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줄 세우기 멈춰라

2021.12.13 03:00 입력 2021.12.13 03:04 수정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성소수자가 약자인가요?’ 지난 8일 JTBC 시사프로그램 <썰전 라이브>에서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선대위 직속 기구인 ‘약자와의 동행위원회’와 관련하여 진행자가 ‘성소수자도 약자 아닌가’를 묻는 질문에 답했다. 대놓고 무시하기는 어렵고, 차별과 혐오는 지탄받을 수 있으니 성소수자는 소수자가 아니라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일까. 그는 자신과 친한 성소수자가 스스로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는 말을 전하는데, 이는 사회적 소수자의 구조적 문제를 개인 간 차이의 문제로 어지럽힌다. 진짜 ‘약자’만 데려가겠다는 심산일지 모르지만, 유감스럽게도 귀 정당 후보가 생존이 갈급한 위기청소년과 트랜스젠더, 홈리스, 철거민과 이주민을 신경 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장애운동가들 앞에서 장애인과 ‘정상인’을 갈라 치며, 비정규직·플랫폼노동의 취약함을 고려하기는커녕 주 52시간 노동도 적다고 비토 놓는 걸 보면 도대체 약자를 누구로 상정하는지 궁금할 뿐이다. 허 대변인은 계속해서 말한다. “(성소수자를) 뺄지 안 뺄지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결정할 것이다.” 이들은 사회적 소수자의 존립을 특정 개인이 판별할 문제로 이해하는 듯하다.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남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 연대 활동가

하루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서울대 금융경제세미나 초청강연회를 마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앞에 세 명의 청년들이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했다. 성소수자임을 밝힌 이들은 합의를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비정규직 노동자와 여성에게 사과하라고 항의했다.

‘다 했죠?’ 멀뚱히 서서 지켜보던 그는 별안간 젠체하며 손을 들더니 곧장 등을 돌린다. 본인 앞에 이야기할 기회를 줬으니 소임을 다 했다는 것일까. <쇼미더머니> 심사위원을 연상케 하는 그의 제스처는 현 정권이 지난 대선부터 나중으로 미뤄버린 성소수자 발언권을 의식한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든 들어줬으니 볼일 끝났다는 의중을 잘 알겠지만, 이는 성소수자를 ‘나중에’와 ‘다 했죠?’ 사이에, 찬성과 반대 사이에, 그러니까 ‘합의’라는 무간지옥에 다시 한번 가둔다.

대선 시즌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정치권의 성소수자 폭탄돌리기가 빈도를 더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목전에 다다랐다는 징후의 일면일 것이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 10일 세계인권선언 73주년 기념식 영상 축사에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고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에 그는 말을 더한다. ‘다수의 국민들이 합의할 수 있는 부분부터라도 법제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고는 ‘한두 가지 합의되지 않은 사안’ 때문에 미루는 것은 옳지 않다고 얹는다. 미루지 않겠다는 의지에도 기어이 차별항목을 줄 세우는 태도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저울질하며 사회 성원을 판별해온 오랜 관성을 반복한다. 하지만 주객이 바뀌어도 한참 바뀌지 않았나. 당신들이야말로 우리의 심판대 위에 있음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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