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의 트럼프와 10대의 툰베리

2020.02.07 20:25 입력 2020.02.07 20:28 수정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70대 노인과 10대 청소년. 이들은 2019년 9월 미국 뉴욕의 어색한 첫 만남 이후 2020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또 만났다. 이들의 입장을 재구성해보자. 트럼프가 툰베리에게 말한다.

“잘 알겠네. 우리도 나무 1조 그루 심기에 동참하겠네.”

“아니, 나무 심기로는 불충분해요.” 툰베리가 쏘아댔다.

[세상읽기]70대의 트럼프와 10대의 툰베리

“지금은 비관이 아니라 낙관할 때란다. 비관론을 퍼뜨리는 예언자나 대재앙에 대한 예언을 거부해야 돼.” 기후위기에 놓인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가 소리를 높였다.

“나무만 심어선 안 되고,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멈춰야 해요. 우리들 집(지구)이 불타고 있는데, 당신들의 무대책이 불난 집에 부채질이나 하잖아욧!” 툰베리가 기후위기에 진지하게 대처하라며 목청을 높였다.

트럼프와 툰베리는 몇몇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단순히 나이 차이나 세대 차이 문제가 아닌 셈이다.

첫째, 트럼프의 문제의식과 툰베리의 문제의식은 깊이에서 차이가 크다. 트럼프의 문제의식은 무엇인가? 뭐~? 지구온난화, 기후위기? 하도 떠들어대니 좀 귀찮지만 뭔가 시늉은 해야겠다, 이런 식! 2020년 다보스포럼에서 ‘나무 1조 그루 심기’ 제안이 나왔으니 동참하면 크게 손해 볼 것도 없지 않나, 하는 계산. 그러나 툰베리의 문제의식은 다르다. 최근 남한보다 큰 면적을 태우고 캥거루와 코알라 10억마리의 터전을 앗아간 호주산불 사태에서 보듯, 인류의 집인 지구에 대형 화재가 났다. 그 불을 끌 생각은 않고 왜 다들 모른 척할까? 게다가 이 기후위기를 초래한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중단해도 모자라는데, 왜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 살고 있나? 이런 생각. 70대 노인이 10대 아이에게 진지하게 배워야 한다.

둘째, 트럼프의 실천과 툰베리의 실천은 그 진정성에서 차이가 크다. 트럼프는 나무를 많이 심으면 온실가스의 주범 이산화탄소를 잘 흡수해 문제가 상당히 해소될 것이라 본다. 그래서 나무심기 실천에 동참하겠다는 것. 그러나 진정성은 없다. 진정성이 있다면, 나무심기와 동시에 온실가스 배출 중단 조치도 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 중단은 마치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입과 확산을 차단하는 조치처럼 단호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면 당장 미국 대도시의 ‘트럼프 빌딩’부터 문 닫아야 한다. 아니, 미국 전체, 나아가 자본주의 세계가 멈춰야 할 것이다. 실은 그렇게 해도 이미 때늦은 감이 있다. 반면, 툰베리의 실천엔 진정성이 있다. 초등 시절에 지구온난화 문제를 배운 뒤, 집이나 학교에서 나름 실천하려고 애썼다. 주변에 진정성 있게 반응하는 이가 없자 말문을 닫기도 했다. 미국 뉴욕에 초청되어 갈 때도 비행기 대신 요트로 4800㎞를 건넜다. 그의 진정성을 일찍 알아본 세계의 청소년들이 툰베리와 함께 행동한다. 구미 각국의 정치경제 지도자들이 가진 위선적 태도까지 날카롭게 비판한다.

셋째, 이러한 트럼프와 툰베리의 의식과 실천에 큰 차이가 생긴 근거는 뭘까? 나는 그 기저에 흐르는 세계관에 주목한다. 트럼프의 세계관은 자본의 논리다. 부단히 가치 증식을 하려는 것. 상품과 화폐의 원리로 표현된다.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군사전쟁이나 무역전쟁도 불사하고, 한반도 문제 역시 분단 극복과 평화의 시각이 아니라 무기장사와 세금약탈 방식으로 접근한다. 트럼프가 두려워하는 건 지구 공멸이 아닌 사업 실패! 반면, 툰베리의 세계관은 생명과 공생의 원리다. 지구라는 공동의 집이 지속 가능하기를 소망한다. 불편함과 귀찮음도 감수한다. 충분함을 아는 태도. 그러나 거짓과 위선에 대해선 단호하다. ‘강자 동일시’도 않는다. 그 눈빛에 비굴이나 굴종은 없다.

만일, 누군가 우리에게 어떤 길을 가겠냐고 묻는다면, 우리의 답은? 돈벌이 중독에 빠진 정치경제의 지도자들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이른바 ‘환경운동’ 등 시민사회 진영조차 이런 문제에 일관되고 단호한 입장을 취하지 못해 안타깝다. 이미 ‘환경’이란 말부터가 사람과 자연을 분리하는 이분법의 시각이다. 더 중요한 점은 우리 삶의 방식(소유, 생산, 소비, 유통, 분배, 폐기 등)이 무한한 가치 증식을 추구하는 자본, 상품, 화폐, 노동이라는 범주에 갇혀 있는 한, 지구 생태계의 파국이 불가피하다는 것. 이런 의미에서 환경운동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청년운동 등과 굳세게 연대해 지구를 구하기 위한 반자본, 탈상품, 반개발 운동에 나서야 한다. 바보야, 문제는 나무가 아니야. 우리에겐 ‘비상 브레이크’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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