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중도를 설득할 수 있을까

2020.12.01 03:00 입력 2020.12.01 03:02 수정

올해 한국 정치에서 가장 큰 변수는 뜻밖에 코로나19였는데, 감염병의 사이클에서 앞부분은 정치적 파급효과가 크지만 뒷부분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이 일반적이다. 감염병이 처음 등장할 때는 불확실성과 공포가 크기 때문에 사람들은 정부의 대처와 그 효과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감염병이 사라지는 단계에서는 공포도 함께 줄어들고 관심사는 여러 곳으로 흩어진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4·15 총선으로 돌아가보자. 국내 첫 확진자 발생이 2월19일이었고, 총선까지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정부가 중국인 입국금지를 하지 않은 것을 빌미로 ‘굴욕외교=방역실패=무능한 정부’라는 프레임을 반복 주입했다. 하지만 3월 중순 이후 한국의 방역성공이 세계적 모범사례로 떠오르면서 이들의 공세는 역효과를 불러왔다. 방역에 실패한 것이 무능한 정부라면 방역에 성공한 것은 유능한 정부일 수밖에 없고, 야당의 정부 비판은 실제로는 대대적인 정부 홍보가 되어버렸다.

실제로 총선 직전 두 달 동안 대통령 지지율은 13%포인트 올라 57%를 찍었고(이하 갤럽 자료), 거의 모든 유권자 카테고리에서 긍정평가가 부정평가를 압도하는 상황에서 선거가 치러졌다. 코로나19를 야당과 언론이 커다란 정치변수로 키웠고, 방역성과로 이것이 역발진하면서 민주당은 총선을 거저먹었다. 180석 거대 여당은 숫자로 밀어붙이는 일방통행과 의회 민주주의 실종, 일련의 섣부른 입법과 혼란을 가져왔으니 국민들에게 코로나19는 건강과 경제의 적일 뿐 아니라 정치 발전의 부정적 변수이기도 하다.

이렇게 코로나19는 문재인 정부에 뜻밖의 정치적 이익을 안겨주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다. 무리한 임대차 3법 통과로 비판여론이 높아지던 8월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또다시 늘어나면서 시선을 분산시키는 데에 큰 도움을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내년 4월 재·보선까지 기간에 더 이상 코로나19의 도움을 받을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이다. 큰 변수라면 3차 대유행의 확산이 될 텐데, 확산이 대규모로 커지면 지지율 하락이고 관리에 성공하면 본전이다. 전문가들은 백신의 상용화 시기를 빠르면 내년 봄, 늦으면 내년 말 정도로 보고 있는데, 어차피 4월쯤이면 어느 정도 안심하는 단계로 들어갈 것이어서 더 이상 정치적 변수가 되기는 어렵다. 3차 재난지원금은 보수든 진보든 선별지급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는 분위기여서 별 영향은 없을 것이다.

반면 정부·여당에 악재는 많다. 가장 초미의 관심사인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선거가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들의 잘못으로 촉발되었다는 원죄가 있고, 당헌까지 고쳐가며 후보를 낸다는 약속불이행이 있다. 여론은 싸늘하고 향후 전망은 불리하다.

일단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총선 때에 비해 무려 17%포인트나 떨어져 역대 최저급인 40%에 불과하고, 그 내용을 보면 지지자의 근거는 코로나19 대처만 두드러지는데(35%) 이것은 조만간 사라질 변수이고, 비판자의 근거는 부동산정책(26%), 인사 문제(추·윤 갈등 포함 15%), 경제 및 민생 문제(10%) 등으로 구체적일 뿐 아니라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많은 이슈들이다. 이제 와서 부동산정책이나 검찰개혁을 포기하면 정권의 항복선언처럼 들릴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고, 내년 경기나 살림살이에 대한 국민들의 전망은 긍정보다 부정 전망이 30%쯤 더 많아서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를 제외하고는 가장 부정적인 분위기다. 총선 때는 정부지원론(49%)이 정부견제론(39%)보다 10%포인트 많았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견제론(50%)이 지원론(36%)보다 14%포인트나 더 많다.

결국 여당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상황이다. 무소불위의 거대 여당 같지만 지나친 독주로 스스로의 손발을 묶었다. 검찰개혁이 가시화되고 공수처가 신설되더라도 지지층의 결집은 더 단단해지겠지만 외연의 확산과는 별 관계가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갈수록 심화되는 비합리적 진영 대결의 경험은 단단한 중도를 만들었다. 이들은 어느 쪽을 지지할까 망설이는 중도가 아니라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합리적이고 실력 있는 정치가 핵심이라는 신념을 가진 단단한 중도이다. 재·보선에서 야당이 단단한 중도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다면 한국 정치의 변화를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도 있다. 실패한다면 진영 대결은 더욱 심화될 것이고, 국정농단 이후 보수 야당은 진영 대결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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