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전골

2016.06.30 21:08 입력 2016.07.04 19:26 수정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수중전골

요즘 서울 서부지역 상권은 속칭 홍대앞이 쥐고 있지만, 과거에는 달랐다. 홍대앞은 홍대생이 가는 몇몇 대폿집과 두어 개의 카페가 있었을 뿐, 이른바 ‘작업실’이라고 불리는 홍대 미대생의 화실이 들어차 있었다. 그만큼 조용한 동네였다. 신촌과 이대앞이 북적거렸다. 나는 주로 이대앞에서 술을 마셨다. 최근에는 옷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골목 분위기가 바뀌었지만 전에는 숨겨진 대폿집이 꽤 있었다.

[박찬일 셰프의 맛있는 미학]수중전골

가장 자주 갔던 곳이 ‘와글와글’이라는 상호의 허름한 해물탕집이었다. 이것저것 잡탕 해물을 넣고 끓여내는 찌개에 ‘두꺼비’나 막걸리를 마셨다. 삼겹살이나 돼지갈비는 언감생심이었다. 해물잡탕이 인기 있었던 건, 그 양 때문이었다. 그저 ‘아줌마, 육수 추가요’라고 외쳐서 양을 원상복귀(?)시킬 수 있었다. 배고픈 청춘들에게 푸짐한 양은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재료값이 오르면서 서울에서 해물탕집은 점점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술안주의 기호도 변했다. 별달리 먹을 것 없던 과거와는 다르다. 치즈를 넣은 요리가 인기를 끌 정도니까.

부산에 갔더니 수중전골이라는 희한한 요리가 있다. 신창동 국제시장 골목에 십여 곳이 번성했다고 한다. 역시 대학생 같은 청춘들이 단골이었다. 값싸고 푸짐했다. 지금은 딱 두 집만 남아 있다. 요즘 값으로 일인분에 팔천원이니 참 값도 눅다. 개조개와 바지락, 오징어와 새우가 들어가는 얼큰한 해물찌개다. 특이한 건 냄비다. 마치 갓을 뒤집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어북쟁반이나 불고기, 스키야키나 칭기즈칸 양고기요리를 할 때 쓰는 냄비 같기도 하다.

옛 그림 중에 ‘야연’이라는 야외 불고기파티 장면에 나오는 도구를 닮았다.

국제시장 안에 있는 오래된 그릇가게를 돌며 탐문(?)에 들어갔다. 그릇가게 사장님이 수중전골용으로 납품된 게 맞다고 한다. ‘삼광’이라는 브랜드가 선명하다. 원래는 알루미늄으로 제작하다가 스테인리스로 바뀌었다. 수중전골집이 줄면서 추가 주문이 없어 새로 제작되는 것도 없다는 전언이다. 그릇은 곧 그 요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구멍 숭숭 뚫린 서울식 불고기판은 그것 자체로 불고기를 ‘해설’해준다. 구멍으로 불꽃이 들어와 고기에 맛을 들이고, 넉넉한 국물받이는 불고기를 먹는 방법을 의미한다.

그릇 도매상이 많은 신당동 중앙시장에 가면, 삼겹살 구이용 판만 대략 20~30종이 팔린다.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증명해주는 도구들이다. 이런 도구들이 민중사의 한 부분으로 잘 정리되고 보존돼야 한다. 앞서 부산의 수중전골집에서 쓰는 알루미늄 전용 냄비도 다 닳으면 새로 구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마흔 개 남짓이 전부다. 구멍이 나거나 깨지면 새로 주문해야 하는데, 생산이 중단됐으니 난감할 것 같다. 그 멋진 냄비 말고는 수중전골이라는 요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는 소중한 것을 너무 쉽게 여긴다. 우리 몸을 지탱하는 요리를 담는 그릇도 마찬가지다. 한때 집집마다 응접실을 장식했던 접시들은 다 어디 갔을까. 어머니가 찌개를 끓이시던 백동 냄비는 또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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