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가래떡

2022.01.27 03:00 입력 2022.01.27 03:03 수정

[임의진의 시골편지] 흰 가래떡

할매들은 ‘융복합 보험’으로다가 다 믿는다. 예수님도 믿고 부처님도 믿고 몰라신이나 알라신도 믿고, 주먹도 믿고 아무튼 다 믿고 보는 것. 사실 안 믿는 것보다 믿는 편이 남는 장사인 게, 떡이라도 한 개 더 얻어먹을 수 있지. 유한하며 허술한 인생살이. 의지하고 안도하고자 뭘 섬기고 믿는 법인데, 복 받기를 바라는 기복신앙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 촌락에 대나무 깃발을 펄럭이는 점집이 한두 군데는 꼭 있다. 점쟁이는 목사에게도 신년 운세를 봐주겠다며 너스레 인사를 날리기도 하고 말이지. 종교 또한 신토불이로 가야 무례를 덜게 된다. 내가 목사 안수를 받은 교파는 조상제사를 허용하고, 막걸리며 기호품도 자유롭게 하고 그랬다. 요새는 주눅이 들었나 눈치를 보고 그러더라만.

퇴마사나 점쟁이들이 마을에 불상을 모시고 앉았는데, 절집 신도를 빼앗아 간대서 산중 절집과 사이가 안 좋은 듯 보였다. 울 교회 신자 몇도 나 몰래 점쟁이를 찾는 눈치였고, 알아도 모르는 척해줬지. 말싸움에선 무식하게 퍼붓고 삿대질을 하는 쪽이 항상 이기는 법. 점쟁이의 말은 사납고, 나는 그저 말랑말랑한 노래나 부를 뿐.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떠나간 내 사랑은 어디에. 조금씩 잊혀져 간다~” 점쟁이 집에 다녀온 신자에게 바치는 김광석의 노래. ‘점점’을 아주 강조하면서 귀에 쏙쏙 박히게 불러주곤 했다.

정치권에 줄을 대고자 기를 쓰는, 저렴한 무속인과 마찬가지로 국가조찬기도회를 주도하는 목사들도 있지. 무슨 법사 요승들과 다를 게 무엇인가. 아부와 아첨, 오두방정, 지성의 타락. 이런 반지성주의가 몰고 오는 풍랑은 시골 동네의 소동과는 차원이 다른 폭발일 게야. 날이 따숩자 법사의 옷처럼 붉은 동백이 움트고 하늘엔 좌르르 별점. 낼모레가 설인데 신년 운세로들 점쟁이는 돈을 제법 만지겠지. 나는 손가락이나 빨다가 문득 흰 가래떡이 먹고파서 방앗간에 떡을 맞췄다. 이제 떡 찾으러 가야 할 시간. “해피 설! 되세요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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