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뉴딜’과 그린뉴딜

2020.05.11 21:05 입력 2020.05.11 21:07 수정

지난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3주년을 맞아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포스트 코로나’ 구상을 발표할 것으로 예고됐지만 이태원클럽발 감염이 늘어나면서 대통령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강조했고 ‘장기전의 자세로’ “2차 대유행에도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정태인의 경제시평]‘한국형 뉴딜’과 그린뉴딜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 전문인력 확충과 지역체계 구축, 감염병 전문병원과 국립 감염병 연구소 설립이 발표됐고,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공공보건 의료체계와 감염병 대응 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경제다. 대통령은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첫째로 ‘선도형 경제’를 약속했다. 예의 ICT, BT를 기반으로 비대면 의료서비스와 온라인 교육, 온라인 거래 등 ‘포스트 코로나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것이다. 둘째, ‘전 국민 고용보험시대’의 기초를 놓겠다고 다짐했다. 저임금 비정규직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도 이제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실업부조제도인 ‘국민취업 지원제도’의 도입도 약속했다. 셋째, 새로운 국가프로젝트인 ‘한국판 뉴딜’은 사실 선도형 경제에 대한 투자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아마도 데이터 인프라 구축에 일손이 꽤 필요할 것이다. 노후 SOC의 디지털화에서도 일자리는 생길 것이다. 넷째는 “사람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연대와 협력의 국제질서를 선도”하겠다는 것이다.

기재부가 이미 발표한 ‘한국판 뉴딜’을 대통령이, 첫 번째의 산업과 세 번째의 일자리로 나눠서 세심하게 발표했으니 이 사업의 앞날은 창창하다. 두 번째의 ‘전 국민 고용보험시대’는 우여곡절을 겪는 중이고 앞으로도 난항일 것이다. 이 구상은 원래 청와대에서 나왔고, 며칠 뒤 더불어민주당은 보험료 납부 대상자의 반발 등으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선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없애는 일부터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 담화는 청와대와 당의 얘기를 모두 담았는데 실제론 고용보험과 실업부조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여러 모델이 나올 수 있다. 더구나 기재부의 ‘뉴딜’ 또한 플랫폼의 데이터 수집 및 처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이른바 ‘프리캐리아트’(불안정한 저임 노동자)를 양산할 것이므로 두 번째 문제의 해결은 첫 번째 과제 성공의 선결 조건이기도 하다.

‘선도형 경제’는 지난 3년 동안, 아니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야기다. 이 경제는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를 없앨 거라는 공포와 관련이 있을 뿐 이번의 바이러스 위기와 그로 인한 ‘실업대란’과 별 관계가 없고 원래 의미의 뉴딜, 즉 ‘새로운 사회계약’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지난가을 유엔에서 스웨덴의 17세 툰베리는 “우리의 앞날이 이렇게 어두운데 당신들은 어떻게 감히 하던 그대로(business as usual) 하겠다고 말하느냐”고 세계 정상을 질타했다. 바로 그 “business as usual”이 기재부의 ‘한국형 뉴딜’이자 대통령의 ‘선도형 경제’이다.

코로나19 위기는 우리 문명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선진국 정부들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시민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았고 가장 국제협력이 필요한 시점에 바이러스의 진원지를 놓고 서로 삿대질하는 강대국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정부와 시장은 무능했다.

요행히 금년 말 또는 내년에 코로나19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또다시 변신한 코로나22, 코로나27을 연이어 맞닥뜨려야 할 것이다. 우리가 기진맥진할 즈음에는 ‘인류세(Anthropocene) 위기’를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작년 몇달 동안 수천만의 생명을 빼앗은 호주 산불을 보았다. 지금 미국 서부는 때 아닌 한여름 더위를 맞았고 동북부는 오히려 기온이 떨어지고 있다. 지난 10여년 겪은 각종 이상 현상이 전 세계 곳곳에서 한꺼번에 벌어진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 먼 얘기가 아니다. 자율주행차가 다니고 드론이 택배를 하는 ‘멋진 신세계’보다는 기후위기의 ‘아마겟돈’이 먼저 찾아올 것이다. 지금 당장 필요한 기술혁신의 목표는 탈탄소여야 한다. 지금 당장 필요한 인프라투자는 전기·수소자동차를 위한 것이어야 하고 건물의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역별로 재생에너지 발전을 대폭 늘려야 한다. 지난 5개월간 전 세계 탄소 배출이 5% 감소했다고 한다. ‘그린뉴딜’은 고용을 늘리면서도 탄소배출을 줄이는 성장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 뉴딜은 민주당 일각에서 논의가 됐을 뿐 이번 대통령 담화에도, 기재부의 뉴딜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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