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 돌’과 인간관계

2019.10.29 20:45

[정희진의 낯선 사이]‘리얼 돌’과 인간관계

인간이 만든 도구는 삶의 조건을 변화시킨다. 문명의 ‘발달’을 “장점도 있고 부작용도 있다”는 양비론으로 접근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특히 인간과 비슷한 물건들, ‘포스트 휴먼’은 논쟁거리다. 글자 그대로 죽부인(竹夫人), 인형(人形)에서부터 인공지능, 온라인에서 사용하는 아이디(ID), 휴대전화가 대표적이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리얼 돌’과 인간관계

지금은 불특정 다수에 의한 악플이 문제지만, 1990년대 PC통신 시절 처음 등장한 ‘온라인 성폭력’은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1 대 1 채팅방에서 여중생이 성인 남성 사용자의 성적 비하 표현에 충격을 받아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남성은 인터넷 ID와 사법적 개인은 별개의 존재라며 무죄를 주장했다. 실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몸이 아니라’ 아이디로 활동하게 되면서 인터넷에서의 ‘나’와 현실의 ‘나’는 같은가, 일부인가, 아니, 진정한 자아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논쟁이 일었다.

하지만 쟁점은 진짜 자아 여부가 아니다. 현실이든 가상현실이든, 언설의 전제와 효과가 문제다. 인형은 어떨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리얼 돌(real doll)은 처음부터 남성을 위한 섹스 대용품으로 만들어졌다. 미국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리얼 돌은 실제 사람(여성) 크기에 골격과 관절도 있고 살은 실리콘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리얼 돌의 판매 여부를 놓고 “강간 인형이다” “무역권 침해” “인형일 뿐” 등 여론이 다양하다. 분명한 사실은 미국에서 흑인 바비 인형과 백인 인형의 가격 차이 사례처럼, 인형은 단지 인형일 수 없다. 장애 여성이나 특정 인종을 연상케 하는 섹스 돌이 있다고 생각해보라.

리얼 돌을 당연시하는 일부 남성들의 불만은 대단해서, “대한민국 남성은 야동도 못 보고, 성매매도 못하고, 여성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 되었다. 최소한의 남성 인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치고 있다. 대안신당(가칭)의 이용주 의원은 리얼 돌을 직접 국감장에 들고 나와, 관련 산업의 육성을 주장했다(검경은 이 의원의 성폭력특별법 위반 여부를 수사해야 한다).

여성용 리얼 돌은 왜 남성용만큼 대중화 요구가 없을까. 주변 여성들에게 물어보니, 남성의 외양을 한 리얼 돌이 집에 있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고 무서울 것 같다고 한다. 관리와 씻기기(?)도 보통 일이 아닐 것 같다. 의과대학 실험실의 인체 모형으로 느껴진다는 여성도 있었다. ‘바바리맨’처럼 여성에게 남성의 신체는 불쾌감과 폭력으로 인식되는데, 남성은 왜 ‘스트립쇼’ 업소에서 비용을 내며 여성의 몸을 소비하는가. 리얼 돌 판매 허가에 앞서 이 문제가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예로부터 죽부인(竹夫人)은 있어도, 여성이 안고 자는 죽부인(竹婦人)은 없다. 죽부인도 죽궤(竹?)라는 ‘물건’ 용어로 대체된다. 문제는 남성에게는 여성의 성이 필요하다는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다. 그래서 성매매는 “필요악”이라는 모순어가 당연시되고 성매매, 포르노 산업, 리얼 돌이 성폭력 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발상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남성의 성욕은 억제할 수 없는 본능”이라는 편견을 강화시키고 성폭력 발생률을 더욱 높일 뿐이다. 성산업은 성폭력 예방책이 아니라 기폭제다. 남성의 ‘억제할 수 없는 성욕’은 통념이지, 사실이 아니다. 남성 문화의 주장대로 성욕이 배변과 같은 생물학적 요구라면, 비아그라가 왜 남용되겠는가. 오히려 억제제를 개발해야 하지 않을까.

장애 남성의 성 구매론은 언제나 논쟁거리다. 장애 남성과 비장애 남성의 평등이 성 구매를 통해 가능하다는 주장은 끝이 없다. 일단, 여성 장애인은 이런 요구를 하지 않는다. 1990년대 네덜란드에서는 실제로 ‘대리 연인 제도’가 있었다. 국가에서 여성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남성 장애인을 방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장애 남성 스스로의 제안에 의해 폐지되었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삽입 섹스라기보다는 친밀감과 정서적 유대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은 타인과의 교류로만 가능하다. 성욕은 발작(충동)이 아니라 생각과 감정의 작용이기 때문이다. 실제 성매매 현장에서도 남성들이 추구하는 것은 여성의 몸을 구매하고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이지, 삽입 그 자체가 아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신간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에서, 이를 “친밀성에 대한 남성의 공포”라고 지적한다. 직업윤리가 있으므로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사랑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과의 친밀감, 성적 유대가 싫은 이들은 드물 것이다. 신뢰에 기반한 친밀감은 쉽게 도달할 수 있는 사회성이 아니다. 연애를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가 얼마나 힘든지.

성적 관계는 상대방에 대한 모색, 존중, 협상, 기꺼운 감정노동, 성의의 산물이다. 성산업과 리얼 돌은 이 과정을 생략하는 폭력 제도다. 행복권은 천부 인권이 아니다. 인간에겐 행복을 위해 노력할 권리가 있을 뿐이다. 섹스가 행복한 시간이기 위해서,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기 위해서는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가는 지난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리얼 돌 논란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관계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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