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진정 계약직의 눈물을 알았다면

2019.08.04 20:44 입력 2019.08.04 20:46 수정

2018년 11월9일, 김성태 의원은 노동조합의 고용 세습을 근절하자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당시 서울교통공사 노동조합의 고용 세습 논란이 있었고 그가 제안한 법안은 노동조합원의 친·인척을 우선 채용하는 것을 금지하자는 내용이었다. 고용의 ‘민주성’과 ‘공정성’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법안 발의 동기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동 발의자 110인 중에는 현재 강원랜드 채용 비리로 수사를 받은 권성동 의원도 있다.

[NGO 발언대]김성태, 진정 계약직의 눈물을 알았다면

그리고 2019년 7월30일, 김성태 의원은 KT 채용 비리와 관련한 기자회견장에서 ‘딸에게 파견 계약직을 권하는 아버지가 몇이나 있냐’며 부정(父情)을 호소했지만 채용 청탁은 부정(否定)하기에 이른다.

채용 비리의 사실 여하를 떠나 직접 파견 계약직으로 1년이 넘는 시간을 지내보니 알겠다. 나는 한 사업장에서 2년 이상 파견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것은 불법이기에 파견업체와 원청이 자행하는 비겁한 수법에 지쳐버리고 말았다. 사용자는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의 짧은 계약기간을 이용해 노동자에게 압박을 가한다. 계약 연장을 위해서는 직장 공동체에 어떻게든 적응해 살아남거나 성과를 내기 위해 스스로를 소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 만료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고용 불안정성을 알고 있는 아버지라면 누구도 딸에게 파견 계약직을 권할 수는 없을 테다.

고용 불안정성은 노동 불안정성과 직결된다.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 확대, 선택근로제의 정산기간 확대, 재량근로제의 대상 업무 확대 등 유연근로제는 노동자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나 탄력근무제의 단위기간 확대는 김성태 의원이 강력하게 요구하던 것 중 하나다. 이는 노조와의 서면 합의를 통해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데, 노조에 가입할 수 없는 파견 계약직의 경우 사용자가 요구하는 장시간 노동을 거부할 권리조차 없다. 주 52시간 노동이 무용해진 일터에서 노동자의 건강권을 지켜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일로 하루 전체가 소진되는 청년들에게 주어진 법정 노동시간 상한제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다.

더군다나 임금 보전까지 어렵게 하는 법안들이 국회의 협상 테이블에 올라 있다. 지역·업종·규모·연령에 따라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자, 주휴수당을 폐지하자는 말들이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

결국 김성태라는 아버지의 이름은 부정(父情)이 아니라 이 사회의 민주성과 공정성을 부정(否定)하는 것에 지나지 않고 말았다. 김성태는 누가 자기 딸에게 파견 계약직 일자리를 권할 수 있느냐고 물을 자격이 없다. 자기 딸이 파견 계약직으로 일하는 줄 몰랐다며 눈가를 적실 줄 아는 아버지라면 그랬으면 안됐다. 그가 채용 청탁을 위해 이용한 지위와 권력은 자기 자식이 아닌 파견 계약직의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 써야 했다.

김성태와 권성동이 지위와 권력을 남용해 얻은 일자리는 비교적 안전한 배에 올라타 삶을 항해할 수 있는 승선권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 밖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를 태운 자그마한 쪽배는 해면에서 불쑥 솟아오르는 노동악법이라는 암초 어딘가에 부딪힐지 모르는 채 저 드넓은 바다에서 표류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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