문제들은 현상이 아니라 사회가 구성되는 원리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비하면 여자들 살기 좋아졌어, 장애인 처우가 나아졌어, 지금 굶는 사람은 없잖아….” 이런 말이 오갈 때 나는 묻는다. “그들한테 직접 물어보셨나요? 본인이 아닌데 그걸 어떻게 아세요?”

이처럼 일단 말하는 사람의 위치성이 논쟁거리다. 말의 정당성은 문구 자체보다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래서 “당신 말은 옳지만,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야”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차별받는 당사자가 “저의 지위가 매우 상승되었어요”라고 말하는 경우는 드물다. 당사자가 아닌 사람은 대개 구조적으로 ‘가해자’의 입장에 있으며 타인의 현실을 모른다. 따라서 이 문제에 관한 발언 자격이 없다. 마치 일본이 우리에게 “예전에 비하면 너희에게 잘해주고 있지 않니”라고 말하는 격이다.

두 번째. ‘나아졌다’는 판단은 어느 시대에 근거한 것일까. 중세에 비하면 누구나 나아졌(을지 모른)다.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는 “조선시대에 비하면 지금 여자들은…”인데, 나아졌는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누가 알겠는가? 내 의문은 여성이든 장애인이든 ‘거지’든, 왜 이들의 처지는 항상 과거와 비교되는가이다. 만일 2013년의 한국을 미국의 1600년대(조선시대)와 비교한다면 기분 좋겠는가.

장애인의 지위는 당대 비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해야지, 왜 조선시대 장애인의 지위와 비교하는가. 중산층 여성의 지위는 중산층 남성과 비교해야지, 왜 가난한 남성과 비교하는가. 현대 여성의 지위는 현대 남성과 비교해야지, 왜 조선시대 여성과 비교하는가. 여성(51%)과 장애인(15%)을 합치면 비장애인 남성 인구보다 많다. 다시 말해 여성이나 장애인은 내부 차이가 크기 때문에 특정 집단의 지위 상승 여부는 통계상으로도 쉬운 판단이 아니다. 따라서 나는 이 이슈에 관심이 없다. 사람이 아니라 과거와 비교되는 사람들! 이것이 차별 논쟁의 진짜 이슈가 아닐까.

거칠게 요약하면, 현재 여성 ‘지위 상승’의 실제 내용은 극소수 여성의 성취일 뿐이고, 공사 영역 모두에서 여성의 ‘역할’(노동) 증대를 의미한다. 여성의 사회진출만큼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증가하지 않았으므로 여성 ‘지위 상승’은 여성의 이중 노동일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남성들 간의 계급 차이에 대한 일부 남성의 분노가 ‘커리어우먼’에게 전가된 것이다. 남성 연대를 깨지 않기 위해 계급 이슈가 성별로 둔갑한 경우다. 여성의 지위 상승을 가정해도 그것이 남성의 지위 하락으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제로섬 사고방식은 세상이 오로지 성별 제도로만 굴러간다고 생각할 때 가능하다.

이제, 정답(?). 보수단체의 후원금이 적은 이유는 당연하다. 기부금을 내는 이유는 자기 이해를 대변해달라는 절박성, 윤리적 책임감, 사회적 연대 등 다양하다. 내가 여성단체에 회비를 내는 것은 바로 내 자신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단체에 대한 지지는 바로 후원금이 되지 않는다. 남성을 포함해 상식적인 시민들은 ‘차별받아야 할 사람들의 지위가 상승해서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내가 만난 보수단체의 헌신적인 활동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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