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연대’라는 보험

익숙한 고독이 자리 잡는 새벽,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보려던 영화로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선택한 것은 크나큰 실수였다.

영화는 비극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다니엘은 심장병으로 인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질병 수당을 신청하지만 자신의 병세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해 수급 대상에서 제외된다. 당장의 생활비가 급하기에 구직 수당을 신청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 못하는 탓에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고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몸을 이끌고 구직 활동을 증명하는 일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결국 그는 질병 수당 재심사 소송을 앞두고 심장병으로 쓰러진다.

[NGO 발언대]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연대’라는 보험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을 울었다. 익숙한 결핍과 죽음이었다. 지하 월세방에 살던 송파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선택했던 일, 그리고 대학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전남 저수지로 뛰어든 두 모녀의 일과도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관료적인 복지 시스템은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하는 순간 가장 폭력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복지가 비어 있는 자리에 찾아온 것은 결국 사람이었다. 컴퓨터를 다룰 수 없을 때 옆집 청년은 다니엘을 도왔고, 그는 당장의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미혼모 가정을 보자마자 주저없이 식료품 지원소로 데려갔다. 그 어떤 복지도 지켜내지 못한 인간의 존엄성을 마침내 사람이 지켜낸 순간이었다. 복지는 제 발로 어려운 사람을 향해 찾아가지 않는다. 사회적 약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는 이는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연대하며 환대할 줄 아는 사람뿐이다.

그런데 요즘은 연대의 경험을 어디서 쌓아나갈 수 있는 걸까. 또 서로 환대하는 문화를 어디서 배워나갈 수 있는 걸까. 혼자이길 자처하는 이들이 부쩍 늘고 혼자 밥을 먹거나 문화생활을 즐기는 ‘1코노미’의 시대가 열렸다. 이를 뒷받침하듯 서점 진열대에는 고독에 대한 예찬과 조직 안에서 지친 이들을 응원하는 글로 가득하다. 혹자는 이러한 경향을 공동체의 붕괴라며 우려하기도 하지만 이는 존중과 배려가 없는 공동체가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에 불과하다. 인권과 다양성의 측면에서 평등과 존중을 받고 타인을 대해본 경험이 축적되어야 우리는 관계안전망을 만들어낼 수 있다. 모든 안전망은 관계가 시작이다.

때로 혼자는 불안하다. 갑자기 큰 사고가 일어나면 어쩌나 싶다. 그때마다 국가의 복지 시스템으로부터 모든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 당장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곁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수입이 불안정할 노후를 위해 연금보험은 물론이거니와 질병과 화재사고, 교통사고에 대비해 각종 보험을 가입하는 일에 익숙해져왔다.

그런 당신을 위해 오늘은 그간 알고 있던 색다른 보험을 추천할까 한다. 돈보다 관계의 가치를 우선하고 싶다면 더욱 그렇다. 부당노동행위로 피해를 입었을 때는 노동조합을, 높은 보증금과 월세로 걱정이 될 때면 주택협동조합을, 어쩔 수 없이 대출이 필요할 때면 대안은행을, 과잉진료를 피해 건강을 챙기고 싶을 때면 의료협동조합에 가입을 해볼 것. 내가 바꿔내고 싶은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에 후원할 것을. 단언컨대 이것이 그 어떤 보험보다도 확실하게 내 삶을 보장하는 일이며 가장 쉽게 세상을 바꾸는 일이라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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