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보루

2015.08.18 21:12 입력 2015.08.19 10:04 수정
송혁기 |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중국 당나라 문장가 유종원은 유주사마 맹공을 위한 묘지명에서, “공은 조주를 정벌하는 임무를 수행할 때 보루를 견고하게 세우고 전장에서 죽기를 각오하였다”라고 하였다. 적을 막기 위해 쌓은 구축물을 뜻하는 보루(堡壘)라는 어휘의 출전이다. 전쟁의 양상은 달라졌어도, 마지막 보루를 지켜내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보루라는 말 앞에 ‘최후의’라는 수식어가 자주 붙고, ‘죽음’도 불사한다는 말이 이어지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송나라가 원나라에 의해 패망되던 때, 육수부(陸秀夫)라는 충신은 송나라의 재건을 위해 복주에서 다시 위왕(衛王)을 세우고 보좌하였다. 당시 최후의 보루는 광주만과 남쪽 바다가 만나는 애산(厓山)이었다. 마침내 원나라 군대가 이 보루마저 격파하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음을 안 육수부는 처자를 먼저 바다에 빠뜨리고 자신도 위왕을 등에 업고 애산 앞바다에 빠져 죽었다. 1279년, 송나라 최후의 장면이다.

[송혁기의 책상물림]최후의 보루

지켜야 할 것이 ‘최후의 보루’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이르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공존 불가능한 적군과의 전쟁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닌데도 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잔인할 뿐 아니라 지혜롭지 못한 일이다. 더구나 지키고자 하는 것이 눈앞의 이익이나 권력이 아니라 정신적 가치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어이 힘으로 누르고 몰아간다면, 결국 다양한 취향과 감성들, 자유로운 사유들과 저 창조적 상상력 따위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라고 적고 그 보루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의 몫을 감당해낸 분의 소식을 들었다. 지금 필요한 일은, 투신만이 가능한 선택이었는지, 그것이 정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현명한 방법이었는지 따지는 것이 아니다. 무뎌지고 포기하며 한발 한발 뒷걸음치다가 어느덧 우리가 딛고 선 곳이 더 물러설 수 없는 땅끝의 보루, 애산인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대학의 문제만이 아니다. 어쩌다가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무엇에 휘둘려 내몰리고 있는지, 정말 지켜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그것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지금 다시 묻지 않는다면, 이 희생마저 우리는 또 바다에 침몰시켜버리고 말 것이다. 고개 숙여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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