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리고 ‘시대정신’

2016.08.12 21:32 입력 2016.08.12 21:39 수정

“2016년판 <똘이장군>.” “시대가 뒤로 가니 영화도 역행한다.” 영화 <인천상륙작전> 시사 후 영화주간지 ‘씨네21’이 게재한 ‘20자평’이다. 평론가와 기자들은 별 5개 만점에 1~2개를 매겼다. 그러나 <인천상륙작전>은 지난달 27일 개봉과 함께 <부산행>을 제치고 곧바로 주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 보름 만인 11일까지 모은 관객은 576만명이다. <덕혜옹주>와 <터널>이 잇달아 개봉하면서 관객수는 크게 줄었지만, 손익분기점인 470만명은 이미 넘어선 상태다. 이 같은 추세대로라면 700만~800만 관객은 모을 것으로 보인다.

[기자칼럼]영화, 그리고 ‘시대정신’

평론가는 혹평했지만 다수의 관객이 몰렸다. MBC <뉴스데스크>는 이를 두고 “이념에 빠진 영화 평론가들의 실수”라는 ‘독창적’ 해석을 내놨다. 평론가들이 대부분 좌파라서 ‘우파 영화’인 <인천상륙작전>에 낮은 평가를 줬지만, 대중은 그런 평가에 개의치 않고 영화에 호응했다는 것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인천상륙작전>은 이념에 상관 없이 못 만든 영화다. MBC가 <인천상륙작전>과 같은 ‘우파 영화’라고 분류했던 <국제시장>과 비교해도 그렇다. <국제시장>이 한국 현대사의 질곡을 겪은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연민과 유머로 아기자기하게 펼쳐놓은 반면, <인천상륙작전>은 무엇에 집중해 봐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첩보영화로 보기엔 비밀작전 수행 과정에 서스펜스가 없고, 전쟁영화로 보기엔 인상적인 전투 장면을 남기지 못했다. 첩보부대원들의 각기 다른 인생사들은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고, 할리우드 스타 리엄 니슨이 연기한 맥아더 장군은 영화의 전개와 무관해 공허한 명언만 남긴다.

이런 현상은 2월 개봉한 <귀향>과도 비교할 만하다. 위안부 피해자의 비극적인 삶을 극화한 이 영화는 전국 350만 관객을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웰메이드’ 영화라 보긴 어렵다. <귀향>에는 어설픈 전투 장면 등 저예산의 한계를 드러내는 대목들이 많다. 역사적 참상을 재현하는 방법론을 두고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홀로코스트를 다룬 수많은 영화들이 유대인 학살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역사적 참상을 날것 그대로 보여줄 때 발생할 수 있는 역효과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의 상업영화는 ‘웰메이드’를 지향하기 시작했다. 짜임새 있는 각본, 안정적인 연출력, 설득력 있는 연기가 조화를 이뤄야 했다. 감독이 자신의 색깔을 강하게 내기보다는, 대중의 취향을 반 발짝만 앞서는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웰메이드’는 중요하다. 하지만 충분치는 않다. 영화 내부의 완결성만으로는 폭넓은 대중의 발길을 이끌지 못한다. 영화는 영화 외부의 세상과 만날 때 더 큰 힘을 얻기 시작한다. 인천상륙작전은 한국전쟁의 주요한 분기점이었지만 최근의 한국영화 풍경 속에선 거의 재현된 적이 없다. 그동안 한국영화계가 간과했던 중장년 관객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역사적 사실이 170억원대 제작비의 스펙터클을 통해 스크린에 펼쳐지는 모습에 호기심을 보였다. 보수정권이 2번에 걸쳐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이 같은 영화가 제작될 수 있었던 이유가 될 것이다.

<귀향>의 흥행은 위안부 피해자의 처지와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한 시민의 공분에 힘입었을 것이다. 마침 박근혜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의 의사를 묻는 대신, 일본과의 정치적·외교적 흥정을 통해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는 사실도 <귀향>에 대한 성원의 배경이다. 많은 관객들은 “영화는 재밌으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재미를 느끼기 위해서라도 영화는 먼저 시대와 만나야 한다. 이 시대의 관객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에 분노하는가. 영화엔 영화 이상의 무엇이 담겨 있다. 그걸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로 표현해도 무리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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