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떤 것도 양보하지 말자

2020.12.21 03:00 입력 2020.12.21 03:03 수정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한 달 전쯤 교회를 다니는 친구에게 굳이 이 시국에 교회에 가야겠냐고 물었다가 핀잔만 들었다. 질문을 바꿨다. 왜 가냐고 물었더니 불안할 때 교회를 찾아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고 한다. 교회의 인연이 소중하다고도 말한다. 코로나19로 자신과 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해달라 기도한다고 한다. 더 말을 붙이지 않았다. 대면 예배를 중단한 지금 주님은 네 마음에도 있다고 당부할 수밖에.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

몇 년 전 성별 정정을 포기한 그는 연초 정체성 문제로 일을 그만두었는데 그냥 받아들였다고 한다. 최근에는 설교 중 간간이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침묵을 지킨다고 한다. 동네 교회에서 자신을 받아주는 인연이 있는 게 어디냐며 공격하지 않는 이상 문제 삼고 싶지 않다고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고, 이게 트랜스젠더 팔자 아니겠냐고 한다. 아이고 친구야.

12월10일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평등 및 차별금지법에 관한 법률안’을 성안하고 발의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발의 권고에 대한 응답이다. 2007년 첫 발의 이후 반대에 부딪혀 후퇴해온 역사 속에 합의가 필요하다고, 힘이 부족하다고 계속 미뤄온 정부와 집권여당을 향해 결단을 요구했던 시민사회의 작은 성과이기도 하다.

법안에는 줄곧 반대 이유로 꼽혀온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항목이 있지만 ‘종교와 전도행위’를 예외로 두고 관련한 불이익 금지와 처벌 규정을 삭제했다. 발의를 줄기차게 반대해온 몇몇 보수 기독교세력의 원성은 최소화하고 제정의 명분은 세운다는 계산이었을까. 법안은 종교 산하 학교와 기관을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이들의 인권을, 성소수자를 지지한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고 진로가 단절된 이들의 끝나지 않은 투쟁을 셈에 넣지 않는다. 일부 예외조항은, 삶을 살아내기 위한 누군가의 의지를 부정하고 미래를 닫는다.

2020년의 끝에도 사람들은 거리에 나와 싸운다. 유가족들은 산업재해로 인한 노동자들의 부당한 죽음 근간에 열악하고 차별적인 노동환경이 있음을 알리며 국가의 책무를 요구한다. 멀지 않은 곳에서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손상된 몸들을 빈곤으로 몰아넣고 삶을 고립시키는 구조를 바꾸라고 요구한다.

나는 줄곧 친구가 삼켰을 침묵을 떠올리지만 그럼에도 그가 연결되었다고 믿는 감각을 곱씹는다. 최근 그는 방배동 김씨 모자를 위해 기도한다고 한다. 평안과 투쟁은 멀지 않다. 차별금지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그리고 부양의무제 폐지의 요구는 부당한 죽음과 희생에 뿌리 내리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끝내 삶을 일구며 서로를 지지하고 기억해온 노력이 있기에 확장할 수 있었다. 삶의 평안을 위해, 우리는 어떤 항목도 양보하고 협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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