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방역’에서의 ‘곡선 평탄화’

2020.04.17 20:38 입력 2020.04.17 20:40 수정

많은 의료인들과 시민들과 공무원들의 헌신에 힘입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는 나라의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질병의 방역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지금, 우리가 시급히 착수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 방역’이다.

[세상읽기]‘사회적 방역’에서의 ‘곡선 평탄화’

‘사회체(social body)’라는 어휘에 잘 드러나 있듯이, 사회도 엄연히 몸뚱어리를 가진 생물학적 실체이다. 하지만 이를 지키기 위한 ‘사회적 방역’의 전선은 바이러스와의 전선보다 훨씬 더 길고 꼬불꼬불하다. 바이러스가 파괴하는 것은 사람의 허파와 신체이지만,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터지는 일련의 사태는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게 되어 있다. 해저의 지진과 화산은 지층과 마그마의 문제이지만, 거기서 생겨나는 쓰나미와 그로 인해 파괴당한 원자력 발전소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들을 낳는다. 의료인들과 공무원들이 바이러스를 막는 1차 전선을 성공적으로 구축했다면, 우리는 이제 그로 말미암아 터져 나오는 다양한 사회적 재난과 위험들을 막을 ‘사회적 방역’의 2차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물리적 거리 두기’는 우리의 유일한 무기이지만, 사회의 일상적 과정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문제가 있다. 거기에서 생겨나는 충격과 고통은 사회 계층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다. 상위 10퍼센트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이 기간이 집에 머물면서 그동안 소원했던 가족 관계를 회복하고 카뮈의 <페스트>를 읽으며 삶을 돌아보는 ‘참살이’의 기간이 될 수 있지만, 하위 30퍼센트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자리를 잃고 수입이 글자 그대로 0이 되어버리는 그래서 자칫하면 가정까지 무너질 위험이 있는 ‘초주검’의 기간이 될 수 있다. 감염자들과 그 이동 경로를 확인하여 가장 감염 위험과 치명률이 높은 곳에 예방과 치료의 역량을 집중하는 것이 방역의 원칙이라면, ‘사회적 방역’의 원칙 또한 이렇게 삶이 파괴되는 위협을 가장 절실하게 겪는 이들에게 지원 물량을 집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는 요즘 유명해진 이른바 ‘곡선 평탄화(flattening curve)’와 동일한 전략이다. 감염자가 급증하여 의료시설의 ‘감당 능력(carrying capacity)’을 압도하여 무력화해 버릴 경우 코로나 환자들뿐만 아니라 다른 환자들의 치사율도 급증하게 된다. 그래서 감염자의 발생 속도와 폭을 ‘감당 능력’ 안으로 조절하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이다. ‘사회적 방역’ 또한 마찬가지로 접근해야 한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와 국내 및 국제 경제의 침체가 기정사실화되어 있는 지금, 사회의 안녕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바이러스든 실직이든 우울증이든 먼저 무너지는 개인들의 숫자를 최소화하여 사회의 ‘감당 능력’ 안으로 유지해야 한다. 기업의 해고로 실업률이 기존 사회안전망을 무력화시킬 만큼 폭증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실업률 상승과 짝을 이루어 범죄율과 자살률이 치솟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렇게 해서 증가하게 될 사회적 비용은 금세 지수 함수의 모습으로 치솟게 될 것이며, 생각지도 못한 여러 사회 제도 및 기관들까지 압도해 버릴 수 있다. 이른바 ‘붕괴(collapse)’의 상태이다. 이것이 코로나 이전에도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사회들이 각종 세균과 바이러스에 무수히 무너졌던 익숙한 이야기이다.

우선 장기전을 앞둔 방역 전선의 의료진들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프리랜서, 특별고용, 무계약 근로자 등, 어떤 통계로도 포착되지 않지만 당장 이번 달 수입이 0이 되어 생활이 파탄 직전에 있는 이들이 수백만을 헤아릴 것으로 본다. 여기에 우선적으로 우리 사회의 지원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이를 통해 시간을 벌어야 한다. 그다음엔 중장기적으로 우선 필요한 지점부터 우리 사회를 코로나와의 장기전에 대처할 수 있는 형태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온라인 교육’, 종교 집회, 클럽 등의 실내 업소 영업 등 우리가 정비하고 준비해야 할 문제들은 쌓이고 쌓여 있다.

인기 드라마 <킹덤>의 시즌 1에서 동래부 장면으로 가보자. 최초의 좀비들은 얼마 되지 않아 동래부의 병력으로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숫자였다. 하지만 인색한 양반 및 지배계층은 자기들의 안위를 위해 이 병력과 물량을 모두 거두어 목책으로 숨어 버렸고, 남겨진 동래부의 백성들은 모두 희생되어 또한 좀비가 되고 말았다. 이 거대한 좀비떼의 물결이 덮쳤을 때, 그 알량한 병력과 물량은 중과부적이었고 목책은 수수깡처럼 무너지고 말았다. ‘사회적 방역’에서의 ‘곡선 평탄화’를 설명하는 데에 이보다 더 좋은 유비를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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