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2020.09.03 03:00 입력 2020.09.03 11:16 수정

나는 장로회 계통의 미션스쿨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른바 ‘뺑뺑이’ 시절이었다. 3년간의 꽤 강렬했던 경험은 개신교에 대한 나름의 경험과 인식을 만들어주었다. ‘야한’ 이야기도 잘하시던 교목님이 진행한 아침 기도 시간과 주 1시간의 성경 수업은 구약·신약을 통해 웅숭깊고 상징성 풍부한 문학을, 합창반 활동은 다채로운 복음성가와 개신교 문화를 체험하게 해주었다. 해마다 봄가을에 열린 부흥회에서는 음란마귀 들렸던 죄 많은 남고생들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한때나마) 회개하고 신앙인으로 바뀌는 은혜로운 광경도 봤다. 교사들 중에는 장로나 집사 직함을 가진 분도 여럿이었다. 몇몇 자애로운 선생님들은 철없던 친구들에게 참사랑을 베풀었으며 또 다른 몇 선생님들은 개신교가 폭력과 차별을 수반할 수도 있음을 몸소 ‘시전’해주셨다. 지금도 나는 교련 담당 장로님의 ‘싸대기’를 얼얼하게 잊지 못하고 있다.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천정환 민교협 회원·성균관대 교수

크고 구조적인 가르침도 있었다. 설립자 겸 이사장이자 목사였던 분은 몸소 교장을 겸하기도 했다. 고교생 주제에 목사님+이사장님의 경영 방침을 알 수는 없었지만, 나중에 모교의 재단은 학교법인으로서는 정말 보기 드물게 부도를 냈다. 재단이 교체된 후에도 끝없는 분쟁에 휘말리고 편입학 및 인사 비리, 공금 유용, 발전기금 불법 조성 등 사학재단이 저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범법에 연루되었다 한다. 그래서 그 학교는 ‘비리 사학’의 대명사처럼 되었다.(오, 주여!) 나는 경상도 사람은 발음하기조차 어려운 모교의 특별한 이름(구약의 지명)을, 고교 평준화의 성과와 사학 문제의 유다른 사례로 사람들에게 자랑스레(?) 들려주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그 학교는 한 마리 어린 양이 제도종교와 사학재단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으로 성장하게 만든 어떤 ‘미션’을 이룬 셈이다. 굳이 주일마다 교회를 다니며 헌금 내고 애써 배워야 하는 것을 정규 고교과정을 통해 저절로 보고 배우게 됐으니 일석이조라고 해야 할까.

몽매한 나는 지난봄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했을 때 그 클래식한 이름 때문에 ‘신천지’가 유불선과 기독교를 종합한 교리로써 소박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모은 단체일 거라 넘겨짚었다. 참고로 내가 사는 서울 은평구엔 ○○동자, XX보살, ○○장군 같은 뭔가 샤머니즘스럽고 전근대적(?) 풍취를 한껏 뿌리는 ‘철학관’이나 사찰의 명칭을 단 ‘종교시설’이 참 많다. 대나무 신대가 꽂힌 곳도 있고 불상과 제례 용품을 파는 전문 가게도 있다. 그런 집들이 3호선 연신내역 인근의 허름한 건물들 여기저기에 입주해있다. 그 앞을 지날 때면 나는 서민 삶의 어려움과 현대 종교의 기복 기능 같은 주제를 떠올려보곤 한다. 그런데 신천지엔 전문직을 포함한 ‘번듯한’ 직장인과 교리에 매우 충실한(?) 20~30대 형제자매들이 많다고 한다. 삶의 파편성과 영혼의 갈급은 ‘AI시대’ 청년들도 예외가 아닌 것이겠다.

지난주 대통령에게 ‘교회를 일반 영업장처럼 다루지 말라’고 꾸중하신 목사님의 말씀도 새기고 싶다. 현대 종교와 자본주의의 필연적이고도 긍휼한 일체성에 대한 깊은 신학적 고뇌를 표현한 말씀이라 사료된다. 이 나라에서 신자유주의와 국가라는 현대성의 판 위에 프로테스탄티즘이 얹힌 모양은, 베버적인 것을 넘는 생존주의와 냉전 문화사의 주제처럼 보인다. 그것은 급진적이고 정치적이다. ‘합리적이고 공동체적인 신앙’ ‘사회적 책임을 다 하는 개신교’ 같은 말은 근본적으로는 ‘동그란 네모’ ‘따뜻한 냉거피’ 같은 것 아닐까?

이교도들은 코로나19 재확산이 ‘사랑제일’과 ‘애국’ 성도들의 궐기 때문이라며 화를 내고, 믿음 약한 형제들은 이제 개신교 신자 수가 줄어들고 ‘개신교 혐오’가 증가할 것이라며 지레 걱정한다. 그러나 개신교의 힘은 단지 저 다윗 군대 같은 사학재단과 강남 대형 교회에만, 그리고 새된 유튜브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의장님을 위시해서 국회에는 여전히 온유하게 하나님 나라를 착실히 지키는 기독 의원들이 계시다. 오히려 21대 국회에서는 개신교도 의원의 비율이 전보다 더 커졌다 한다. 마치 ‘확진자’의 비율처럼 인구 전체에서의 개신교도 비율보다 훨씬 높다. 문재인 대통령께서도 차별금지법 같은 신의 뜻에 대한 잔망스러운 도전에 대해 ‘걱정 말라’고 말씀하셨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가장 힘든 한 주다. 초유의 ‘거리 두기 2.5’와 영업시간 제한이 자영업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에게 어떤 시련을 가져다주고 있는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이번주에는 절대로 아프지 말자. 의사를 만나지도, 병상에 눕지도 못한 채 내 생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주님의 뜻이 뭔지를 헤아려야 하는 상황을 맞으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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