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정부 개정안, 여성들 ‘모욕감’ 느꼈다

10월7일, 정부는 낙태죄 관련 형법 개정안을 내놨다.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형법 269조 1항과 270조 1항은 그대로 두고 270조 2항을 신설해 허용조건을 달았다. 사실상 ‘낙태죄’를 부활시킨 정부안에 대해 여성 인권을 퇴행시킨 위헌적, 기만적 법안이라는 비판이 각계에서 쏟아졌고 전국적인 항의 행동도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 했다. 그러나 입법안은 그 무엇도 충족하지 않았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그동안 여성들은 ‘낙태죄’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임신중단에 관한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비싼 수술비를 내고 불법적인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전후에 적절한 의료서비스나 상담, 돌봄 등을 받을 수 없었고 의료사고나 후유증이 발생해도 법적 구제를 받지 못했다. 수술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청소년이나 저소득 여성들은 적절한 시기에 임신중단을 못하고 끝내 시기를 놓쳐 출산하는 경우 영아 유기 내지 살해로 이어지기도 했다. 여성만을 처벌하는 차별적인 법은 남성의 복수나 괴롭힘의 수단이 됐다.

그럼에도 개정안 마련 과정에서 여성가족부는 초기 논의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고 여성단체의 국무조정실 면담 요청은 묵살됐다.

헌재는 ‘원칙적으로 금지하면서 낙태가 허용될 수 있는 예외적 사유를 법률로 규정하는 방식은 요건을 충족하는 여성에게 ‘낙태가 불가피한 사람’의 지위를 부여해 법률상 책임을 면제하는 것에 불과할 뿐… 사실상 자기결정권을 부정 내지 박탈하는 것’이라 했다. 정부안은 여성에게 많은 기회와 선택권을 준 것 같지만 사실은 여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여성에 대한 혐오를 승인한다. 여성들이 바라는 것은 ‘낙태가 불가피한 사람’이라는 낙인과 허락이 아니다. 동등한 시민으로서의 자격 존중이다.

지난주 철저히 삭제된 여성의 목소리를 담은 천주교 여성 신자 1015명의 낙태죄 폐지선언이 있었고 한국여성민우회는 낙태죄 폐지 필리버스터를 열었다. 참여자가 많아 6시간 동안 진행됐다. 여성들은 정부안에 대해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듯 닮아 있는 서로의 경험에 함께 울었고 여성의 존재를 끊임없이 지우려는 국가에 분노했다. 그들은 국가와 사회에 “미혼모에 대한 편견, 허술한 양육 지원체계, 임산부 폭행 등 이 사회를 살아가며 여성이 맞닥뜨리는 부조리들, 무수한 사회적 위험들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있는지, 살아 있는 생명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질문하며 “여성의 이야기를 먼저 들으라”고 했다. “5년 전 수많은 병원을 헤매야 했던 청소년인 나도 사람이고 우리는 그렇게 대우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은 너무 아팠다.

아직 늦지 않았다. 정부와 국회는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