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투약센터’는 필요악?

2021.12.29 03:00 입력 2021.12.29 03:01 수정

10만306명. 지난 4월부터 1년간 미국의 약물과다 사망자 수다. 10만명이 넘은 것은 처음이다. 뉴욕시에서만도 2000명 넘게 사망했다. 4시간마다 1명꼴이다. 합성약물 증가에 팬데믹까지 겹쳐 1년 새 30%가량 크게 증가했다.

이채린 자유기고가

이채린 자유기고가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결국 2선 임기 한 달을 남겨두고 ‘감독보호하의 약물투약센터(Supervized Drug-Injection Site)’ 허가 사인을 했다. 맨해튼의 이스트할렘과 워싱턴하이츠 두 군데에 세워지며, 미국 도시 중 최초다.

훈련된 스태프의 감독하에 사용자들이 자신의 마약을 가져와 제공되는 새 주사기로 투약하는 식이다. 대기실을 지나면 독서실 분위기의 투약실에 과다복용 해독제 등이 준비되어 있고, 원하면 마약중독 치료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화장실에 들어간 지 15분이 지나면 스태프가 체크하고 답이 없으면 강제로 문을 연다. 경찰에 잡힐 염려도 없다. 2018년부터 추진된 이 센터는 마약이 어차피 불법인 데다 연방정부의 고발 가능성 등의 논란 속에 비공식적으로 운영되다 이번에 공식화됐다.

올해로 임기가 끝나는 더블라지오는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센터 개소를 밀어붙인 것도 결국 내년 주지사 선거에 나오겠다는 야심 때문으로 알려졌는데, 성추문으로 주지사를 사임한 앤드루 쿠오모보다도 지지율이 낮다. 또 부인을 시의 정신건강 책임자에 앉혀 12억달러 넘는 예산을 불투명하게 운용하고 전미의 약물중독자들을 뉴욕에 불러들였다는 비난도 받고 있다. 심지어 최근 뉴욕타임스에는 “뉴요커들이 미치도록 싫어하는 시장”이라는 임기 말 정리기사가 나왔을 정도다. 내 주변의 민주당 열혈 지지자들조차 더블라지오에게는 비판 일색이다.

센터를 둘러싼 찬반 논란도 격양되고 있다. 찬성자들은 이미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은 ‘징벌식’ 마약과의 전쟁이 처참히 실패했고, 비슷한 시설이 있는 캐나다 사례를 봐도 과다복용 사망과 공공장소에서의 투약이나 사용한 주사기 투기를 줄일 수 있으며, 지역에도 해가 안 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자들은 불법인 데다 약물중독을 퍼뜨리고, 주변 지역을 망치며, 어린 세대들에게 마약을 정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항변한다. 특히 동네주민들은 지역마다 하나씩도 아니고 왜 하필 이미 마약중독 치료시설이 많은 이곳에 설치해 낙인을 찍는가, 내가 낸 세금으로 그들은 안온하게 투여를 하고는 우리 동네를 돌아다니라는 것이냐며, 시장 집 앞이나 센트럴파크 한가운데에 설치하라고 분노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등 비슷한 시설을 고려 중인 다른 도시들은 바이든 정부가 뉴욕시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의 주시 중이다. 2018년 트럼프 정부가 투약센터를 열려던 필라델피아의 비영리단체를 고발했고, 올 1월 불법이라는 최종 판결이 난 바 있기 때문이다. 뉴욕시는 법무부와 “생산적인 대화” 중이라고 밝혔다. 가족을 마약중독으로 잃은 뉴욕주지사 캐시 호컬도, 내년부터 임기를 시작하는 뉴욕의 두번째 흑인 시장 에릭 애덤스도 이를 모두 지지하고 있다.

만약 이 센터가 내 아이 등굣길에 있다면 찬성할 수만은 없을 텐데, 막상 10만명의 사망자를 생각하니 마음이 먹먹해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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