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폐 청산, 많을수록 좋다

2016.11.11 20:55 입력 2016.11.11 20:57 수정

2016년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의 적폐가 경제 활력의 걸림돌”이란 점을 인식하고 “부정부패 척결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책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갉아먹는 적폐나 부패를 척결해야 좋다는 말이다.

[세상읽기]적폐 청산,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사실들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 패밀리 자체가 적폐 내지 부정부패의 몸통이었음을 말해 준다. 삼성 재벌만 해도 최순실·정유라씨의 ‘독일 승마’에 수십억원을 지원했다. 마사회와 승마협회는 정씨가 고교 생활과 이화여대 입학에 특혜를 받게 도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김한수 행정관 등을 비롯한 최순실 사단이 2012년 대선 전부터 사이버미디어팀으로 활동했고, 박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로 들어가 댓글부대 및 사찰활동을 펼친 점이다. ‘일베’의 분신이 청와대 안에 있었다니 충격이다.

2015년에 설립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무려 53개 기업들이 774억원을 후원했다. 이 재단들은 사실상 최씨 패밀리의 지주회사 격으로, 국내외에 각종 사업체를 거느린다. 재벌 돈을 뜯어 또 다른 재벌을 만들려 했다. 박근혜·최씨 패밀리의 퇴임 뒤 호화로운 삶을 위한 물적 토대다. 13조원 규모의 평창 동계올림픽을 틈타 5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끌어 쓰면서 대박을 터뜨리려 했다. 그를 위한 종자돈인 수백억원 재단 기금을 두고 강제 모금이냐 자발적 후원이냐 논란이 있으나, 결국은 재벌과 권력 사이의 거래요, 유착이다. “혼이 비정상인” 정치와 경제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관계였다. 윗물이 아래로 넘치는 ‘트리클 다운’은 거짓말이고, 지하수까지 다 뽑아 가는 ‘펌핑 업’이 사태의 진상이다!

그 메커니즘은 이렇다. 크게 두 가지다. 첫번째는, 박 대통령을 보좌한 대검 중수부 출신의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의 기업 비리 수사 정보를 입수한 뒤 최씨에게 전달하면 최씨 측이 그 ‘고급’ 정보를 이용, 재벌로부터 돈을 갹출했다. 둘째는, 박 대통령이 재벌 총수들과 접촉하여 미르·K스포츠재단의 후원을 요청하거나, CJ 이재현 회장의 광복절 특사처럼 ‘성은’을 베푸는 식으로 돈을 뽑았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2015년 7월 말경 재벌 총수 17명과 오찬간담회를 가진 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본무 LG 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7명과 독대했다. 그 직후 대국민담화로 “노동개혁 강력 추진”을 선언했다. 이어 전경련도 노동개혁을 주문했다. 노동자의 반발에도 새누리당은 노동개혁 법안을 발의했고, 그 뒤 미르·K스포츠 재단이 설립되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에 따르면,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이 우병우 민정수석의 명함을 보여주며 “우리를 봐주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미르재단은 삼성 등 16개 기업으로부터 설립자금 486억원을 전달받았다. K스포츠재단도 수십개 기업한테 288억원을 받았다. 돈이 입금된 뒤 박 대통령은 국회에 서비스발전법, 관광진흥법, 의료법과 노동개혁법,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처리를 주문했고 담화문으로 ‘원샷법’ 통과까지 명했다.

“조작된 공포를 이용해 유지되는 것이 곧 독재”라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은 2016년의 대한민국에 걸맞다. 이제 우리의 역사적 사명은, 독재를 물리치고 명실상부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일이다. 어떻게 세울 것인가? 박 대통령이 ‘적폐 청산’을 처음 말한 것은 2014년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직후였다. 올 초에도 “적폐가 경제의 걸림돌”이라 했다. 그러나 최근 확인된 바, 박근혜-최순실 일가가 곧 적폐였으니, 이들부터 청산해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더 이상 경제를 재벌 돈벌이가 아니라 민초 살림살이로 규정해야 한다. 검찰과 국정원이 정의의 이름으로 거듭나야 하고, 경제 민주화와 재벌 해체, 교육혁신, 복지사회 건설이 차곡차곡 추진돼야 한다. 선거제도도 바꾸어 ‘일당’ 독재가 불가능하게 해야 한다. 나라 전체가 무한정 생산·노동하고 무한 소비·소유하려는 성장 중독증에서 벗어나 소박한 공동체의 가치를 되찾아야 한다. 노동자, 농민, 여성, 청년의 피땀과 눈물을 빼앗아 소수 특권층만 독점하는 ‘펌핑 업’ 사회가 아니라, 더불어 행복한 원탁 사회를 만들 일이다. 그러기 위해선 역설적이게도 현재의 ‘국정공백’이 좀 오래갈 필요가 있다. 밀실 야합으로 인한 적폐의 청산은 많을수록 좋기 때문이다. 결국 광장의 촛불이 민주공화국의 토대요, 등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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