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41번집

2016.06.02 21:02 입력 2016.06.02 21:05 수정

여수를 다녀왔다. 몇 해 동안 여수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엑스포의 영향이다. 서울에서 3시간이 채 안 걸리는 초고속열차가 등장했다. 이름도 여수엑스포역이다. 지방의 가게 간판은 지역 규모와 달리 초대형인 경우가 많은데, 이 도시는 이른바 도시미관에 맞춰 작고 아담한 모양을 자랑한다. 엑스포 말고 여수의 변화를 가져온 것은 버스커버스커 때문이라는 농담도 있다. ‘여수 밤바다’는 아예 여수 관광정책에 반영된 듯하다. 어찌 되었든 여수의 맛은 여전하다. 몇 가지 달라진 풍경도 있다. 명물인 연등천 포장마차촌은 위세가 많이 줄었다. 이곳의 포장마차는 1부터 40 몇까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본디 ‘못잊어’ ‘한잔집’ 같은 이름이었다고 한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여수의 41번집

포장마차는 원래 불법이다. 하나 시민이 사랑하는 명물이 되다보니 없앨 수도 없었다. 그래서 기존 상호를 지우고 번호를 매겼다. 숫자는 운치가 없으나 관리가 쉽다. 기존에 번호를 받은 포장마차는 영업을 하되, 새로 진입하는 것은 막겠다는 시의 묘책이었다. 그것이 명소가 되었다. 소설가 한창훈 선생도 자신의 글에서 연등천의 풍물로 소개하고 있다. 부드러운 여수의 안주 맛, 별미인 병어를 특유의 문체로 묘사했다. <인생이 허기질 때 바다로 가라>는 수필집이다. 기왕 소설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강의 <여수의 사랑>도 빼놓을 수 없겠다.그곳 연등천의 포장마차는 많이 쇠락했다. 요즘은 맞은편 교동시장 안쪽의 천변을 끼고 신흥 포장마차가 많이 늘었다. 여수는 희한하게도 포장마차의 도시다. 봉산동에 가도 이 지역에서 유명한 ‘남면집’을 비롯한 포장마차가 줄지어 있다. 서울 포장마차의 안주라야 냉동한 곰장어와 고등어구이, 꽁치, 닭똥집(모래집)이 고작일 정도로 빈약했다. 여수는 어딘가. 이곳의 해물이야 견줄 곳이 드물지 않은가. 철마다 병어, 덕자, 자연산 홍합, 붕장어, 가오리, 갑오징어, 삼치, 꼴뚜기, 민어, 서대, 군평선이(금풍생이)… 이런 화려한(?) 미식이 포장마차 좌판에 나왔다는 걸 믿을 수 있을지.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여수의 41번집

연등천 포장마차의 전설은 41번집이다. 주인 박덕자씨(58)가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새색시가 되어 먹고살려고 시작한 일이 35년이 되었다. 일일이 숯불에 굽는 선어, 제철에 가장 좋은 생선으로 내는 회접시, 초창기부터 인기 있었던 닭발 같은 안주를 팔면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그이가 이제 연등천 생활을 끝내고 정식 가게를 얻었다 하여 오랜만에 들렀다. 무뚝뚝한 표정에 반가움이 서려 있다. 하루 열서너 시간 동안 그이는 꼬박 서서 음식을 다듬고 끓이고 굽는다. 포장마차의 운치는 사라졌지만, 그걸 아쉬움으로 말하기엔 그이의 노동이 너무 버거웠다.

“눈 오고 비 오고, 천막 새로 태풍 들이치고 그랬지라. 아휴 말도 마소, 연탄불 숯불 피워서 그 좁은 데서 굽고 지지는 게 뭐가 운치요(웃음).”

여수에는 아직 포장마차가 살아 있고, 박 여사의 손맛 걸진 실내포장마차도 있다. 그이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옛 연등천 시절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상호도 그냥 ‘41번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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