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닮은 도시

2020.11.30 03:00 입력 2020.11.30 03:04 수정

복잡하기 짝이 없는 도시를 이해하고 실타래처럼 얽힌 도시문제의 해법을 쉽게 발견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 도시를 물건이나 기계가 아닌 생명체로 보는 것, 나아가 도시를 사람처럼 대하는 것이다.

건강하려면 피가 잘 돌아야 한다. 큰 핏줄만 아니라 실핏줄까지 몸 구석구석 막힘없이 피가 돌아야 건강한 것처럼 도시도 사람들의 이동이 원활해야 건강하고 활력이 넘친다. 탁한 피가 아닌 맑은 피가 흘러야 하듯 자동차 같은 적색교통보다 대중교통과 자전거와 보행 같은 녹색교통의 흐름이 원활해야 한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 <천천히 재생> 저자

나를 키워준 도시를 부모처럼, 또는 돌보고 키워야 할 자녀처럼 여겨보자. 광화문광장을 다시 고치는 문제로 논란이 있는데, 광화문광장을 부모님 얼굴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지금 시급히 고쳐드려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다면 당장 고쳐드려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다른 방도를 찾거나 기다리는 게 좋을 것이다.

도시문제를 해결할 때에도 어떤 방법을 취할지 잘 선택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지하철 건설은 대수술과 같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지하철에 버금가는 간선급행버스(BRT)를 창안해낸 자이메 레르네르 전 쿠리치바 시장의 ‘도시침술’ 철학을 적용한다면 우리 도시의 많은 문제들을 적은 비용으로 더 잘 풀 수 있을 것이다.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 도로마다 지상에 자전거도로를 만들겠다는 파리시의 ‘벨로폴리탄’ 프로젝트는 매우 혁신적이다. 건설비용을 비교하면 노면 트램은 지하철의 85분의 1, 자전거도로는 노면 트램의 24분의 1이다. 총연장 170㎞에 이르는 자전거도로 건설비가 2억5000만유로인데 이 비용으로 지하철은 2㎞, 노면 트램은 7㎞밖에 건설할 수 없으니, 어느 쪽이 저비용으로 효과를 높이는 길인지 잠깐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본디 예쁜 얼굴을 성형해서 망친 경우를 종종 본다. 민낯 그대로 단아한 미인처럼 우리 도시들도 바탕을 이루는 몸매인 자연지형이 아름답다. 더없이 고운 ‘자연미(body line)’를 보지 못하고 건물로 ‘스카이라인(sky line)’을 만들겠다며 도시를 망친 예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도시를 사람처럼 바라본다면 일상처럼 도시에서 벌어지는 재개발은 무엇일까? “경축! 우리 아파트 안전진단 불합격!”이라고 적힌 단지 입구 현수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를 키워준 동네를 송두리째 없애지 못해 안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기부정과 자기학대, 아니 자해행위가 아닐까.

시야를 넓혀 우리 국토를 한 몸 생명체로, 사람으로 본다면 지금 어떤 상태인가? 국토의 12%에 불과한 곳에 인구 과반이 몰려 있는 수도권은 지나치게 비대해진 머리일 테고, 소멸해가는 농산어촌 시골 마을과 원도심은 피가 돌지 않아 괴사를 앞둔 손끝 발끝이지 않을까? 어쩌면 좋을까? 물건이라면 잘라내면 되겠지만 내 몸이라면 어쩌겠는가? 손발 잘라내고 머리만 남아 잘 살 수 있을까?

사람을 닮은 도시는 무엇보다 거기 사는 사람들을 꼭 닮는다. 좋은 도시를 갖고 싶은가? 길은 하나다. 내가 좋은 시민이 되는 것뿐.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