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끔하게 내려오시라

2016.11.21 20:59 입력 2016.11.21 21:01 수정
황재옥 | 평화협력원 부원장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 힐러리 클린턴의 꿈은 백인 남성들의 이해를 대변한 도널드 트럼프에 의해 좌절됐다. 클린턴은 고별사에서 여성이 ‘유리천장’을 깨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한탄하면서 장차 미국 소녀들 중에서 여성 대통령이 꼭 나오기를 바란다는 비원을 전했다.

[세상읽기]깔끔하게 내려오시라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도 나오기 힘든 여성 대통령이 4년 전 한국에서 나왔다. 유교의 영향으로 가부장적 색채가 짙고, 남성 중심적인 나라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 당시 필자는 여성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한국의 민주주의가 대단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는 무슨 힘으로 대통령이 됐을까. 무엇보다 대통령이었던 아버지의 후광과 영남 지역주의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인구의 절반인 여성들의 “우리도 한번 기 펴고 살아보자”는 표심도 여성 대통령 만들기에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임기를 못 마치고, 그것도 모양새 나쁘게 내려올 것 같다. 비선 측근들이 국정을 농단하도록 방치했고, 일부 사안에 대해서는 공모 혐의까지 받고 있다. 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공범’ ‘피의자’로까지 규정했다. 국정농단과 비리에 대해서는 장차 법적 조치가 따를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 대신 통일·외교·안보 분야의 과오에 대해 짚으려 한다. 박 대통령이 하루라도 빨리 내려와야 한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2014년 1월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을 외쳤고, 작년 7월에는 “내년에라도 통일될 수 있다”는 말까지 했다. 북한 붕괴를 믿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들인데, 최근 그 발원지가 최순실이라는 비선 측근이었다고 알려졌다. 대통령이 ‘주술적’ 예언에 근거해 외교·안보정책을 펴다니? 이건 국정농단을 넘어 국가안위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다. 금년 들어 숨 가쁘게 전개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등 일련의 결정들이 북한 붕괴를 앞당기려는 조치였다는 해석이 나왔다. 북핵 문제에 대해 대화·협상 대신 압박·제재로 일관한 것도 북한붕괴론에 뿌리를 둔 것이었다면 “이게 나라냐”라는 탄식밖에 안 나온다.

사드 배치를 전격 발표해서 국론분열과 국익훼손을 자초한 것도 그렇지만, 작년 말 일본에만 유리한 일본군 위안부 합의도 뭔가에 들씌워지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결과였다. 최근 대통령의 리더십이 붕괴된 상황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서두르는 것도 앞으로 국익을 해칠 것이다. 요컨대 임기 동안 박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관련 결단들은 결과적으로 나라를 절단 낼 가능성이 크다. 하루속히 시정돼야 한다. 그중에서도 전시작전권 환수 무기 연기는 최대 최악의 과오다.

요즘 박 대통령은 해외 언론의 만평을 장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희화화한 만평들을 보면서 부끄럽다 못해 슬프기까지 하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23년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이 불참했다. 박 대통령 자신이 대외적으로도 발언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는 걸 실토한 것이다. ‘피의자’라서 다음달 한·중·일 정상회의에도 결국 못 갈 것이다. 이쯤 됐으면 대통령은 모양새가 더 나빠지기 전에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지지자들마저 자괴감에 빠지게 만든 사람이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운운하면서 버틴단 말인가. 설사 법적으로 버틴다 할지라도 박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이미 식물 대통령이 되었다.

박 대통령은 여성들이 그나마 얼굴이라도 들고 살 수 있도록 깔끔하게 내려와야 한다. 그리고 우리 소녀들이 꿈을 잃지 않도록 고별사에 이런 말을 보태주기 바란다. “소녀들이여, 그대들은 꿈을 갖고 모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소중하고 파워풀한 존재다.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립적이고 유능한 사람들이 돼라. 그리하여 여러분 중에서 성공한 여성 대통령이 꼭 나와주기 바란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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