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함의 기준

2017.11.29 13:18 입력 2017.11.29 20:52 수정

[역사와 현실]우수함의 기준

자연재해로 일주일 연기됐던 수능시험이 국민적 관심 속에 무사히 치러졌다. 1950년 이래 이어진 사법시험도 올해로 끝났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어릴 때부터 시험을 많이 보고, 그 결과에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또 있을까?

조선시대 대다수 양반들도 거의 평생 시험에 시달렸다. 과거시험에서 신생국 조선의 엘리트들에게 요구된 우수함은 뛰어난 문장력이었다.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이것은 불가피했다. 하나는 역시 신생국이던 명나라와의 외교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역사적으로 건국 초기에 긴장의 정도가 높았고 그것은 때로 전쟁으로 이어졌다. 1950년 한국전쟁을 보면 오늘날에도 그 역사적 흐름은 단절되지 않은 것 같다.

조선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갈등을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엘리트 관료의 조건으로 한문에 대한 숙련이 필수적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했지만, 그의 시대에는 다른 어떤 때보다 중국 문물 수입도 활발했다.

당시 중국은 상대적으로 오늘날 미국 이상의 선진국이었다. 빛나는 세종시대는 이런 엘리트들이 만들었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건국 후 100년이 가까워지면서 일부 지식인들이 우수함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기준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건국 초 조선이 처했던 조건이 변한 때문이다. 명나라와의 외교관계가 안정되었고, 그사이에 조선 문물도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또한 지식인 집단 자체에도 변화가 있었다. 지식인 집단의 규모가 크게 늘었던 것이다. 그 결과 관료가 되는 지식인들의 수는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과거에 붙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누던 우수함의 경계선이 흐려졌다. 이런 조건 변화가 하나의 의문을 만들어냈다. ‘학문이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가 그것이다. 그들에게 학문은 이제 단순한 문장력 증진이 아닌, 자기 삶을 이끄는 ‘실천적’인 것이어야 했다. 글의 ‘표현’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게 되었다.

학문의 목표가 바뀌자 우수함의 사회적 기준도 따라서 바뀌었다. 그 결과 우수한 인물상에 큰 변화가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황과 조식이다. 이황은 조선 초기 관점에서 보면 탁월한 인물이라 하기에 부족했다. 물론 문과에 붙었으니 공부를 못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34살이라는 이르지 않은 나이에야 합격했다. 한 술 더 떠서 조식은 문과는커녕 생원시나 진사시에도 합격하지 못했다. 계속 낙방하다가 30대 중반이 지나서 포기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이 두 사람을 조선 성리학을 이론적·실천적으로 완성시킨 위대한 스승으로 기억한다.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학문적 지향 변화로 빚어진 결과이다.

과거제도는 태생적으로 중앙집권제, 즉 관료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국가 운영을 위한 관리 공급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이다. 동시대 다른 나라에 비해서 과거제도가 갖는 탁월함은 분명하다. 그것은 학문 발전을 촉진했고, 인문적 사회환경을 조성하는 토대였다. 하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시험용의 표준화된 지식과 문제풀이식 학습, 창의성보다는 암기력이 중시되는 형태를 띠었다. 우리나 중국이나 마찬가지였다. 흥미롭게도 위대한 당나라 시인 두보도 끝내 과거에 합격하지 못했다.

하나의 공동체를 운영하려면 피할 수 없는 철학적 물음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개인이 가진 어떤 특성을 우수함의 지표로 해야 할까’ 같은 물음이다. 교육은 그런 ‘우수함’을 촉진하는 노력이고, 시험은 그런 ‘우수함’을 검증하는 수단이다. 그 검증 결과에 따라 사회 각 부문으로 ‘엘리트’가 배분된다. 때문에 우수함에 대한 부적절한 규정은 결국 사회 발전에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 역시 암묵적으로 우수함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해외유학이나 고시 출신, ‘KS’나 ‘SKY’ 출신(‘출신’이라는 말도 과거시험 합격자를 부르던 말이다) 같은 것이 그런 것들이다. 하지만 이제 그런 기준들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 의문을 처음 제기한 것은 흥미롭게도 대기업 집단처럼 보인다. 아마도 한국에서 가장 국제화되었기 때문이리라. 오랫동안 그들은 기성의 지식을 빨리 배워서 써먹는 방식으로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어디 기업에만 해당하는 말일까.

이제 필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아닌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하는 능력, 정의하기 어려운 혼란스러운 상황을 문제 형식으로 만들어내는 능력,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수많은 기성 지식 중 무엇이 필요한지 파악하는 능력, 그런 지식들을 재구성하고 발전시켜 문제 해결의 방법을 도출하는 능력 같은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가능하려면 한 가지 전제를 충족해야 한다. 기성의 지식과 믿음을 붙들고 있는 권위와 권력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한국 사회가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여기에 커다란 세대 간 갈등의 가능성이 잠재해 있다. 실제로 조선도 겪었던 일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