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

2019.11.18 20:52 입력 2019.11.18 20:54 수정

오래 내리지 않는 가을비를 가지고, 잔걱정은 가을비처럼 금방 지나간다며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는 속담을 말합니다. 가을비란 워낙 성기게 내리니 성긴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앞날이 비 쏟아질 듯 어둡고 눈에서 비가 내리지만 몇날며칠 뒤 어찌어찌 해결하고 보면 별일 아닌 것도 꽤 됩니다. 그러니 해묵도록 근심할 일 아니면 그리 너무 속 태우지 말라며 노심초사하는 이에게 이 속담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비를 긋는 데가 왜 하필 장인어른에, 수염도 아닌 구레나룻 밑이었을까요? 장인어른과 사위가 나란히 선 상태에서 사위가 장인 구레나룻 밑에 비를 피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네, 맞습니다. 장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야 상투부터 윗머리까지 장인의 턱과 구레나룻으로 비를 가릴 수 있습니다. 즉 사위가 처가에 잠시 기댄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이 속담은 잠깐의 어려움은 처가 도움을 받더라도 흉이 되지 않는다는 뜻도 가집니다. 처가에만큼은 약한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아 가장으로서 죽을힘 다해 홀로 난관을 뚫습니다. 그러자니 옆에서 말소리가 들립니다. “혼자 그리 애쓰다 몸 상하네.” 돌아다보니 장인어른이 서 계십니다. 얼떨해 있는 사위 손을 부여잡고 엽전꾸러미 묵직하게 얹어줍니다. “가을비는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하는 법이네. 사위도 자식일세. 잠깐 좀 기댄다고 뭔 흉이 되겠는가. 잘 털고 일어나면 그때 갚게.”

이순신 장군도 처가살이하며 경제적으로 장인에게 의지했고, 심지어 재수까지 했습니다. 장인과 사위는 서먹하니 참 어려운 사이지만 같은 남자로서, 또 같은 가장이라서 동지 의식이란 게 있습니다. 죽으려면 혼자 죽어야 할 만큼 심각하지 않다면 처가의 어깨에 잠깐 기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고통에 눈시울을 적시면 처가댁에는 가을장마가 질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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