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전직 대통령”

2014.11.06 20:50 입력 2014.11.06 20:59 수정

정말 그럴 줄 몰랐다. 퇴임을 앞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대변인들이 “MB가 그리워지는 날이 올 것” “불행하지 않은 첫 전직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을 때, 맹목의 충성이거나 간절한 희망사항으로 여겨졌다. 박근혜 정부 2년, 내키지 않지만 그들의 선견(?)에 고개를 끄덕인다. 박근혜 대통령이 잘한 게 별로 없고 도 긴 개 긴이자, “차라리 MB가 나았다”는 소리가 들린다. 물론 ‘그립다’는 건 절대 아니다. ‘불행하지 않은 첫 전직 대통령’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겪은 ‘퇴임 후’와 대하면 ‘전직 대통령 이명박’은 태평세월이다. 이 전 대통령 부부는 10차례 국빈급 외유를 다녀왔다. 현직 박 대통령과 버금가는 횟수다. 청와대 경호실의 경호를 받은 국내 행사는 1924회에 달한다. ‘황제 테니스’를 치고, 전국을 누비며 측근들과 골프를 즐기고, ‘이명박 대통령의 철학과 업적을 유지·계승·발전시키는’ 기념재단 설립은 거칠 게 없다.

[양권모칼럼]“가장 행복한 전직 대통령”

소위 ‘노가다 정권’의 삽질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일각을 드러낸 해외자원개발 사업,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 실상은 충격적이다. 해외자원개발에 40조원을 투자해 35조원을 날렸다. 대통령이 직접 나선 ‘VIP자원외교’ 35건도, 자원외교특사를 자처한 ‘만사형통’ 이상득의 야심작 ‘볼리비아 리튬 사업’ 등도 죄다 엎어졌다. 현재까지 드러난 자원외교 손실액이 56조원이다.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무상급식 지출액이 2조3738억원이다. 23년치 무상급식 예산을 부실·부패한 정권 사업 하나로 말아먹은 셈이다.

천문학적 국고 손실만으로도 국회 국정조사가 당연하고,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도 요구되지만 정부·여당은 미적댄다. 박 대통령은 소위 ‘사자방’(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산) 중 방산 비리 척결만을 주문하고 새누리당과 검찰도 그것에만 움직인다. 자원외교와 4대강은 이명박 정부를 상징하는 국책 사업이고, 직접적이고 최종적인 책임이 MB를 향한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문을 열지 못하고 주저하는 까닭이다.

전철(前轍)이 있다. 박근혜 정부 첫 해 4대강 사업을 청산할 기회가 주어졌다. 감사원 감사로 4대강 사업이 ‘총체적 실패’로 판명나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대운하를 위한 전초사업으로 추진한’ 사실이 밝혀졌다. 4대강 사업 책임자 57명은 검찰에 고발당했다. 박 대통령의 의지만 있으면 4대강 숙정이 가능했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을 파헤치는 것은 정치보복”이라는 MB진영의 반발에 박 대통령은 너무도 쉽게 굴복했다. 감사원장만 사퇴시키고 타협했다. 국무총리실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는 사실상 찬성론자들로 구성돼 엄정한 평가를 기대하기 힘들다.

박근혜 정부 들어 MB정부의 실정과 정권 차원의 비리 의혹을 제대로 단죄한 기억이 없다. 이 전 대통령과 직결되는 사안에 이르면 이상하게 꼼짝을 못한다. 내곡동 사저 의혹에서도 당사자인 MB에 대해 서면조사조차도 벌이지 못한 검찰이다. ‘여론정치의 귀재’라는 박 대통령답지 않게, ‘인기 없는 전직 대통령’을 극구 감싸고 돈다. 왜 그럴까, 궁금하다. 무슨 ‘빚’ 때문인가. 국정원과 군, 국가보훈처 등을 동원해 ‘박근혜 당선’을 도운 게 ‘MB의 보험’이었나. 대선이 한창이던 2012년 9월2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후보의 이례적인 ‘2시간 독대’에서 끊기 어려운 연결고리가 생긴 것일까. 물론 모두가 정황에 따른 추측일 뿐 진실은 알 수 없다.

이제 검증할 시험대가 생겼다.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문제의 대처를 지켜보면 알게 될 일이다. 실패한 자원외교는 앞으로도 7조원 이상의 뒷설거지 비용이 들어간다. 4대강 사업은 수질악화·생태계 파괴 등 환경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유지·보수에만 매년 5000억원 이상이 소요된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가려야 올바른 출구를 찾을 수 있다. 국회 국정조사와 함께 4대강 사업·자원외교 책임자 고발 사건의 검찰 수사가 절실한 이유다.

이명박 정부의 실패한 국책 사업에 대해 끝내 국정조사를 기피하고, 책임 규명을 외면하고, 수사를 회피한다면 결국 ‘MB 지키기’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가 실은 MB정부와 ‘샴쌍둥이’라는 증명서가 될 터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이 ‘보험’과 ‘거래’였다는 의심을 합리화시킨다. “국정원 의혹과 4대강 사업, 해외자원개발 등 이명박 정권의 의혹을 털지 못하면 같이 묶여서 좌초할 것이다.” 다름 아닌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의 공신인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의 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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