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여자

2015.05.31 20:36 입력 2015.05.31 20:49 수정
강유정 |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 “세상을, 남자를 믿어서
나락에 빠지는 여자들
순진한 ‘신데렐라’의 믿음이
여자를 구원할 수는 없다”

[강유정의 영화로 세상읽기]세 여자

신데렐라는 어떻게 태어날까? 신데렐라는 믿어야 한다. 호박을 마차로 바꾸어 주고, 재투성이 옷을 화려한 드레스로 바꿔준다는 요정 할머니의 말을 믿어야 한다. 순결하고 착하게 살아간다면 정의롭고 멋진 왕자님이 나타나 구원해 준다는 어머니의 말도 믿어야 한다. 이 순진한 믿음의 세계가 더러운 현실과 만나지 않을 때, 진공상태의 스노우볼 안에서 신데렐라는 공주가 될 수 있다. 아니, 왕비로 신분 상승할 수 있다. 하지만 신데렐라 이야기는 동화다. 동화의 세계는 너무나 순결한 나머지 현실의 공기에 닿는 순간 바로 변질되고 만다. 현실의 여자들을 보면 그렇다. 그녀들은 믿기 때문에 현실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게 아니라 믿기 때문에 삶의 나락에 빠진다. <무뢰한>의 김혜경, <은밀한 유혹>의 지연을 보며 신데렐라의 허구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무뢰한>의 주인공 김혜경(전도연)은 과거 텐프로에서 활약한 화류계 여성이다. 워낙 그 세계를 주름잡다 보니 꽤 많은 돈을 벌었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거의 무일푼이 되어 수도권 변두리의 단란주점에서 새끼마담으로 겨우 살아갈 뿐이다. 주식으로 날렸다, 라는 간략한 서술이 보태지지만 영화를 보다 보면 그녀를 망하게 한 게 비단 주식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잘 나가던 그녀의 주머니를 턴 것은 다름 아닌 남자다. 그녀를 도망자 신세로 전락시킨 것도 남자다. 심지어 남자는 그 지방 변두리 단란주점에 ‘그녀’를 담보로 맡기고 빚까지 얻어갔다. 그러니까, 김혜경은 남자 때문에 빈털터리에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다.

가망 없는 말인 게 뻔한데도, 김혜경은 남자의 말을 믿는다. 너를 담보로 맡겨서 미안하다면서 남자는 도피 자금 삼천만원을 요구한다. 달콤한 말도 곁들인다. 우리 이 땅을 벗어나서 둘이 행복하게 살자, 라고. 김혜경은 그 달콤한 유토피아를 믿으며, 또다시 돈을 구하러 나선다. 김혜경은 또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알 수 없는 영업부장의 말도 믿는다. 남자 박준길과 교도소 동기라는 형사 정재곤의 거짓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그런데, 이 믿음이 김혜경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모두 빼앗는다. 애인 박준길은 그녀에게 남은 여분의 젊음과 여성미를 돈으로 환산해 도망가 버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길을 살리고 싶은 그녀는 곁을 맴도는 또 다른 남자 정재곤을 믿어보지만 그 역시 범인을 잡고 싶어 위장한 형사에 불과하다. 박준길은 김혜경에게 다른 현실을 약속하고, 정재곤은 김혜경에게 행복의 도구를 약속한다. 하지만 약속을 믿은 김혜경에게 돌아오는 것은 그 전보다 더 지독한 나락으로 빠진 현실이다.

영화 ‘무뢰한’의 한 장면.

영화 ‘무뢰한’의 한 장면.

<은밀한 유혹>의 지연(임수정) 역시 위기에 처해있다. 동업자가 사업자금을 들고 도망간 데다, 심지어 그녀 이름으로 사채까지 빌려 썼다. 매일 독촉과 위협에 시달리는 지연에게 한 남자가 달콤한 제안을 한다. 마카오 카지노 반 이상을 가진 회장의 아들인 그는 말 그대로 왕자님이다. 그가 인터뷰를 위해 지연을 불러들인 펜트하우스는 동화 속 왕자님의 성과 다를 바 없다. 왕자님은 성의 안주인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제, 지긋지긋한 재투성이 여자에서 벗어나 왕비가 될 수 있는 길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아주 우연히, 정말 동화처럼 말이다.

두 영화 속에서 여자들은 너무 쉽게 남자들을 믿는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그들이 자신을 지옥에서 구원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동화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를 혼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여자 퓨리오사는 좀 다르다.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퓨리오사는 절대로 남자를 믿지 않는다. 임모탄의 아내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을 향해가는 퓨리오사에게 어쩌면 조금 더 강한 체력을 가진 남자의 도움은 절실해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직접 그 사람을 검증하기 전에는 결코 남자를 믿지 않는다. 주인공 맥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직접 도움의 손길을 뻗치기 전까지 그녀는 맥스를 믿지 않는다.

퓨리오사에게 신뢰를 주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 그리고 자신이 경험에서 배운 과거이다. 퓨리오사는 직접 운전을 하고, 차를 몰아서 약속의 땅을 향해 간다. 심지어 자기가 아니면 차를 운전할 수 없도록 스스로 암호 체계를 만들어 둔다. 그러니까, 호박마차를 자동차로 바꾸어 꿈의 세계에 닿게 할 수 있는 것은 요정 할머니의 주술이 아니라 자신이 걸어 둔 암호이다. 주문이 아니라 암호가 그들을 위기에서 구한다.

영화 속에서 대개 직접 운전하는 여성들은 파멸과 동일시 되어 왔다. <위대한 개츠비>의 데이지도, <오픈 유어 아이즈>의 여자도 그랬다. 하지만 퓨리오사만큼은 다르다. 퓨리오사가 이끄는 거대한 유조차는 어떤 점에서 여성의 부푼 배, 임신한 자궁과 닮아 있다. 그 큰 몸뚱이는 워보이의 날렵한 자동차에 비해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퓨리오사는 무거운 몸뚱이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몸뚱이 속에서 여자들이 새로 태어나고, 심지어 워보이도 다시 태어난다. 그것이 바로 자궁을 가진 여자들의 힘이라는 듯이 말이다.

결국, 믿음이 문제이다. 대개 여성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가 전해준 신화와 동화를 듣고 자란다.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순진한 믿음의 서사가 곧 여성적 행복의 길을 약속한다고 말해준다. 여자들은 그래서 길을 내는 게 아니라 나 있는 길을 따라가도록 성장한다. 길을 내는 건, 위험한 여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하지만, 결국 길은 내 발로 내야만 한다. 믿을 수 있는 것 역시 내가 지금껏 걸어오면서 만들어 놓은 길이다. 퓨리오사가 강인하기는 하지만 남자들만큼 힘이 센 것은 아니다. 그녀가 강인한 이유는 바로 자신을 믿기 때문이다. 도착적 지도자인 임모탄의 거짓 희망을 믿지 않고, 한때 그녀가 살았던 푸른 땅의 기억을 믿는 것, 순진한 믿음이 소녀를 잠재울 수는 있지만 여자를 구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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