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침묵

2015.04.12 20:42 입력 2015.04.12 20:47 수정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 “노인 집단 내의 빈부격차
노인 빈곤율보다 더 심각
‘국제시장’ ‘장수상회’ 등
우아한 노화·죽음만 다뤄”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불평등과 침묵

노화와 죽음, 인간이 가장 꺼리는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노화와 죽음은 하나의 어원에서 파생한 단어처럼 여겨진다. 사람들이 늙기를 두려워하는 것은 그 뒤에 바로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노화의 증상은 우리의 신체가 마모되고 있으며 언젠가 그 기능을 중지하리라는 것을 끊임없이 알려준다. ‘늙는다’는 자각이 불쾌하고 우울한 이유이다.

한국 영화계에 노인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14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국제시장>, 노부부의 절절한 사랑을 보여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이어 4월 극장가에도 나란히 두 작품이 걸렸다. <장수상회>와 <화장>이 바로 그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장년층이 주인공이 되다 보니 노화, 병, 죽음이 부주제를 형성한다.

주의 깊게 볼 것은 영화 속에 그려진 노년, 노화가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사실적인 노년과 닮아 있느냐는 것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노동연구원 등은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고 발표했다. 2011년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빈곤율은 48.6%로 OECD 회원국 평균(12.4%)보다 약 4배 높은 수준이다. OECD가 세상의 기준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그 범주 안에서 우리나라 노인은 가장 가난한 노인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살펴볼 만한 이야기들이 있다. 가령 플로리다의 팜비치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백만장자’라는 별명으로도 부족한 부자들이다. 이 배타적인 부촌의 실질 거주민들은 평균 80세 이상의 노인들이다. 그럼에도 팜비치 주변에는 공동묘지도 없고, 장례식장이나 병원도 없다. 부유한 노인들의 마음속엔 죽음이나 질병이 없는 것이다.

사회학자 바우만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건강불평등’이라고 지칭한다. 부유한 사람들은 심장수술과 같은 심각한 수술 이후 생존율이 높지만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율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낮다. 부와 가난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국 노인빈곤율이 최고라는 통계에서 빠진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노인이라는 추상적 집단의 빈곤율보다 더 심각한 것은 노인이라는 집단 안에서의 빈부격차일 테다. 부유한 노인과 가난한 노인, 어쩌면 지표는 이 심각한 문제를 괄호에 넣은 채 노인의 일자리 증대라는 교과서적 대답만 도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장수상회>의 한 장면.

영화 <장수상회>의 한 장면.

영화 <장수상회>와 <화장>에서 빠져 있는 것도 바로 ‘돈’이다. 두 작품 모두 노년과 병,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장수상회>에 등장하는 두 노인은 모두 육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아니다. 자신 명의의 집을 가지고 자기 이름의 가게를 가지고 있을 만큼 제법 단단한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장수상회> 속 노인 김성칠은 지역 재개발 이권의 핵심으로 대접받는다. 그의 인감 하나가 지역 경제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화장>의 주인공이 겪는 심리적 갈등은 수컷, 남성의 존재론적 고민으로 구체화된다. 10억원짜리 집과 별장, 굴지의 화장품 기업 임원으로 일하는 오상무에게 아내의 병과 죽음은 오로지 존재론적인 고통일 뿐이다. 암이 재발하고, 4년간 투병생활을 했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은 아내, 여자의 손길이 멀어진 옷차림과 남성으로서의 쇠잔함이다. 장례식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사위의 말에 지갑에서 신용카드를 꺼내 건네주고는 그는 다시 자신만의 갈등의 세계로 침잠한다. 적어도 그에게 병과 죽음은 ‘돈’과 무관한 철학적 사건인 셈이다.

물론 모든 영화가 노년의 경제적 어려움을 다룰 필요는 없다. 각각의 영화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죽음과 노년, 가족의 문제는 다 그럴듯한 개연성이 있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노년의 경제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한국 영화만 보자면 한국 노인들에게는 병이나 죽음과 같은 존재론적, 본질적 고민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점에서 <국제시장>의 덕수나 <장수상회>의 성칠은 노인들이 꿈꾸는 판타지에 가까워 보인다. 자신의 집과 가게가 있어 떳떳하게 자식들 앞에 나설 수 있고, “내”가 너희들에게 해준 게 얼마인데, 라며 당당하게 소리도 지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은 마음에서 우러난 진심의 효도를 바친다. 아내도, 자식도 모두 다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니 비록 늙고, 병들었다고 해도 보람 있는 노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 사회에서 노년의 삶이 이처럼 우아할까? 늙고 병드는 물리적 변형만이 노인들을 괴롭히는 현실적 문제일까? 영화 속에 그려진 것처럼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희생에 공감하고 존경을 바칠 수 있을까? 아니, 왜 꼭 그렇게만 그려져야 하는 것일까? 언제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침묵에 가려져 있곤 하다. 소설가 토마스 만은 그의 소설 <마의 산>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시대가 공허한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좀 더 솔직한 인간은 그로 인해 모종의 마비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고 보니, 세상엔 온통 침묵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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