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재난 자본주의와 홍남기

2020.05.03 20:44 입력 2020.05.03 22:43 수정

“<쇼크 독트린>이라는 책에서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헤리티지재단 같은 워싱턴의 싱크탱크는 서로 모여서 카트리나에 대한 ‘친시장’ 해법을 만들었습니다. 지금 그것과 똑같은 모임이 생겨날 거라고 확신합니다.”

[우석훈의 경제수다방]한국형 재난 자본주의와 홍남기

지난달, 캐나다 몬트리올 주정부의 후원을 받는 월간지 ‘바이스’에 나오미 클라인의 인터뷰가 실렸다. 1999년 <노 로고>라는 책으로 세계적 빅히트를 친 저자는 활동범위가 전 세계인, 우리로 치면 딱 진중권 같은 사람이다. 카트리나 등 재난상황을 분석하면서, 실제로 사회에 중요한 위기가 오면 그걸 핑계로 통치자와 엘리트들이 실제로는 그냥 자기들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재난 자본주의(disaster capitalism)’라는 개념을 제시해서 세계를 경악시켰다. 그런 그녀가 코로나19 이후로 트럼프가 결국 자기 하고 싶은 것을 관철시키려 할 것이라고 경고한 것이다.

‘한국형 뉴딜’은 2004년 참여정부에서 당시 경제부총리였던 이헌재가 전격적으로 도입한 개념이다. 당시 건설산업의 위기에 ‘연착륙’ 정도를 정부에 부탁했는데, 이헌재가 이걸 명분으로 토건을 전면화하게 되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노무현 정부의 위기가 한국형 뉴딜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셈이다. 노무현 탄핵에 이은 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과 함께 생겨난 ‘사람 사는 사회’에 대한 소망이 한국형 뉴딜로 이어진 것이다.

코로나19 비상 국면에
한국형 뉴딜을 다시 꺼내
과거로 질주하는 경제부총리
국회는 진보, 경제는 보수…
막가는 그를 누가 멈출까

이 ‘한국형 뉴딜’을 다시 가지고 온 사람은 홍남기 부총리다. 코로나19 1차 대응에 공공의료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세계가 주목하는 지금, 원격진료를 강화해서 경제를 살리겠다고 한 사람도 홍남기다. 지나간 시절을 복기해보자. 박근혜 정부가 영리병원과 의료관광을 통한 의료 민영화를 정말 열심히 추진하다가 여론의 벽에 부딪혔다. 결국 우회로로 찾은 게 원격진료였다. 서비스 산업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강행하다가, 그 뒤에 숨은 최순실이 드러나면서 정권 붕괴의 도화선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공병원과 공공병상 그리고 의료인력 지원체계 강화 등을 주장하는데, “그러니까 원격진료지!”, 이러고 나온 홍남기를 보면서 나오미 클라인이 했던 얘기가 생각났다.

가뜩이나 문제였던 사교육을 인터넷 버전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게 학원가의 소망인데, 이것도 원격교육이라는 명분으로 ‘한국형 뉴딜’의 핵심 사업으로 포함되었다. 여기서부터 홍남기표 ‘한국형 재난 자본주의’가 시작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수 국가가 코로나19 이후의 경제 대책으로 ‘그린 뉴딜’을 본격 검토하는 즈음에 홍남기가 밀어넣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들은 요즘 용어로는 ‘회색 뉴딜’로 분류된다. 물론 코로나19 국면에서 회색 뉴딜을 들고 나온 건 홍남기만이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광화문부터 남대문까지 ‘랜드마크’를 만든다고 이 와중에 회색 뉴딜 사업을 발표했다. 재난을 핑계 삼아 “원래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해도 좀 너무한다 싶다.

며칠 전 국회에서 긴급재난지원금에 관한 2차 추경안이 통과됐다. 그날 채이배 의원이 몇 달 전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냈던 동료 국회의원들의 명단을 한 명 한 명 부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얼마 전 독과점 문제로 처벌을 받은 불법 기업에 인터넷은행을 맡길 수 없다는 이유로 부결된 법안이, 표지갈이만 하고 그대로 통과되었다. 이게 코로나19 대책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원래 자기 하고 싶은 걸 재난을 기회로 관철하는 것, 그게 재난 자본주의다.

모 항공사에 1조2000억원이 긴급 지원되었다. 별 논의도 없었다. 이걸 포함해서 이런 걸 자기들 맘대로 하겠다고 40조원 정도를 쓸 수 있는 법안도 인터넷은행법 개정안과 같은 날 통과시켰다. 소득 하위 70%냐, 전부냐, 3조원을 가지고 ‘긴급’한 상황에서 두 달을 끌었던 사람이 홍남기다. 대기업에 주는 40조원은 국가를 위한 것이고, 국민에게 주는 3조원은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바로 구체제다. 우리는 지금 ‘국회는 진보, 경제는 보수’, 이렇게 과거로 질주하는 홍남기의 ‘한국형 재난 자본주의’를 TV 브라운관을 통해 멍하니 지켜보는 중이다. 국민을 바보 취급한다. 2004년 이헌재도 이렇게까지 맘대로 하지는 않았다. 청와대 눈치도 좀 봤다. 외환위기에는 국제통화기금(IMF) 눈치도 좀 봤다. 지금 홍남기처럼 자기 맘대로 막가지는 않았다. 청와대도, IMF도 견제 안 하는 홍남기, ‘한국형 재난 자본주의’를 창조적으로 구현하는 중이다. 공은 의료진들이 세우고, 열매는 홍남기로 대표되는 기획재정부가 다 따간다. 참, 현장 의료진들의 연차 수당을 깎은 사람도 기획재정부다. 총선,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투표했던가? 기획재정부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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