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처, 먼저 움직이는 ‘큰손’들

2019.12.19 20:49 입력 2019.12.19 20:57 수정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8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하러 가기 위해 배에 오르고 있다. 툰베리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배를 이용했다.  AP연합뉴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지난 8월 스페인에서 열리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 참석하러 가기 위해 배에 오르고 있다. 툰베리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 배를 이용했다. AP연합뉴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된 25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가 15일 폐막했다. 예정보다 이틀 길어진 일정이었지만 성과는 없었다.

이번 당사국총회의 목표는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의 이행에 필요한 17개 이행규칙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개도국과 선진국의 서로 다른 이해관계는 끝끝내 평행선을 유지했고 이행규칙 합의는 또다시 내년으로 미뤄졌다. 기후변화는 그사이 더욱 위기를 향해 치달을 테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그만큼 더 줄어있을 것이다. 16세의 환경운동가 툰베리가 지난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서늘한 얼굴로 뱉었던 문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세상에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How dare you!)”

[제현주의 굿 비즈니스, 굿 머니]기후위기 대처, 먼저 움직이는 ‘큰손’들

기후변화의 경고등이 켜지고 그 경고등을 ‘국제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25년보다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2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지구정상회의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었을 때, 기후변화의 위기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럼에도 그 위기가 가져올 위험의 크기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사실이 협약을 이끌어냈다. 협약은 한국을 포함한 197개국이 참여해 1994년에 발효되었고 그 다음해인 1995년부터 협약에 참여한 당사국이 모이는 총회가 열리기 시작해 올해가 25년째였다.

25년의 시간이 무색하게 진전은 부끄러운 수준이다. 그사이 기후위기의 현실성은 더 이상의 과학적 증거가 필요치 않을 만큼 충분해졌고 경고등은 점점 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전 세계 탄소배출량은 놀랍게도 여전히 증가세에 있다. 올해 탄소배출량은 파리협정이 체결된 2015년보다 오히려 4% 늘었다. 지루하게 이어진 총회에서 ‘야심(ambition)’이라는 단어가 숱하게 등장했다고 한다. 현상유지는 대안이 아니며, 조금 나아지는 것으로 턱도 없다. 야심찬 목표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협정에서 말한 2100년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매년 탄소배출량을 7.6% 감축해야 한다. 지금 같은 추세라면 지구 기온 상승폭은 1.5도는커녕 3도를 훌쩍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야심을 들먹인 것이 민망하게도 논의는 수포로 돌아가고, 당사국총회가 과연 기후위기를 막을 협의체로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골드만삭스라는 이름이 등장했다. 예기치 않은 이름의 예기치 않은 등장이다. 골드만삭스는 자본시장과 멀찍이 떨어진 일을 하는 사람이라도 모두 들어봤을 법한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 16일 공식 성명을 통해 기후변화와 환경파괴 우려가 높은 사업에 대해 금융 제공을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북극 유전 개발이나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 온 알래스카 국립야생보호구역 개발 사업 등에 금융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발전용 석탄 채광과 화력발전소 건설 사업도 금융 제공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기후변화 대응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 등 포용적 성장을 위한 사업에 향후 10년간 7500억달러(약 880조원)를 투입하겠다는 소식도 더해졌다. 골드만삭스의 이 같은 선언이 전혀 뜬금없는 변신은 아니다. 골드만삭스의 홈페이지에는 ‘지속 가능 금융’이라는 타이틀 아래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 있다. “골드만삭스는 기후변화가 실재하는 현상이며 인류의 활동이 지구 대기 내 온실가스 집적을 높이는 원인이라는 과학계의 합의를 인지하고 있다. 우리는 기후변화가 21세기의 가장 심원한 환경적 난제라고 믿는다. 기후변화 대처가 늦어질수록 인류가, 그리고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이 커질 것이다. 우리는 정부와 기업, 소비자와 시민사회가 긴급히 행동을 취해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해야 한다고 믿는다.” 강조해 두자.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말이다, 환경운동단체가 아니라.

이어지는 문장은 이렇다. “자본의 제공자와 사용자를 연결하는 기관으로서 우리는 자본시장이 기후변화 및 그 밖의 환경적 난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골드만삭스의 선언이 있고 하루가 지나 미국의 매체 ‘디 애틀랜틱’은 “가장 도움이 될 법한 실마리를 찾으려면 기후총회가 열린 마드리드가 아니라 골드만삭스가 있는 뉴욕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게 낫겠다. 이곳에서 기후 대응을 위한 새로운 종류의 글로벌 거버넌스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 새로운 글로벌 거버넌스에 골드만삭스의 이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사국총회가 열리고 있던 지난 9일, UBS자산운용과 캘리포니아연기금(CalPERS)을 포함하는 630곳의 투자기관이 뜻을 모아 각국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행동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이 움직이는 자산은 총 37조달러, 우리 돈으로 4경원이다.

‘유니버설 오너(universal owner)’라는 개념이 있다.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일에 영향을 받고 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규모의 자산을 움직이는 기관을 일컫는 말이다. 그럴 법한 규모를 딱 잘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100조원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면 이론의 여지 없이 유니버설 오너다. 당연히 자연 환경의 리스크로부터도 도망칠 여지가 없으며, 환경적 차원의 지속 가능성은 금융시장의 지속 가능성과 떨어져 있지 않다. 이들이 움직이는 이유는 그래야만 자신들이 관리하는 돈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민연금은 700조원이 넘는 자산을 운용하고 삼성생명의 자산은 300조원에 육박한다. 630곳 기관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한국의 투자기관은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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