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관종이 되자

2019.07.03 20:43 입력 2019.07.03 20:46 수정

“‘관종(관심 종자)’이세요?” 누가 대뜸 당신에게 묻는다고 상상해보자. 기분이 어떨지. 많은 경우, 모욕받았다고 생각하며 얼굴 붉히지 않을까? 관심 끄는 일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나머지, 염치도 수치심도 없는 행위로 사회적 해악을 끼친 이들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겪었다. 사탄도 실직시킬 정도로 못된 소리 한다든지, 범죄에 가까운 행위를 한 뒤 ‘인증’한다든지, 거짓말로 왜곡된 상황을 온라인 게시판에 올려 애먼 사람 욕먹게 만든다든지 등등.

[직설]착한 관종이 되자

하지만 그들만이 관종일까? 요즘 들어 나는 관종을 타자화할 수 없게 됐다. 무언가를 창작하고 ‘발표’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관종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고, 가치관에 동조받고 싶고, 감정에 공감받고 싶다는 욕망은 강력한 창작의 동기이다. 과정에서의 고통과 번거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그 결과물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닿고, 감흥 주었음을 확인하는 순간은 짜릿해! 늘 새로워! ‘좋아요’가 최고야!

관심은 비단 기분의 문제만이 아니다. 경제문제이기도 하다. 과거에 희귀하게 빛나는 스타들이 독식했던 자원을 이제는 작은 별들이 잘게 쪼개어 나눠 갖는 시대가 됐다. 관심의 크기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소셜미디어의 팔로어 숫자다. 마케터들은 별들에게 팔로어 규모에 비례하는 돈을 주고 광고를 의뢰한다. 이들은 창작물의 조회수가 곧 돈이 되는 플랫폼에서도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설령 즉각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관심은 여전히 중요하다. 일단 관심을 받아야 무슨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라도 생기기 때문이다. 취직? 인사 담당자의 관심이 필요하다. 연애? 가까워지고 싶은 대상의 관심이 필요하다. 해결을 위해 시민들의 관심이 필요한 사회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간은 한정돼 있다. 관심도 마찬가지다. 관심을 얻기 위해서는 의식적이든 아니든, 일종의 경쟁을 거칠 수밖에 없다. 많은 경우 기획력과 창의성을 갖춘 이들이 유리하다. 적확하게 표현하고 삼키기 쉽게 이야기를 구성하는 능력도 큰 도움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결과물이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면, 그리고 운이 따라준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즉 문화 자본을 쌓은 관종이 주목받기 쉽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교육 환경을 제공받지 못해서, 혹은 생계에 쫓겨서, 시간이 없어서 예술적 경험과 감각을 쌓을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은 좌절과 무기력에 빠지기 쉽다. 한 친구는 세상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고 자신은 엑스트라에 불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소외된 사람들은 결국 (비극적으로) 죽고 나서야 관심받는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

좌절하지 않고 콘텐츠 생산자가 되는데, 그게 하필 혐오 콘텐츠가 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이 함께 욕해줄 것이 분명한 ‘만만한 대상’에 대한 익숙한 혐오를 험한 말로 재생산하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런 식으로 혐오로 뭉친 집단의 재간둥이가 되어 관심과 인정을 받고 큰 수익까지 거둔 사례가 숱하게 남아 있다.

이런 사례가 한국 사회에서 양산되는 일을 그만 보기 위해, 당장 생각나는 방법은 플랫폼 업체를 압박하고 규제하는 일이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으로는 관심받고 싶은 욕망을 건강한 방식으로 해소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관심이라는 자원이 더 작고 다양한 것들에까지 미치도록 사회적 조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자리’에 초점을 맞춘 청년 정책뿐만 아니라, 문화적 격차로 인한 사회 갈등을 완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섬세한 제도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사회적 인식도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의 ‘관종’이라는 용어 사용은 관심을 바라는 모든 행위를 부정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러니까 자꾸 솔직하지 못하게 ‘나는 관심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 막상 관심 안 주면 수동공격하며 칭얼대는 피곤한 녀석들이 나오는 것 아닐까. 차라리 솔직해지자. 나는 관종이다. 다만 관심받고 싶어 벌인 일이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선사하고, 새로운 생각의 물꼬를 틔우는 등의 효용이 있기를 바란다. 그것에 성공한다면, 여러분들은 ‘좋아요’를 아끼지 말아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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