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북한의 인권 개선을 원한다면

2014.12.01 20:58 입력 2015.02.02 21:04 수정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적 압박에 반발해 핵실험 카드를 들고 나온 북한의 반응은 생뚱맞기 그지없지만, 이해가 되는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인권 의식이 국제사회의 수준과 같을 리 없기 때문이다.

[유신모의 외교 포커스]진정으로 북한의 인권 개선을 원한다면

문명국가에서는 모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평등한 인간으로서 자연적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이것은 인류보편적 가치다. 하지만 북한은 인권 문제를 국가주권의 문제로 받아들인다. 지난달 4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주권을 존중하는 나라들과의 진정한 인권대화에는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우리를 전복하려는 적에게는 인권대화는 물론 핵대화도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인권과 핵 문제를 모두 주권적 차원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같은 북한의 인식이 크게 낯설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유신체제의 한국은 국가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집중된 나라였다. 대통령이 판사와 대법관, 전체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임명했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인 3권분립을 무력화시킨 사실상의 총통제였다. 북한의 위협에 맞서 국방력을 키우면서 단기간 내에 경제성장을 이뤄야 하는 당시 한국의 상황이 이를 가능케 하는 명분이었다.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고 국가동원형 산업화를 추진하는 병영식 개발독재 체제에 대해 국제적 비난이 일었지만, 당시 정부는 이를 ‘한국식 민주주의’라고 주장했다.

각 국가가 처한 상황에 따라 민주주의의 원칙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당시 정부의 궤변은 인권문제가 인류보편적 가치가 아닌 주권 문제라는 북한의 주장과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처럼 박약한 인권 의식을 갖고 있던 한국이 성공한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과 이해관계가 얽혀 인권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오랫동안 쌓아온 국제사회와의 외교적 자산을 포기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고 여기에 정치적 고려, 전략적 사고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점진적으로 인권에 대한 자각이 이뤄진 결과다.

다른 독재국가도 마찬가지다. 어느 날 갑자기 인권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개선 조치를 취하는 나라는 없다. 국제사회에 깊숙이 편입되고 국제규범을 무시하기엔 잃을 것이 너무 많아진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조금씩 인권개선에 나선다.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지난달 18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국제형사재판소(ICC) 기소 가능성을 열어놓은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은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상황에 개입해 행동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북한이 당장 인권 상황을 개선할 가능성은 없다. 국제사회의 요구를 무시해도 잃을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여준 예민한 반응은 그들이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기는 최고 지도자의 존엄을 국제사회가 불미스러운 일에 엮어 넣은 것에 대한 분노일 뿐이다.

유엔 인권결의의 목적이 김정은을 ICC 법정에 세우는 것에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김정은을 기소하라는 촉구는 북한을 압박해 인권개선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수단이다. 이번에 통과된 북한 인권결의의 바탕이 된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보고서는 책임자 처벌 외에도 대북 인도지원과 교류 확대,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 재개, 북한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선별적 대북 제재 등을 권고하고 있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돼 있는 나라다. 국제 관계에 얽혀있는 이해관계가 크지 않고 외부세계와 쌓은 외교적·정치적 자산도 없는 북한에 국제질서에서 통용되는 가치와 규범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인권 개선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진정으로 북한 주민의 인권 상황을 우려하고 개선을 원한다면, 압박과 비난에 그쳐서는 안된다.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킨 뒤 그에 합당한 규범을 적용해 얽어매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북한 인권에 대한 균형적인 접근 없이 압박만을 강조한다면 이번 유엔 인권결의가 ‘북한 체제를 고립·압살하기 위한 국제적 모략’이라는 북한의 주장이 맞다고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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