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땅한 분노

2015.09.01 21:15 입력 2015.09.01 21:25 수정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분노가 가득한 세상이다. 신문기사나 사회관계망에 오른 글들에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들이 댓글로 달리곤 한다. 영화 <베테랑>이 단숨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데에도 ‘분노의 공감’이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현상을 논하는 자리에서 ‘분노 게이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온라인게임에서는 분노 게이지가 전투력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분노 게이지를 높이기 위해 자신을 욕해달라고 주문하는 예능 프로그램의 장면을 보며 웃을 수만은 없는 것은, 이 사회의 분노 수위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진단 때문이다.

[송혁기의 책상물림]마땅한 분노

‘연비어약(鳶飛魚躍)’이라는 말이 있다. 솔개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물고기는 물에서 헤엄치며 뛰노는 모습으로 ‘천지자연의 모든 것들이 도에 합당한 자기 자리를 얻은 상태’를 형상화한 말이다. 자신이 뭘 잘하는지 발견해 가고 평생 마음 나눌 친구들을 얻는 학교가 학생이 날아올라야 할 하늘이고, 약자를 위한 법 집행이 이루어지고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주는 사회가 시민이 노닐어야 할 물이다.

자기 자리를 얻지 못하는 데에서 분노는 시작된다. 아이의 멋진 상상력이 물에 빠진 솔개의 날개 취급을 받고 청년의 당찬 도전이 물 밖에 던져진 물고기의 몸부림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서 답답함은 분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마땅한 것을 누리는 데에 과도한 경쟁이 요구되고 그 경쟁마저 공정하지 않다는 의식이 팽배하니 분노는 극단적으로 쌓여간다. 누구에게 무엇을 빼앗겼는지조차 모른 채 증폭되는 분노는 온갖 의혹과 과도한 억측으로 이어진다. 그 속에서 정작 분노의 대상은 숨어버리고, 허공에 휘두르는 주먹처럼 날선 비방만 난무한다.

모든 존재는 자기 자리가 있게 마련이라는 말은, 입 다물고 자기 본분에나 충실하라는 가르침으로 통용돼 온 면이 있다. 그러나 모든 존재가 자기 자리를 얻을 수 있게 해주어야 진정한 정치라는 당위와, 그렇지 못할 때 끝까지 비판하고 나설 수 있게 한 명분 역시 여기서 나왔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구난방으로 솟구쳤다 이내 소멸되며 더 큰 체념으로 이어지는 분노가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가 어디이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마땅한 방향’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 위에서 일어나는 ‘마땅한 분노’이며, 이 분노를 생산적인 힘으로 만들어갈 지혜다. 이 시대에 인문학이 필요하다면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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