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시 ‘3인방’ 아래 승지 김기춘

2014.12.04 20:46 입력 2014.12.05 09:43 수정

‘왕실장’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하 경칭 생략)의 배역은 뭘까. 가신과 종친이 물고 뜯고, 상시(常侍)와 혈육적 측근이 설킨 궁정 암투가 까발려지는 ‘막장 사극’을 대하면서 무척 궁금한 대목이다. 도승지 김기춘이 제역을 다했다면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는 애초 개봉되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양권모칼럼]상시 ‘3인방’ 아래 승지 김기춘

김기춘은 여러 번 대본을 바꿀 기회를 차버렸다. ‘박근혜 의원 비서실장’ 정윤회와 청와대 핵심 비서관들이 은밀히 만나 국정과 인사를 논했다는 어마한 내용을 보고받고도 그냥 묻었다. 김기춘은 확인 조사도 하지 않은 채 덮고, 대신 보고서 작성자를 그만두게 했다. 대통령에게 보고도 안 했다. 김기춘은 청와대 내부 문건이 대량 유출된 보안사고가 터졌을 때도 제대로 규명하지 않았다. 유출자를 파악하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국기 문란”을 대통령에게 역시 보고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뭣보다 주인공이 대통령의 혈육적 측근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만 총무비서관·정호성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비서실장의 대통령 면담과 보고서도 통제·선별할 힘을 지닌 ‘문고리 권력’이다. 또 정윤회가 누군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청와대 ‘1호국장’이 잘린 비선 실세다. 만약 다른 비서관들이 연루된 일이라면 이리 처리하진 않았을 게다. 노회한 김기춘이다.

이제 보니, 인사실패 때마다 책임추궁을 받고 사퇴에 직면한 김기춘이 억울했겠다. ‘정윤회 문건’ 파동은 비선 권력의 인사전횡 일단을 까보였다. 청와대 경찰 인사를 제2부속비서관이 주물렀다. 독신 대통령 아래 제2부속실을 존치한 이유가 “소외 계층을 살피는 민원창구”였다. 그 부속실이 경찰 인사까지 관여하는 판이면, 군·국정원 인사 등에 비선의 개입설이 스멀거린 까닭을 알 만하다. 인사위원회 고정멤버인 ‘이재만’ 이름 하나로 대우건설 취직이 가능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연이은 인사 참사에도 인사위원장 김기춘이 건재한 건 “대통령이 인사를 의논하는 사람이 따로 있기”(박관용 전 국회의장) 때문일 수 있다. 김기춘은 막후 ‘인사 실세’의 훌륭한 방패막이였던 셈이다.

다시 보니 김기춘은 솔직(?)했다. 김기춘은 지난 7월 국회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비서실장이 일일이 일거수일투족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라고도 했다. 비서실장의 보고마저 선별하는 ‘문고리 권력’이라면, 그가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기 어려울 터이다. 김기춘은 당시 청와대 권력지형을 내보이는 의미심장한 답변도 했다. “대통령께서는 또 부속실이 있어 가지고요, 저희 비서실도 있지만 또 부속….” 비서실장 지휘계선상의 제1·2부속실을 비서실과 대등하게 위치시킨 것이다. ‘문고리 3인방’은 ‘왕실장’의 통제권 밖에 있다는 얘기다. 실은 부처 위에 비서실, 비서실 위에 부속실이라 해야 맞겠다.

물구나무선 공식 라인, 승지(承旨)와 상시의 권력이 전도된 청와대에서 집권 2년차에 권력암투,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의혹, 심대한 기강해이가 발발하는 건 필연적이다. 권한 있는 사람과 책임을 지는 사람이 다른 조직에선 투명한 공적 책임 원리가 작동하지 않기 마련이다. 비위와 비선 간 암투가 싹틀 수밖에 없다. 평형수가 빠진 것이 포착되었으면 복원 움직임이 작동되어야 그나마 희망이 있다. ‘김기춘 사퇴론’은 곧잘 제기하던 여당이 ‘문고리 권력’과 ‘비선 실세’의 이름조차 거론하지 못한다. 김기춘은 난맥상을 바로잡든, 아니면 책임지고 물러나야 마땅할 터인데 “불철주야 헌신하는 비서실장님”이라는 대통령의 재신임에 감읍해 눌러앉아 있다.

‘막장 사극’이니 역사에서 교훈을 찾자. “조선은 하루가 다르게 붕괴되어가는 한 채의 집입니다. 지금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율곡 이이의 <만언봉사(萬言封事)>는 선조에게 폐정(弊政) 개혁을 직설로 충간(忠諫)한다. 딱 지금에 맞는 진단 부문을 뽑아보자. “지금 전하께서는 근신(近臣)을 친근히 하지 않으시고 바로 환관으로써 사사로운 신하를 삼고 계시며, 백성들을 민중으로 보지 않으시고 바로 내시들로써 사사로운 민중을 삼고 계십니다.” 그에 대한 처방전은 이렇다. “환관들이 임금을 가까이 모심을 믿고 조정의 신하들을 가벼이 여기게 하지 말 것이며, 만 백성을 한결같이 보시어 내시들이 임금을 사사로이 모심을 믿고 바라서는 안될 일을 엿보게 하지 마십시오.” 율곡이 목숨을 걸고 <만언봉사>를 올린 때의 직책이 바로 승지다. 비서실장 취임 때 ‘승지’를 자처한 김기춘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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