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 앤 시니컬과 영혼 지키기

2018.10.29 20:49 입력 2018.10.29 20:50 수정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의 서문 ‘그림자를 판 사나이’에는 그림자와 영혼에 관한 여러 가지 우화가 등장한다. 그림자는 사람을 사람처럼 보이게 해주는 것이며 영혼은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것이다. 개중 나의 시선을 오래 머물게 만든 구절이 있었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직설]위트 앤 시니컬과 영혼 지키기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는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떠올렸다. 시를 읽고 쓰는 사람으로서, 위트 앤 시니컬은 나에게 장소를 갖게 만들어주었다. 처음 서점에 발을 들이던 순간, 나는 그 공간이 나를 우호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느꼈다. 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껴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시집을 사고파는 서점을 넘어서, 책을 마주할 수 있는 경험, 낭독의 즐거움과 독서의 기쁨을 얻는 장소였다. 무엇보다 시를 읽음으로써 무용한 것이 얼마나 반짝일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었다.

위트 앤 시니컬이 문을 닫는다. 2016년 여름에 문을 연 이래, 시간이 날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집에서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하는 거리였지만, 기꺼이 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찾을 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실감했다. 시집을 사지 않더라도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이 좋았다. 시집들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좋았다. 사람들이 서가 앞에 서서 책장을 조심스레 넘기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우연히 동료 시인들을 만나면 반가움을 감출 수 없었다. 어쩌다 내 시집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뛰었다.

돌이켜보면 위트 앤 시니컬은 손님이라기보다는 독자, 아니 친구를 만나는 곳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곳에서 자신이 사람이라고, 그 장소에 속해 있다고, 비로소 환대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소비 이상의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은 중요하다. 장소를 채우는 것은 기둥과 테이블, 의자, 책 등의 물질이지만 비가시적인 것들이 ‘순간’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시집을 고를 때 떨리는 손끝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매번 각자의 그림자를 끌고 와서 영혼이 충만해져서 돌아갔다.

위트 앤 시니컬이 다시 문을 연다. 신촌 생활이 끝나고 혜화동 생활의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소식을 접하고 난 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끝과 시작’이 문득 떠올랐다. 시의 끝부분을 다시 읽는다. “원인과 결과가 고루 덮인 이 풀밭 위에서/ 누군가는 자리 깔고 벌렁 드러누워 이삭을 입에 문 채/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아야만 하리.” 물끄러미 구름을 바라보는 누군가 때문에 끝은 마침내 시작의 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 구름이 흘러가고 나면, 다음 시가 쓰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 시를 읽고 난 후의 나는 그것을 읽기 전의 나와 달라져 있었다. 그것을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 쓸 수는 없을 것이다. 이력서나 자기소개서에는 내가 나임을 증명할 그림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을 더욱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영혼이다. 위트 앤 시니컬이 어딘가에서 계속 운영된다는 것은 내게 영혼을 위로할 장소가 ‘아직’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장소에서 나는 그림자뿐만 아니라 영혼을 지닌 사람임을 재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장소가 주는 환대를 넘어 내가 나 자신을 환대할 수 있을 것이다.

때마침 시인 허연 형의 문자를 받았다. 형은 문자 메시지의 마지막에 늘 다음의 말을 덧붙인다. “바빠도 영혼 잘 지키고.” 영혼을 지키기 위해 나는 위트 앤 시니컬에 간다. 공사가 한창인 혜화동 현장에는 다음과 같은 배너가 걸려 있다. “1953년에 설립된 동양서림이 백년의 역사를 가진 서점을 꿈꾸며 새로운 모습을 준비합니다. 시집서점 위트 앤 시니컬과 함께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적어도 앞으로 30년 이상, 나는 영혼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백년이라니, 말만 들어도 벅차다. 이는 단순히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거기 있다고 해서 절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다. 장소가, 환대가, 무엇보다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끝이 그저 끝이 아니기 위한 노력, 끝끝내 끝을 시작으로 이어 붙이는 마음이 이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다시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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