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비 담배의 경제학

2014.10.01 20:58 입력 2014.10.01 21:03 수정
류동민 | 충남대 교수·경제학

역 광장 한쪽 구석, 문명의 세계로부터 내몰린 흡연자들 몇이 각자 먼 산만 바라보며 급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초라한 행색을 한 사내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가와 담배 하나를 얻으려 시도하다가 두어 번 거절당하더니 돌아선다. 불러서 하나 줄까 싶은 마음도 잠깐, 흘깃거리며 쳐다보는 노숙자들 걱정에 귀찮아져서 그만둔다.

[경제와 세상]개비 담배의 경제학

문득 얼마 전 서울의 어느 멀쩡한(!) 동네 뒷골목에서 개비 담배를 파는 것을 보고 추억에 젖었던 생각이 든다. 스무 개비가 든 담배 한 갑을 쪼개어 하나씩 팔 때, 개비당 가격은 당연히 비싸진다. 한때 재미삼아 계산해본 개비 담배의 마진율은 60%에 이르렀다. 어느 세미나장에서 (그 역시 흡연자인) 선배 교수가 개비 담배가 가난한 이들과 중독자들을 착취하는 수단이라고 농담조로 말하는 것을 들으며 웃던 기억도 난다.

담배야 끊으면 되지만(간단하지 않은가!), 돈은 “벌면 되는 것”은 아니다.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를 올리고 있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는 돈의 규모가 클수록 높은 수익률을 얻는 메커니즘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1980년에서 2010년 동안 미국 대학들이 올린 기금의 수익률을 조사해보면, 정확하게 기금을 많이 가지고 있는 학교일수록 높은 수익률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예를 들어 부동의 수위를 지키는 하버드대학은 2010년대 초반에 약 300억달러의 기금을 가지고 있는데, 물가상승이나 각종 관리비용을 빼고도 연평균 10%의 수익률을 올렸다. 7년마다 돈이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반면 1억달러 이하의 기금을 가진 대학들의 같은 기간 연평균 수익률은 6% 남짓이다. 어차피 끊을 수 없는 가난한 중독자라면 담배 한 갑을 한 번에 사는 것이 당연히 이득이건만 그 돈이 아깝거나 부족하여 한 개비씩 사다 보면 결국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일지도 모른다.

내친김에 피케티의 논리를 따라 주먹구구로 숫자를 만들어본다. 맞벌이 부부가 근로소득자 평균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면, 1년에 3600만원가량이 된다. 몇몇 경제학자들의 최근 추계를 종합하여 소득과 재산 사이의 평균비율을 7이라 잡으면, 이 부부가 가진 재산은 2억5000만원 정도가 될 것이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평균 잡아 1년치 소득의 92.9%에 이른다(알리안츠, <글로벌 부 보고서>). 그렇다면 이들 부부는 3600만원의 90%, 즉 3300만원 정도의 빚을 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들 부부가 가진 재산은 아마도 집과 자동차, 그리고 몇 달치 소득에 해당하는 예금 정도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서울 외곽지역에 있는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에라도 살려 한다면, 집값만 해도 3억원이 훌쩍 넘을 것이다. 5000만원 정도의 빚은 주택담보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 같은 형태로라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대개 이런 경우 평균에 이르는 사람보다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게 마련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 부부의 재산은 그나마 꽤 후하게 계산된 것이다. 다시 주먹구구를 써서, 고위공직자 청문회에 나오는 이들의 재산 중에서 주거용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이들 부부보다 얼마나 낮은지, 연평균 증가율은 얼마나 높은지 등을 살펴보면 보통사람들과의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피케티 책에 경기라도 들린 듯, 이 세상에는 최적불평등도가 존재한다는 따위의 이론을 들이대는 이들의 우려처럼, “돈이 돈을 버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로 선동하고자 함이 아니다. 당신이 ‘민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을 조금이라도 가진 고위관료나 정치인이라면, 이들 보통사람의 눈높이를 아주 가끔씩이라도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1년에 1억원씩 손주 학비 대주는 할아버지를 위한 법을 만들겠다는 발상은 차마 하지 못할 것이므로.

피케티 책을 사놓고 아마도 끝까지 읽을 여유가 없는 대부분의 독자들을 위해 맨 마지막 단락의 문장을 소개한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결코 실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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